아이젠이거나 아이젱이거나
청주 모 지방 방송국에서는 아주 바람직하게도 여성 산악기행이란 행사를 가끔씩 한다.
마음은 있으매 바쁜 일상에 쫓겨 쉬 산에 다녀오지 못하는 안여자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에 신청을 받아 단체 산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전에 살던 동네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덕에 안해는 자매처럼 가까이 지내는 안여자들 몇몇과 더불어 이번에 덕유산을 간다했다.
올라갈 때는 곤도라인지 곤돌라인지 정확한 발음의 경계가 확실치 않은 낯선 도구 이름까지 들먹이며 그걸 타고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걸어서 올 것이라 자랑을 하는 것이다.
도처에 눈이 내린 덕에 아이젠인지 아이젱인지 이 또한 정확한 발음의 경계가 애매한 이른바 미끄럼방지 발틀을 꼭 챙겨오란다 하면서 두 번 세 번 자랑삼아 얘기하는 통에 짬을 내어 늘상 다니는 영화관에 “아바타”를 관람하고서 같은 건물 지하에 있는 대형 매장으로 들어갔다.
대형마트의 장점 중에 하나가 구입하고자 하는 판매상품 대부분이 중저가로 큰 부담이 없이 쉽게 구입 할 수 있다는 사실이고 단점중에 역시 하나 들라하면 모처럼 마음먹고 제대로 된 것 하나 살려면 눈을 씻고 찾아봐도 확실하게 없다는 것이다.
입구에 특별할인 코너
한눈에 봐도 “참 싸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선뜻 집어 들고 요리 조리 살펴보면 대개의 상품이 듕귁 인민들의 손을 거쳐 황해바다 건너온 조악한 상품들이 대부분이다.
이 특별할인 코너에 마중 나오듯 아이젤인지 아이젱인지 하는 미끄럼 방지 발틀이 맨 먼저 눈에 띄었다.
종류별로 칠천 원, 팔천 사백 원, 이만 오천 원 세 종류가 있었다.
칠천 원짜리 하고 팔천사백 원짜리 하고는 사촌간인듯 많이 닮았고 이만 오천 원짜리는 “니들이 나를 살 수 있어?” 제법 건방지게 폼 잡고 있는데 역시나 동네 똘마니 수준을 넘지 못하는 품질이다.
“싸구려”나 “특별할인”이나 말은 달라도 가격과 품질은 같은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닐진대 칠팔천 짜리를 조몰락거리면서 “우리가 눈 덮인 산에 일 년에 몇 번이나 간다고, 좋은 것 살 필요 있나?” 염불하듯 되뇌는 것이었다.
“일회용으로 쓸 것이 아닌 바에야 좋은걸 사야 두고두고 쓰지 않겠나?”
조심스런 나의 건의는 전혀 반영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안해는 여전히 칠팔천 사촌들에 집착하여 방금 전 보았던 아바타에서 꼬리를 전선 플러그 연결하듯 해서 소통하는 흉내를 내려는 듯 그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나 또한 이대로 물러설 수 없어 MB가 4대강 갖고 물고 늘어지듯 총리가 세종시 수정안 갖고 늘어지듯 이만오천 이만오천 시위하듯 끈질기게 주창하였다.
결국 마트 직원의 밀어주기와 바로 전 젊은 내외가 아주 쉽게 이만오천을 구매해 가는 바람에 안해는 마지못해 이만오천을 가트에 담았다.
돌아오는 내내 안해는 그 칠팔천의 선택이 옳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없는 이만오천과 동행하는데 대해 마땅치 못한 심사를 표정에 아주 예술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 “우거지 상”은 집으로 오는 내내 계속되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거실 온도를 적어도 삼도 이상 끌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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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밤 지새운 이튿날 오후 한시 삼십분
큰 아해와 시내 볼일보고 돌아오면서 문득 안해의 눈 덮인 산 첫 산행이 궁금하여 아니, 그보다는 그 이만오천과의 화해가 어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여 손전화를 넣었다.
신호가 두어 번 가더니 이내 활기차고 숨차고 보람찬 안해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필승!!”
이것은 내 안해의 기분 내지는 “콘디숀”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나오는 일종의 경보음이었다.
이럴 땐 적이 안심되어 내 목소리 또한 자동으로 아주 자애로운 지아비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시의적절하고도 너그러운 음성이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부인! 오늘 산행이 어떠하오? 불편하지는 아니하오?”
“아! 최고여 최고! 경치도 최고이고 야!!!....”
하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아이젠인가 하는 거는 쓸 만하더이까?”
조심스레 물으니
“아! 이거.. 이만오천가지고는 안되고 삼만 오천은 되어야 겠드라! 삼만 오천! 칠팔천 같은 거 신은 여자 하나도 없다카이!”
부지불식간 튀어나오는 반말이며 친정동네 방언에
모처럼 근심걱정없이 편안한 하루를 보낼수 있겠고녀!
바아흐로 오십셋된 지아비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오늘 같은날이 얼마만이며 또한 일년에 며칠이나 되던가?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