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철도 115주년 자전거여행

조강옹 2019. 12. 26. 14:33

2014년 9월 18일은 115주년 기념 철도의 날이다.

1899년 오늘 노량진 제물포간 33.2km의 철도를 부설하여 최초 운행한 날을 기려 법정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따지고 보면 근 사십여년 이 직장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115년 철도역사의 3분지 1을 넘는 세월이

다.

하여, 하루 쉰다.

이 뜻깊은 날을 어이할꼬?

집에서 이십여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근장 역이다.

이른 아침

안해가 준비해준 주먹밥으로 배낭을 꾸려 자전거 타고 도착했다.

충북선 첫 열차를 타고 충주역에서 내린 다음 탄금대에서 부터 수안보, 연풍, 괴산, 증평 거쳐 집으로 오기로 계획하였다.

오근장역 선상 육교에서 내려다 본 오창 들녘의 모습

가을은 이렇게 풍요를 안겨다 준다.

한때 나도 저렇게 씨나락 담그어 못자리하고 모심고 벼베던 시절이 있었다.

팔월 태풍도 견디어 내고 바람과 햇볕의 도움으로 저렇게 노랗게 결실맺어가는 모습 한갓지게 바라다보던 때가 바로 이즈음이었다.

어즈버.......

철도의 날이라고해서 모든 철도원이 쉬는것은 아니다.

철도의 날인지도 모르고 제각기 갈길찾아 표 끊어가지고 플랫홈에 나와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있기 때문이고 그들은 오늘이 철도의 날인지도, 세상에 철도의 날이라는 기념일이 있다는 것도 새까맣게 모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에게 오늘이 철도의 날이므로 우리 하루 쉰다해도 그들이 용납치 않을것은 불보듯하기 때문이다.

7시 40분 충주역에 도착

조용하고 깔끔하고 사람들을 비롯해 움직이는 것들 모두 조금은 느린듯한 느낌

탄금대로 향하는 길

충주역에서 왼쪽으로 난길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면 이런 그림이 나오는데 탄금대 가는 길은 왼쪽 방향이었다.

남한강

임진난 당시 신립장군의 "배수의 진"으로 널리 알려진 곳

강물은 흐리고 탁했다.

 

우륵문화제가 열린다한다.

우륵은 대가야국사람으로 신라에 정치적 망명을 하여 열 두줄 가야금을 만들고 작곡도 한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가야금 뜯으며 산곳 또한 이곳 충주이기 때문인가보다.

충청도는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로 나뉘어져있다.

모두가 아는것 처럼 충북보다는 충남이 인구도 많고 면적도 넓고 모든 면에서 앞선것 처럼 보인다.

그런데 충청도라 이름한것이 충주와 청주의 머릿글자를 따서 지은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고 왜 하필 충주일까 하는 문제는 우륵이라는 걸출한 악성이 여생을 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족해보인다.

작지만 깔끔하고 조용하고 그에 걸맞는 적당한 품격을 지닌 도시 충주는 이런도시다.

차도 옆에 자전거 도로

그 자전거 도로옆에 가로수로 사과나무를 심었다.

잘 익은 사과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자전거를 타고가면서 머리에 맞지 않으려면 수없이 고개를 숙여야했다.

이 계절 적어도 충주는 사과의 도시였다.

언제든 어디서든 부지런한 사람들이 있어 이렇게 파 헤치고 다시 깔고 한다.

이렇게 엉성한데다가 빼먹은 안내표지 덕에 길을 잃었다 찾기가 부지기수 였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탄금대에서 상주쪽으로 난 새재길이라 명명한 자전거 도로이고 이렇게 깔끔한 쉼터도 나온다.

그리고 이렇게 친절하게 자전거 공기압이 부족한 라이더(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편의도 제공해준다.

새들도 쉬어간다는 새재

그에 맞는 조형물 하나 멋들어지게 세워져있다.

이 넓고 부잣집 정원같이 꾸며놓은 쉼터에 화장실 다녀오려면 왕복 240미터를 걸어야한다?

화장실 다녀와서 다시금 쉬어야하지않을까 혼자 생각하고 혼자 웃음지었다.

