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회룡포 - 불행한 추억 하나

조강옹 2022. 4. 26. 13:08

악마의 발톱이 할퀴고 간 흔적

차량이 후진으로 이렇게 빨리도 다가올 수 있구나!

운전자가 미쳤구나!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그 짧은 순간 뇌리에 스쳐 지나간 생각이었다.

충격음이랄지 파열음이랄지, 얼핏 들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

 

"우야노! 이를 우야노!"

아내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무릎엔 깨진 유리 알갱이가 범벅이 되어있었고 아내는 넋이 나가있었다.

 

 

급경사 오르막이었고 왼쪽으로 100도쯤 급 커브길이었다.

앞 차량에 후진등이 켜져 있었다.

너무 안으로 돌다 보니 회전반경이 나오질 않아 후진하려는 줄 알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창문을 내리고 어서가라 손짓했다.

 

문이 열리는 것이 신기하고 고마웠다.

밖에 나와서 보니 차는 처참하게 찌그러져있었다.

몬스터가 할퀴고 지나간 흔적치고 내 몸둥아리가 멀쩡한것이 신기하고 고마웠다.

 

그 몬스터는 아주 절묘하게 내 차 뒤에 일렬로 주차하듯 멈춰서 있었다.

오십대로 보이는 여자운전자가 사색이 되어 다가왔다.

 

"어머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장시간 통화를 하더니 이내 냉정해졌다.

좀전의 미안한 기색도 가신듯했다.

 

아마도 남편이나 아버지나 기타 지인으로 부터 자문을 받은 모양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암말두 말고 보험사 직원이 올때까지 입다물고 있어"

 

여자운전자는 차분하고 충실히 그 지침을 준수하는듯 보였다.

친정어머니로 보이는 노인네가 다가와 격노한 얼굴로 왜 차를 거기세 세워서

우리로 하여금 들이받게 했느냐고 따지듯 나무란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연세가 있으신 만큼 내가 이해할게요"

 

 

평소 따지기로는 나보다 한 수 위인 아내가 대응하지 않은 것은 그때까지도 아내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놀랬던 것이다.

육중한 SUV차량이 우리를 위해 돌진할때 심약한 나는 정신을 잃었고 아내는 그것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 보았으니

얼마나 놀랬을까?

 

"엄마 이러문 안돼"

민망했던지 운전자가 그 노인을 되돌려 보냈다.

 

 

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란 말이 생각났다.

까무러 치길 잘했다.

 

상대운전자는 중고생 쯤 보이는 딸아이와 함께 서있었다.

 

나는 그 모녀에게 다가가

"일부러 그러지 않은거 알고 다 이해합니다.

입장을 바꾸어 나도 그러지 말란법도 없지요

너무 미안해 하지 마세요"

 

딸아이가 까닭모를 눈물을 흘렸다.

점잖은 노인의 하해와 같은 이해심에 감동해서일까?

 

왜 상대의 일방적 잘못에 대해 큰소리 한번 내질 못하고 속으로 삭여야할까?

돌이켜 보면 늘 그랬다.

 

직장다닐때

늦게 출근하거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직원들에게 화 한번 내보지 못하고

늘 너그러운척 점잖게 타이르고 설득시켜야했다.

 

그렇게 배웠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래야하는 것이라 스스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차를 바라보노라니 속이 상하고 울화가 치미는데도 큰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외려 가해자를 안심시키려했다.

 

늘 그랬다.

내가 양보해야하고 나보다는 남을 더 배려해야하고

이런 이타적인 삶의 근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얼마나 놀랬을까?

다친데는 없나?

동승자이며 인생의 반려자인 아내를 저만치 버려두고

왜 가해자를 찾아가 안심시키고 놀라지 않았나 걱정하고 배려하고 있는 나를

먼 발치서 쳐다보며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난 언제까지 이렇게 오지랖 넓은 삶을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