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말이거나 글이거나 사진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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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시절, 석탄먼지 까맣게 일던 탄광촌에서 한동안 지냈던 기억외에 사돈의 팔촌까지 헤아려 봐도 강원도에 내 연고가 없다.
자동차가 생기고 회사에서 아주 맘에 드는 쉼터를 바닷가에 지어 놓았기에. 그리고 하나 덧 붙이자면 아주 오래전, 앞날을 아주 멀리 내다 보시는 선승께옵서 "혹여 댕겨 갈 일 있거들랑 둘러나 보아라!" 하고 꽤나 큰 사찰 하나 지어 놓았기에 .... 이렇게 들러본다.
이른 새벽에 목탁을 치면 그 소리가 물경 이십여리까지 퍼진다 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본시 똑똑한데도 불구하고 무명의 구름에 그 똑똑함이 가린 똑똑한 중생들의 똑똑함을 일깨우기 위함이라 얼핏 들었다.
하물며 저 종소리야 ....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종치는 법을 가르치는 저 엄허니께옵서는 얼마나 똑똑하시며 그 아해 또한 그 똑똑함을 얼마나 고스란히 물려 받겠는가?
그러다 문득 눈길이 발에 이르렀다.
저 아해의 신발은 난전에서 삼천원이면 흥정없이 단번에 거래가 가능한 것인데 비하여 저 엄허니의 신발은 한 푼 에누리 없이 정가로만 파는 곳에서 물경 십만원하고도 삼천원은 족히 넘흐리오다.
.........
높은 곳에 오르면 오른 만큼 내려다 본 풍경은 이리 알흡답다.
그리고 꼭 그런것은 아니지만 오른쪽으로 고개 돌려 본 풍경이 더욱 그러하다.
문득 고등학교 교련시간에 배우고 군에서 더욱 다듬은, 분열시간에 사열대 앞을 지날적 긴 칼 입에 댓다가 아래로 돌려치면서 "우로 봣!" 하는 그 "우로 봣"은 늘 고개 돌려 바라보는 그 오른쪽이 볼거리가 많기에 좌로 보지 말고 우로 보란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홀로 머쓱한 생각에 오른쪽으로 고개 돌려 바라 본 풍경 또한 왼쪽 보다 알흠답다.
바다와 바위, 바다와 바위와 소나무, 바다와 바위와 소나무와 사람,
바다와 바위와 소나무와 사람과 바람.
잘만 어우러지면 이보다 더 알흠다운 풍경이 없겠다.
그중에 종종 사람과 바람이 그림을 망치긴하지만....
초가집 지붕에 박 넝쿨이 올라가고 여기 저기 구를듯 얹혀있는 누런 박덩이와
새하얀 박꽃이 피어나 달구경하는 동요가 그려준 그림은 내 유년시절 아직도 바래지 않은 그림이다.
그것만인줄 알았는데 저 아랫녘 송광사 기와지붕과 처마를 보고나서 비로소 저런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딴은 초가집만이 초가지붕위에 얹혀있는 박덩이 모양으로 음봉산 아래 옹기 종기 얹혀있듯 모여있는 동네서 자라 온 때문이기도하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기념하기를 좋아한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곳엔 이렇게 기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가게가 있다.
안해는 일금 삼천원짜리 기념품을 샀다.
작은 손잡이 끝에 한눈에 봐도 비싸지 않은 티가 나는 모양의 옥색 플라스틱 도르래가 달려있어 그것을 얼굴에 문지르면 잔주름이 펴진다는 굳이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드리자면 얼굴 다리미 하나 손에 쥐고 나온다.
까르르 웃으며
"이거 가지고 문지른다고 잔주름이 펴지겠나? 그냥 기념삼아 하나 샀다!"
생각느니 눈물 겨울 뿐이다.
"비싸지 않은것으로 싸게 싸게 행복해할줄 아는 안해 덕분에 우리 내외 이 만큼 누리고 살고있지 않나?!"
"우로 봣!" 원칙은 어디서든 통한다.