수안보로 내려가는 길

오가는 이 하나 없는 한적한 도로

가을 아침햇살만 눈부셨다.

가끔 이런 인증센터가 나온다.

내가 이곳을 다녀갔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들여다 보면 이렇게 미리 구입한 수첩에다 마치 학교 운동회 마라톤대회에서 반환점 돌면 손바닥에 도장찍듯 구간 구간 손수 도장을 찍는다.

대한민국에 만들어 놓은 모든 자전거길을 섬렵하고픈 동기유발 효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겐 적잖게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백세시대를 이야기하고 이것이 축복이냐 재앙이냐를 두고 말들도 많다.

저렇게 두 내외 건강하게 늙어갈수만 있다면 축복이 아니고 무엇일까?

각설하고 여기는 수안보

충남과 충북을 가끔씩 비교한다.

충남에 온양온천이 있다면 충북엔 수안보 온천이 있다.

공통점은 한때 뭇사람들이 찾는 명소였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사람들에게 잊혀져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거리는 을씨년 할 정도로 한산하고 조용하다.

연풍으로 가기 위해 좀 지나다 보이는 풍경하나

충청북도는 십년넘게 드나드는 사람없이 일백오심만이 모여살았다.

세종시가 생겨나고 행정구역 금이 다시금 그어지더니 십만이 늘었다하다.

실제 늘었는지 금을 다시 그은 연유인지 모르지만 충북의 팔할은 이런 동네다.

도청이 소재한 청주 그리고 지금은 통합되어 청주시가 된 청원군 일원의 평야지대를 제외하고는 산속에서 산을 벗삼아 산을 의지해서 옹기종기 모여사는 모습이 정겨워보인다.

소조령 쉼터에서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본 모습

자전거에는 변속기가 있다.

페달을 굴러 돌아가는 앞 기어와 뒷바퀴에 있는 뒷기어의 치자비를 핸들에 있는 레버로 조작한다.

오르막에서는 체력과 속도에 맞게 그때 그때 치자비를 바꾸어 주는것 또한 기술이다.

소조령은 수안보에서 연풍을 가기 위해 넘어야하는 고개다.

거지반 올라간 곳에 이렇게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간식을 먹거나 물을 마시거나 하면서 스트레칭도 한다.

쉬고 있노라니 우리 아해 또래의 젊은이 셋이서 올라온다.

미니벨로라 부르는 바퀴가 작은 자전거로 마치 오토바이 처럼 쉽게 쉽게 올라온다.

돌아보는 것들은 모두가 소중하고 그만큼 아쉽기도 하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만 그게 언제였던가?

수염만 조금 자라나면 안해는 면도좀 하라 늘 잔소리를 한다.

새재길 산적이라도 나오면 어쩌겠나

이렇게 터프한 모습을 보이면 그나마 낫지않겠나?

셀카로 찍고 보니 면도 아니함만 못하다.

소조령 정상

이정표에 적힌 거리 표시가 재치있다.

산을 오를때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르막길은 늘 힘겹다.

소조령은 오르막이 꽤 길긴 하지만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아 적당한 변속으로 천천히 오르면 누구나 자건거에서 내리지 않고 오를수 있다.

그런데 연풍까지 내리막 또한 완만해서 내리막이 시작되어도 얼마쯤에서 가속으로 인한 브레이크 한번 잡고서는 물경 십여리 폐달 한번 밟지 않아도 그냥 굴러간다.

시원하고 재미까지 보태져 오르막때 수고한 것에 비해 너무 과분하게 돌려받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도착한 연풍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는 행촌교차로 인증센터로 더 널리 알려진 곳이다.

충청북도에 충북선이란 철도가 있다면 자전거길로는 오천 자전거길이 있다.

연풍에서 부터 시작하여 인근을 흐르는 5개 하천 즉 쌍천,달천,성황천,보강천,미호천을 지나오면서 지방하천 제방길과 구 도로길을 오가며 닦아놓은 것이다.

뒤늦게 닦은 길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부터 내 사는 오창을 지나 세종시 못미쳐 신탄진에서 부강을거쳐 미호천과 합류하는 합강 공원 즉, 금강 자전거길과 만나는 곳까지 105km를 말한다.

