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부치는 편지-오름에 대한 추억
친구!
우리나이 제주도 한두 번 아니 댕겨간 사람 어디있겠나만 적잖은 경비들여 왔다손 치더래두 여기저기 소문난 볼거리 골라 수박 겉핥기식으로 건성건성 보고 돌아가는 것이 제주도 구경 아닌가 싶으이.
알다시피 내가 지난 여름 40여년 댕기던 직장에서 손 띠구 이곳에 머물구 있잖은가? 그러다보니 제주란곳을 느긋한 마음으로 자시 좀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거여. 그래서 맨 처음 찾은 것이 비자림 휴양림이었네.
그런디 가는날이 장날이라구 지난 이틀간 제주를 할퀴고 간 태풍 때문에 시설물 점검을 한다는 겨. 못 들어간다는 얘기지. 그것도 모르구 나같이 찾아오는 사람덜 간간 눈에 띄는디 하나같이 낭패 본 얼굴루 선뜻 발길을 돌리지 못하구 있던 차에 손님 하나 내려놓구 돌아갈라하는 택시 기사한테 물었지.
부근에 어디 갈만한디 읎냐구말여. 그냥반이 일러준 디가 오름여 오름.
다랑쉬, 용눈이 고만고만하니 셋트루 보구 가시라 이거여.
엎드리문 코 닿을 거리라던 택시 기사의 말처럼 금세 입구에 도착하구보니
오름새가 대충봐두 이십층 아파트 꼭대기 사다리 걸쳐 놓은거 같은디다가 입구가 우거진 숲사이로 동굴처럼 나 있는디 쉽기야 하겄어. 몇발짝 떼자마자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걸.
나이탓이려니 했지. 옛날같어봐. 동네 사랑방에 모여앉아 새끼꼬는 군번두 지나 바람벽에 등기대구 앉어 담뱃대 꼬나물구 오가는 얘기 껴들어 말참견이나 할 나인디 무슨 ‘노가다’ 뛰는것두 아니구 사다리 타드끼 높은딜 올라가야 한다니 말여. 그나마 질통이라 부르는 등짐이 읎으니께 천만 다행이지. 좌당간 그리키 한참을 올라가다 보문 이맛박이 근지럽지. 땀방울 맺혀 콧등타구 내려오는 그 간지럼.
살아온 세월이 얼만가? 우린 알지. 땀이란게 말여, 흘린만큼 즌자계산기루 계산해서 에누리 읎이 돌려받는다는거.
능선이라구 하지.
낮은곳에서 높은곳으루 서서히 올라가다 질루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루다가 그어진 선. 그 길따라 걷다 보문 그것이 오르막이건 내리막이건 구름위를 걷는거 같은게 몸이 게벼워져. 게다가 멀리 내려다 보이는 곳에 펼쳐지는 그림을 보다보문 내가 크리스챤이 아니래두 앞뒤 쏙 빼구 ‘여호와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대목이 딱 떠올르거든. 하나같이덜 아름답게 뵌다 그 얘기지.
오름, 오름 ... 오름이 뭐냐구?
올라가다, 오르다의 명사형 오름
난 학자는 아니지만 우리말의 어원이 그리키 어려운게 아니라구봐
봄에 피는 꽃을 자시 보니 봄 겨울지나 우리 맞이하는 계절이 그러하듯
오름은 뫼산자의 산을 빌어쓰기까지 우리가 써오던 올라야 하는 높이있는 곳에 오름을 그냥 오름이라 부른거아니겄나 그리키 생각하지
거기 한참을 머물다 내친김에 지척에 있는 용눈이 오름까지 올라간겨. 거긴 나지막한 경사따라 천천히 올라가. 다랑쉬보덤 참 착한 오름이지. 어지간히 올라갔다 싶으문 가운데는 움푹 패인거 분화구 디려다 보문서 간밤 적잖은 비 내렸는디 물한방울 안고인게 이상하다싶다 생각하다 앞을 본겨
봐봐
저 능선이 얼마나 곱고 부드럽고 아름다운지 그 길 걸어봐.
구름위를 걷듯 가비얍고 뛰면 날아갈 것 같이 몸과 멤이 같이 게벼워지는 겨
김영갑선생을 아시는가?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의 오름을 탐닉하고자
사진기 둘러메구 곳곳을 뒤지고 돌아댕기다 짧은 생을 마감한 사진작가.
그냥반 증말루 제주의 속살을 본거가터
그래서 제주에 많고 많다는 신령들의 노여움을 샀던게지. 한참 살 나이 일찍 가셨다구 들었네.
단명은 천재덜 얘기구 우리덜 생은 길어. 유별나게 못된짓 하지 아니하구 적당히 부지런하게 사는드끼 살다보문 대충 백살까지는 산다는거 아녀?
제주도- 뱡기타문 한시간 남짓여
어려운 사돈집 맨치루 한두번 댕기구 말것두 아닌디
올적마다 겉핥기식으루 훑구 지나가보구서 어띠키 제주를 알겄냐말여.
오름을 올라. 올라가서 정해진 길따라 천천히 걸어봐.
왜 이리키 발걸음이 가벼운지 새신을 신고 뛰어보는 기분으로 폴짝 뛰어봐
정수리가 가렵지 않던가? 머리가 하늘에 닿았을 껀디
바람이 불어올거여. 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여봐
우리보다 키 작은 나무들이 바람과 무슨 얘길 하는지
가지를 서로 부딪히며 혓바닥 같은 잎새들이 무슨 전갈을 가져오고 가져가는지. 저 아래 낮은디서 허리꺾고 밭을 갈거나 고랑따라 씨감자를 묻거나 그 곤한 노동을 견뎌내던 제주사람덜
그들에게 다시금 고랑따라 심고 가꾸고 거두기를 반복하는 힘겨움을 견뎌내거나 덜어주었던 것은 하늘과 맞닿은 저 부드러운 능선타고 넘어오던 바람이 아니었나 싶네. 자빠진 아해의 손에 난 생채기를 보듬어 호호 불어주던 엄마의 입김처럼 팍팍한 살림살이 안쓰러워 한숨 내 쉬는 제주에 유독 많다는 신령들의 애정과 연민섞인 한숨 같은 바람
강원도 높은산 화전일궈 살아내면서 아리랑 노래부르며 넘어가던 강원도사람덜의 그 노래처럼 험한 땅 험한 날씨 바람맞아가며 살아내던 제주의 사람과 제주의 나무와 제주의 풀포기들. 가끔은 내맨치로 오름을 오르내리며 애환을 발자국 마다 새기며 혹은 내려놓으며 살아온 제주 사람덜이 오르던 오름. 그 오름 나도 올랐다는 얘기 이리 길게 썼네그랴
너무 진지하게 듣진 말게
혹여 누구처럼 홀린 듯 미쳐 아예 눌러앉을수도 있으니께 말여.
함덕에서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