기념품 가게엔 삼천원짜리 얼굴다리미만 있는게 아니었다.
게다가 한켠엔 몸에 좋고 영양가 많은 비싼 차도 있어 저렇게 폼나게 마시는 장소도 마련되어 있건만 어찌 삼천원 짜리 얼굴다리미만 눈에 쏙 들어왔을까??
"길에서 길을 묻다" 라고 새겨놓은 표지석 지나 왼쪽 오르막길 오르다 보니 씌어있듯 턱하고 지나는 길손의 통행을 불편하게 한다..
대한민국 엥간한 절간치고 문화재 관람료 라는 명목으로 돈 걷지 않는 절간이 없고
대한민국 절간의 기와는 왜 그리 자주 깨지고 삭아 부서지는지 기와불사 하겠다고 손 내밀지 아니하는 절간이 없다.
지난 큰화재 모두 다 딛고 일어섰다면서 찾아오는 중생들에게 떡 돌리고 합창단 시켜서 노래하며 기념하던것이 올 늦은 봄이었는데 그새 또 무엇을 짓고 무엇을 뜯어 고치려 난리인가하다가 맨 아랫줄 "낙산사 주지 두손 모음"에 눈길이 멎는다.
두손 모음이라니 어찌 저런 기특한 말을 생각해 냈을까?
한때 도나 개나 사장님이요, 개나 걸이나 사모님이라고 사장님 내외분을 함부로 일컬어 정작 진품 사장님과 명품 사모님의 권위가 손상되는것을 우려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 이것도 모자라 사람은 물론 가구나 전자제품 심지어 주방기구에 이르기 까지 의인화하여 극존칭을 남발하는 요즘 세태를 걱정하다 지쳐 화가 치밀어 오른지도 오래다.
"이 냉장고는 조금더 비싸세요 이것은 오백만원이십니다"
이번 올림픽을 지나오면서, 특히나 운동경기 해설한답시고 마이크 잡으신 "어르신"께옵서들 원없이 뇌이고 또 뇌이었던 "보여집니다." "보여집니다." "보여집니다." "보여집니다."
라식수술이 잘못되었나? 그들이 낀 안경이 잘못되었나?
그냥 보면 보이는것을 그래서 "보입니다"라고 하면 될것을 도나 개나 "보여집니다. 보여집니다. 또 보여집니다.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보는 공짜영화
내 영어가 짧은것을 도와주기 위해 자막 달아주는 일면식도 없는 번역가 선생님들께옵서는
"안된다" 를 "안됀다." 라 하고 정작 "안돼서"는 "안되서"로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듯 남발하는 탓에 혼란스럽기 그지없고 사랑하는 우리 아해들은 한발 더 나아가 "졸라"니 "쩐다"니 이런 어원마저 아주 민망하거나 찾기 힘든 말로 자기네들 끼리 소통하니 우리 증조부께옵서 제주도 방언 알아듣기보다 더 어지러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와중에 합장, 합장 자기네들이 길들여 놓은 말 제쳐두고 순 우리말 가져다 턱하니 붙여놓으니 일전 얼굴에 개기름 흐르는 일부 승려들이 고스톱에 룸살롱인가하는 술집 드나들었다는 얘기마저 용서하고픈 생각이 절로 들어 막은 길 돌아가면서 스스로 기도한다.
원하옵고 바라옵나니 두손 모은 이곳 승려들로 하여금 하루가 다르게 정진하여 나를 포함한 뭇 중생들을 다 건지게 하옵소서!
대포항이다.
쉼터에서 멀지않은 곳이도 하고 눈요기와 더불어 동해가 전해주는 안주를 점지하는 재미로 꼭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북한은 왜 미사일 이름을 이곳 지명을 따서 지었을까?
혹여 생각짧은 정치하는 사람덜이 그 이유를 들어 이곳의 발전을 가로막는 정책이나 펴면 어쩔것인가?
모두가 "씰데없은 걱정"이라는것을 보여주는듯 이곳은 "공사중"이었다.