그 시발점이 여기이다.

자전거에 찍힌 48km는 집에서 오근장역까지 7km 그리고 충주역에서 탄금대, 수안보 거쳐 이곳까지 온 41km 가 합산된 거리이다.

수안보쪽으로 오다가 공사구간 만나 우회 안내판 따라 오다가 안내판이 사라져 돌아온 길이 더해졌다.

자전거 길은 도로옆에 파란색 실선을 그어놓아 그 선따라 가기도하고 아스팔트 같이 검은색 도로에 가끔씩 흰색으로 자전거도로임을 알려주는 자전거 모양을 그려 놓았는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색이 풀에 가려있거나 퇴색하여 희미하거나 없어지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다른 생각하면서 무심코 달리다가 놓치거나 한다.

때로는 어림짐작으로 다시금 찾아가거나 그냥 아는 차도따라 가거나 아니면 오던길 다시금 돌아가서 자전거길 찾아 제대로 가거나 해야하는데 이 모두가 피곤하고 짜증나기는 매 한가지였다.

그렇다 모두가 그런경우만은 아니다.

길을 잘못들어 되 돌아오다 만난 신이 그린 벽화

한참이나 서서 고글까지 벗고 신께옵서 벽화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깨달음이 없어 일단 사진기에 담아가서 숙제삼아 집에서 풀어야겠다. 찰칵!!

길 가다가 눈에 팍 찍힌 집 한채

모양이 특이하고 깔끔해 보여 나도 저런집 짓고 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퇴직해서 집 짓게 되면 다시금 찾아와서 자세히 살펴보고 가리라!

이런 길은 자전거 길 치고 상태가 가장 좋은 길

게다가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으니 그 노랫말 따라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뒤에서 순풍까지 불어주어 시속 30km로 달렸다.

급브레이크 잡고 서서 셔터를 누르는 순간

"오늘 한장 건졌다." 느낌이 왔던 곳

무리지어 가던 자전거패들이 인근 차이나레스토랑에서 짜짱면 시켜 먹고있었다.

빈말을 아니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내가 지나가는데도 밥먹고 가라소리 하나 하는 이 없다.

지난 추석때 처럼 슈퍼문이 높게 떠 올라 이곳에 금빛 쏟아내게 되면 그때 이곳을 걸어볼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괴강 인근 강변 도로

누가 뭐래도 가을이다.

지난 여름은 참 쉽게 지나갔다.

내 나이 한 살 더해져도 어깨가 그리 무겁지는 않겠다.

이왕지사 늙은 몸, 늙어가는 몸

쉰 일곱이면 어떻고 쉰 여덟이면 어떠랴!

먹고싶다 더먹고 먹기싫다 아니먹을수 있는 나이가 아니더냐?

집에 눈이갔다가 집아래 배에 눈이갔다.

그러고나서 집과 배와 강속에 비친 집과 배에 눈이갔다.

괴강 인증센터

나는 낚시도 즐겨했고 등산도 가끔한다.

낚시꾼은 낚시하면서 생겨난 쓰레기를 되 가져갈줄 모르고 산에 오른 사람은 내 쓰레기는 물론 남이 버린 쓰레기까지 되가져 온다.

나는 낚시하면 낚시꾼이 되고 등산하면 등산객이된다.

자전를 타고 보니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쓰레기 처리는 산에 오른 사람보다는 강가로 낚시나온 사람들이 하는 짓에 가깝다.

자전거길이 산보다는 강가에 주로 나있기 때문일까?

이 길은 안동다녀 집으로 오는 길이기도 한다.

눈에 뵈는 풍경이 모두 낯익은데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은 자동차 타고 다니면서 본적이 없다.

백로공원이란 증평에 만들어 놓은 공원이고 이곳에 인증센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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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보다 더 눈부시게 피어난 꽃밭의 꽃

이쯤에서 점심을 먹어야겠다.

생각하니 옆에 벤치까지 마련되어 있다.

배낭을 풀고 보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 또한 절경이다.

