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천에서 부르는 노래

필리핀에 대한 단상-가로막히거나 외면하거나

조강옹 2019. 12. 24. 08:40

출퇴근길 미호천 변을 무리지어 나는 철새들의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언젠가 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으면 하는 욕심에 출근 준비하다 카메라를 찾으러 아들 없는  아들 방에 들어갔는데 책상위에 사진 한 장이 눈에 띈다.

아주 오래전 동네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필리핀 단체 여행가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이 왜 여기에 있을까 하는 의문은 잠시고 빠르게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그랬다. 

열두 명 부부동반이니 도합 스물네 명이서 필리핀으로 단체 관광을 간적이 있었다.  여기 저기 관광지를 둘러보고 이름이 특이해서 아직도 기억나는 팍상한 폭포에서 보트도 타고 그렇게 하루하루 여정을 보내는 가운데 가이드라는 젊은 친구가 관광지에 우리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하는 말이 대게 “15분 안으로 이곳으로 모이라” 또는 “10분 동안 시간을 줄 테니 얼른 둘러보고 오라”는 식이었다.

그렇게 바삐 움직이는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길가 휴게소 비슷한 곳에 마련된 기념품 가게에 차를 세우고는 “40분 동안 시간을 줄테니 천천히 둘러보고 살 것을 사라”고 친절하게 안내를 하는 것이었다. 


둘러볼 정도로 규모가 큰 상점도 아니거니와 흥미를 끌 정도로 볼 것도 없었으므로 우리는 화장실을 다녀와서 담배를 피거나 삼삼오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잡담으로 시간을 때우면서 보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적잖은 고역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주워들은 이야기라면서 우리가 여기서 사는 물건 값의 일부를 가이드가 가져가기 때문에 우리가 눈치껏 얼마정도 사 주어야 남은 일정이 서로 편하다는 그럴듯한 얘기까지 나왔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 때우고 버스가  출발하면서 나는 용기를 내서 가이드에게 말했다.  “우린 보다시피 충청도 시골에 있는 봉알초등학교(이것이 후에 어록이 되었다)동창들이고 하나같이 농사를 짓거나 소를 키우는 빈농들이라 수년간에 걸쳐 곗돈 모아 여기에 왔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기념품 가게에 우릴 데려간다해도 그 상품을 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필리핀에 온 목적은 필리핀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고자 하는 목적도 있겠지만  필리핀의 문화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일테면 재래시장 같은 곳으로 우릴 데려가 주었으면 좋겠다. 그곳엔 무슨 먹을거리가 있고 필리핀 주부들이 무엇을 주로 쇼핑하며 그곳 생필품의 가격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이런 것들을 보고 싶으니 그런 곳으로 우릴 데려갈 수 없겠는가?”


내 짤막한 연설(?)이 끝나자 스물 세 명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고 대세에 밀린 가이드는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한참을 가다가 버스를 세우더니 15분간의 시간을 줄 테니 얼른 둘러보고 오라는 것이었다.

기념품 가게에서의 지루함에  먹은 맘없이 즉흥적으로 건의했던 것이 아주 쉽게 이루어졌고 덕분에 생각지 못했던 필리핀 재래시장을 구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르르 몰려나온 우리는 어둠침침한 상가 내부로 들어가 이것 저것 두루   둘러보다 파리가 새까맣게 둘러붙은 돼지다리가 진열되어 있는 고깃집을 지나면서 참기 힘든 냄새에 콧구멍을 막고 뛰어가야 했다.


밖으로 나와 거리에 형성된 시장을 둘러보다 어렸을 적 그렇게 갖고 싶었던 크레용에 종이로 감은 색연필, 그리고 엄지와 검지 발가락사이에 끼는 슬리퍼까지 고스란히  시장통에 진열되어 있었고 짧은 시간에 참 많은 것을 구경했다. 영어도, 달러도 통용이 안되는 그 시장통에서 용케도 환전해 놓은 필리핀 돈이 있어서 크레용을 비롯한 학용품과  그때 그시절의 슬리퍼까지 꽤 다양한 물건을 사는데 성공을 하였다.


이후 이 봉알초등학교  동창들은 두어번 해외로 같이 돌아다니면서도 늘 그 필리핀의 재래시장을 이야기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라며 그리워 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우연찮게 내 아들이 언어연수라는 미명하에 거기에 가 있다. 우선 전화로 영어를 배우던 필리핀 친구가 거기 있으니 그곳에서 서너 달 있어보겠다며 설 쇠고 이튿날 서둘러 그곳으로 간 것이다.


첫날 공항에 내린 아들은 필리핀 친구 만나기 위해 호텔에 와 있는데 이곳은 영어도 잘 통하고 치안도 괜찮은듯하여 적응을 잘할 수 있겠다며 안심하란다.  이후 집세가 생각 외로 비싸다면서 호텔에 하루 더 묵고서라도 싼 집을 찾겠다던 아들은 결국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하숙집에 들기고 했다는 기별이 왔다. 현지인들이 사는곳은 너무 열악한데 비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하숙집은 세끼 식사에 에어컨에 인터넷 무료제공 등 이른바 풀 옵션이라 하면서 한 달에 얼마라는 가격이 외려 한국보다 적잖게 비싼것이다. 

그래 잘했다. 오래있을 것도 아니고 편하게 있다 오는 것도 괜찮겠다 싶으면서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몇 번 얘기를 했었다. 모처럼 적잖은 돈과 시간 마련해서 준비한 것이니 영어 습득도 중요하지만 필리핀이 됐건 호주가 됐건 또는 미국이나 캐나다가 됐건 어떠랴! 우리 보다 잘살건 그렇지 않건 낯선 문화 낯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며 우리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편하면 편한대로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현지인들과 어울려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쇼핑도 하고 같이 여행도 하고 그렇게 두루 체험하다 왔으면 좋겠다.


이 아버지의 바람은 부질없는 욕심일까?


사람 좋아 보인다는 아들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그 “하숙집 아줌마”나 아주 오래전의  필리핀 여행 때의 가이드나 - 직접 필리핀 사람과 필리핀 문화를 접하고자 하는 것을 막아서려 하는- 그들이 참 밉다.  사서도 한다는 젊은날의 불편을 외면하고 웃돈 얹어 편리를 사려는 듯한 내 아들까지도 ....

 

지금 보니 참 젊었던 스물 네 명이 호세리잘 공원 앞에 각자 족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가운데 그때 재래시장 구경시켜 달라 조르던 서른 몇 살의 젊은 촌부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무리 속에 섞여있다.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