입구에서 오른쪽 줄지어 있던 튀김 골목
그러니까 바다쪽은 죄다 헐어내어 공사중이고 쫒겨난 튀김가게들은 길거니 나와서도 줄지어 가게를 열었는데 그중에 딱 한 집만이 사람들이 줄을 선다.
저 뒷모습의 두 이모님께 대단히 송구스러운 말씀이나 줄선집이나 줄서지 않은 집이나 튀김의 가격은 똑 같고 맛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줄을 서고있다.
영문 모르는 사람들은 매일 오는것 아닌데 기왕이면 줄선집에 줄서서 사는것이 맛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또 줄을 선다.
"점심 문나?"
"물새나 어디있노 다 알면서리"
줄선 손님 맞이하는 저 존경하는 이모님 두분의 대화를 얼핏 엿들으면서 이후 나라도 앞장서서 저 두 분 이모님의 한가하고 맛있는 점심을 위하여 줄 안선곳에 줄 설란다. 다짐하면서 ...회 뜨러 간다.
우리 일행을 대표하여 오늘 올거라 특별히 기별한적이 없는데 저렇게 물 좋고 색 좋은 문어 한 마리 잠시 뜨거운 물에 몸 뎁히고 나와 우릴 위해 기꺼이 물속 생을 마감한것에 대해 깊이 "것이끼"했다.
또한 이 "것이끼"는 이후 뜻을 같이한 광어와 우럭 그리고 멍게 등 물속에 같이 몸 담가 살아왔던 무리들에게도 같이 "것이끼"함을 밝혀둔다.
동해 바닷가에서 해는 바다에서 뜨되 지기는 어디로 지는것일까?
오는 동안 소나기도 스쳐 지나갔고 안개비도 오르락 내리락 오리 무중인데 노을이 진다.
쉼터의 창가에 나와서니 왼쪽 물치항과 더불어
오른쪽 낙산사 쪽이다.
노을이라
어느 단체고 어느 학교에서 주최하거나 개최하거나
크거나 작은 상이나 상품을 내걸고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글짓기에서 상 받은 작품중에 노을에 대해 쓴 글을 본적이 있는가?
젊은 날
우리 언제
저 노을을 여유롭게 바라보면 침을 꼴딱 삼켜가며 "으흠" 신음소리 내가며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우리 세상 살면서
내가 부모되어서야 알수있는 부모마음이 있듯
그 나이 되어야서 비로소 눈에 들어오고 깨달을수 있는 것이 있다.
어둠이 내리고
오징어배 몇 척 멀찌감치서 우릴 위해 불 밝혀 주는 가운데 소주에 맥주 섞어 미리 장만한 안주와 더불어 마시는 술이 어찌 그리 맛이 있던지 밤 깊어 가는 줄 모르고 한 얘기 또하고 스스로 아까 한 얘기 또한다는 얘기 하면서 마셨다.
딴은 올 봄
어느 눈 밝은 복부초음파 검사하시던 선생님께옵서 내 췌장속에 직경 일센티 크기의 물혹을 발견하시었고 충북에서 제일 큰 병원, 제일 용한 선생님께옵서 두 차례에 걸친 정밀 검사와 세 차례의 면담끝에 살아가는데 크게 걸릴것이 없을듯 하다는 진단을 내리신 터이라!
화장실 들락거리면서 오랫만에 허릿끈 끌러놓고 잔뜩 마시는 가운데 강원도의 밤은 깊어갔다.
"내게 하룻밤을 더 허하여 주옵시면 원이 없겠나이다."
낙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난 아침이면 대게의 기독교인들이 식사전 하는 짧은 기도처럼
난 이렇게 기도한다.
오는길이 멀었고 가는 길 또한 오는길 만큼 멀기에 머물고 싶어도 더 이상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 강원도에서의 둘쨋날은 아침부터 마음이 심란하다.