이렇게 수려한 풍광에 점심 독상 차려 먹을라니 갑자기 목이 매인다.

안해는 일전 병원에 다녀오더니 지병이 악화되어 어쩌면 "투석"으로 갈지 모른다면서 전화통속에서 엉엉 울었다.

신염 진단받은지 근 이십여년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는것이 기적이며 그때 당시 같은 진단 받는 사람들 모두다 "투석"으로 갔다했다.

그러던 의사선생님이 안절부절 하더라했다.

일주일 뒤에 다시보자 혹시나 좀 나아질지 누가 알겠나?

그러고 하루 이틀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것 같아 보였다.

자전거 타고 멀리 갈적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주먹밥 만들어 주고 이것 저럿 챙겨 배낭꾸려주는 안해

전화기로 사진찍어 카톡으로 보냈다.

"주먹밥 맛있어요. 잔뜩 먹고 힘차게 달릴게요"

"좋은 추억 많이 많이 만들어 오세요"

점심먹고 괴산을 지나 증평가는 길

잃어버린 자전거길을 어렵게 찾아 가는길 자전거 도로를 이렇게 파 헤지고 공사중이었다.

자전거 들고 지나서 가다 보니 앞서가던 괴강에서 점심먹으러 간다던 젊은이 셋이서 맞은편에서 온다.

"길 잘못드셨어요. 따라오세요"

들판길 돌고 돌아 차도로 들어섰는데 아무래도 아니다 싶어 저만치 앞서 가는 젊은이들을 부르고 싶은데 따라갈 재간이 없다.

미원 방향으로 가는 이정표를 보고 아니다싶어 가까스로 길가는 차 세워 증평가는 길을 물으니 자전거길 아는 사람들이 없다.

다시금 되돌아서 차근 차근 되짚어 가다 보니 아까 가던길 다시 한 바퀴 돌고 제자리도 오고 나니 머리까지 따라 돌 지경이었다.

가까스로 옛 구도 따라난 모래재 고갯길을 찾았다.

차길은 알되 자전거길을 몰라 헤매다가 가까스로 찾아 오른 모래재

시간을 자꾸가고 길은 나오지 아니하고 몸이 달아 헤매다 보니 아파오던 다리도 언제 그랬냐는듯 외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모래재 정상에 오르고 보니 이제는 집에 다온듯 하지만 그래도 갈길이 적잖게 남아있다.

일전에 바림쐴겸 다녀갔던 증평 백로공원

한번 갔던길 하고 처음 가는길 하고의 차이가 이렇게 큰줄 미쳐 몰랐다.

팔결교 다리 중간쯤에서 바라본 모습

나무와 집이 묘하게 어우러진 그림하나

나무는 큰 만큼 그늘도 넓다.

같은 자리에서 쳐다본 팔결교

아주 오래전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여 천렵도 하고 조카들 떼지어 물놀이도 하던곳

지금의 모습이 이러하니 옛날을 회상하는것으로 족해야 했다.

지나온 다섯개의 천

이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중에 맏이가 미호천이고 미호천은 천이라기 보다는 강이라 불러도 될 만큼 면모를 갖추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다가 눈만 뜨면 낚시가방 챙겨 이렇게 강가에 나앉은 적도 있었건만

어느날 잠시 뜸했던것 말고 아무런 이유없이 강가에 가고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나에 비하면 한결같은 저들. 그래도 부럽지는 않다.

도합 8600세대

시골에 지어진것 치고는 가장 큰 규모가 아닐까?

운명처럼 찾아든 저 8600채 아파트중의 하나가 내 집이다.

그러고 보니 면민에서 읍민이 되고 이제는 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되어 비로소 시민이되었다.

모양이 참 이뻐서 붙였던 속도계

단순한것을 좋아하는지 100km가 넘으면 다시 0km부터 다시 시작한다.

오늘 총 주행키로 144.1km

일전 군산까지 158.8km에 이어 두번째 긴 자전거 여행

의지의 사나이라 안해에게 칭잔들었고

냉장고 속 막걸리 한 병 팔순 노모와 나누어 마셨다.

115주년 철도의 날은 이렇게 기념되었다.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