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옹 2019. 12. 26. 13:52

 

노고단을 가기위해 도착한 성삼재

이곳에 오기까지 일행을 실은 버스의 노고가 참 많았습니다.

 

 

이 땅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만큼 누리고 사는것만 해도 홍복중의 홍복이다하면서도  만약 노고께오서 꿈속에라도 납시어 "네게 소원있으면 말해보라. 딱 하나만 들어주겠노라!" 하신다면 나는 주저없이  오른쪽 무르팍 관절의 마모를 조금만 늦추어 주옵소서!" 라고 간청을 드리고 싶다.

 

마당끝이 미호평야의 시작인 들녘에서 자란탓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산을 알고 산에 오르고자 할때 이미 오른쪽 무르팍의 마모가 정형외과 의사가 단골손님 하나 생겼다고 반길 정도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지팡이 짚고 다닐 정도는 아닌데다가 누군가 생각깊은 사람이 이렇게 높은 곳까지 자동자 길을 내고 차에서 내려 노고단 가는길은 어릴적 신작로 처럼 넓게 닦아 놓았다. 

 

산에 오를적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길바닥으로 시선을 내린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안내판이 참 깔끔하다.

 

 

아침에 좀 후다닥 거렸다.

새벽밥 지어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할까하다 화장실로 직행한 탓에 안해는 걱정을 덜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가는 내내 눈치를 살펴야 했는데 이곳에 당도해서 비로소 표정이  밝아졌다.

모두가 산신령님 덕택이고 노고님 덕택이라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쓰고 있던 모자 벗어 쓰라해놓고 보니 현대판 빨치산 여대장같다.

그러면서 문득 왜 인물이 고운 여자들은 성깔이 까칠한것일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 하나 되살아 난다.

 

 

한 시간 여

오르막에도 편안한 길과 다소 불편하지만 질러가는 길이 따로 안내되어있다.

아직은 질러가는 길도 그리 불편하지 않은 처지

올라갈적에 질러간 길은 내려올적 편히 내려오리라 생각하면서 편한길 택해 걸었다.

 

이쯤에서 점심을 먹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바람 간간히 불어오는데 소주를 딸까 하다가 맥주를 따서 안해와 둘이 마셨다.

 

 

노고단 오르기 직전 우측으로 난 길 따라 올라간 전망대

예전에 중국의 장가계를 다녀오고나서 우리나라 산은 산이 아니로다 하고 섣부른 생각을 한적있었다.

그러나 이후 깨달은 것이  장가계가 비록 알흠답지아니하다 말할수는 없겠으나 그저 바라볼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근접을 허하지 않는 매정함이 있는 반면 우리의 산들은 늘 넉넉하고 너그럽게 우리를 안아주신다.  이곳에 오면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 

 

아주 이른계절 

부지런한 농부들이 일찌감치 땀흘려 논밭을 갈고 씨 뿌려 놓은 덕에

이 계절에 따사로운 햇볕과 부는 바람이 합작한 작품

 

 때 맞춰 이곳에 제대로 왔고나!

 

오래 오래  보고 또 보고

두고 두고 가슴에 새겼다.

 

산은

위로 오려다 보면 올려다 보는대로 그 알흠다움이 더하는 듯 하고

올라서 내려다 보면

내려다 보는 대로 그 알흠다움 또한 더하는 듯 하다.

 

 

올라올적 거쳤던 노고단 대피소

줌렌즈를 잔뜩 당겨 찍었다.

 

휴게소 같은 대피소

아주 적합한 표현이다싶게 쉼터와 밥을 짓고 나누어 먹고,먹고나서 생기는 근심을 더는 곳까지 고루 갖춰져 있었다.

 

 

빨치산?

 

토벌대?

 

난 생각이 많은데 안해는 들여다 보더니 자기가 찍었는데 제법 잘 나왔지 않냐면서 서당개 삼년 운운한다.

 

아무렴!

노력해서 안되는 일 어디 있겠나

멋있게 찍어주어 참으로 고맙소이다.

 

 

 

돌아보면 느끼는 것은 

강이고 길이고 저렇게 굽은것이 더 아름답다.

굽었다고 바로펴야 하는 것은 우리들의 허리밖에 없다.

딴은 우리의 조급증 탓 아닐까?

이제부터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게 놓아두면 좋겠다. 

 

삼성재에서 내려다 본 풍경 하나

 

더 높아진 하늘

달이 노피곰 도다샤 머리곰 비취오면

하여 저기 저 기슭  골골이 휘영청 금빛 쏟아져 내리면

평생을 산속에 숨어 지내는 반달곰이 되어도 좋겠다 싶었다.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