그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가는 길에 횡성에 들러 작심하고 쇠고기도 배불리 구워먹어도 봤고 증평에 들러 면발 못지않게 국물맛이 기막힌 냉면집도 들러보기도 하지만 언제부턴가 주문진에 들러서 간다.
오는 길, 넓히고 뚫어놓은 길이 주문진을 스쳐 지나가겠금 만든 탓이기도 하다.
늦은 아침
저녁에 먹다남은 매운탕에 남은 밥 말아 먹거나 눌은밥에 무수짱아치 반찬삼아 먹으면서 남은 술 박박 긁어 해장까지 배불리 한 덕에 보이는 것이 모두 여여롭기 그지없다.
오토바이의 부지런함보다 아침햇살 등에지고 마주앉아 담배와 더불어 피는 게으름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꼭 박물관이라 이름짓지 않아도 박물관은 어디든 있다.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지게벗기 운동"의 선두주자도 바통 이어주고 양지쪽에서 졸고있다.
저 지게와 더불어 비린내 나는 이곳을 누비며 번 돈으로, 아버지께옵서 흘리신 땀으로, 대처에 나가 "크게 된" 자식들은 이 "구르마"의 수고로움을 기억할까?
승진턱의 술자리에서 오늘날 내가 있기까지에는 지금도 비린내 풍기는 항구에서 생선 나르시는 우리 아버지의 땀이 팔할이었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당신의 굽은 등을 제가 펴드리지는 못할 망정 그 은혜만큼은 고대 죽어도 잊지 않겠다고 눈물 흘리면서 주위를 숙연하게 한 적이 있을까"
"내가 무신 한게 있다고 ... 다 지가 잘나서 그리된것이지!"
자식에게 영광 돌리는 아버지의 그 너그러움을 반쪽이라도 닮기라도 한것일까?
오십촌부의 무성한 생각과는 달리
햇살만 따사로이 비치는 이곳 주문진항은 그저 고요하고 평화로울 뿐이었다.
약육강식이라!
약자이기에 먹히는것 까지는 좋다이건데 오직 사람만이 이렇게 불에 굽기까지 한다.
더러는 말리기도 하고
배물리 먹고난 아침이니 식탐 까지야 있겠나만 색이 고우니 보는 눈이 푸짐할 뿐이다.
연기 자욱한 이곳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먹어댄다.
문득 동물의 세계란 프로에서 먹이 둘러싸고 까맣게 모여있던 갈매기떼들이 생각났다.
먹이 앞에 놓고 모여 먹는것이야 사람과 짐승과 여타 동물들과 구별이 필요하겠나??
바닷가 화장실이 잠깐 우릴 즐겁게 했고 마지막 남은 시름마저 덜게 해주었다.
처가가 안동이래서가 아니라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안동 간고등어보다 두배 반이 더 맛있는 노르웨이산 고등어 넉넉히 사가지고 집으로 향하는 길
얻어 탄 차
조수석에 앉아 가는 안해의 손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이래서 그렇지 섬섬옥수는 아니다.
두 아이를 키워내고 뒤끝 만만찮은 남편 뒷바라지에 "시허머니" 봉양으로 보낸 세월이 삼십여년
어느덧 오십대 중년에 이르러 하룻밤 강원도 여행도 호사라고 흐뭇해 하던 안해
우리 프로야구
꼴찌를 달리고 있는 한화에 김태균이란 걸출한 4번타자가 있다.
마운드에서 모든 투수들이 기를 쓰고 치지 못하게 구석으로 던져대도 놀라운 재능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남달리 흘려낸 땀으로 모든 타자들이 꿈구는 4할대에 근접하는 타율을 일구어낸 기록으로 이제부터 시즌 끝날때까지 안타 하나 못치더라도 타율에서 단연 일등이라했다.
안해여!
사랑하는 내 안해여!
그대 지금까지 나와 내 가족에게 이바지한 공헌만으로도
이미 그대 할 도리를 다 했으므로 남은 여생 하루 하루
맘편히 하고픈것 하나 하나 빠뜨리지 말고 누리면서 살아가시길 앙망이요.
끝.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