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기행(2)- 고성 왕곡리 마을에서
어느 집 처마 밑에 걸려 미이라처럼 말라가면서
생전에 살아 움직였던 것은 죽어서 움직이지 아니하고
살았으되 죽은 듯 움직이지 않던 것은 아직 죽지 아니하고 "씨앗"으로 걸리었다.
자전거를 즐겨 타던 작은아들이 제 차에 자전거를 싣고 와 동해 바닷길 따라 달리다가
이정표보고 다녀갔다면서 가보자 해서 들른 곳 - 왕곡리.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어른들은 일하러 들로 나간 내 어릴 적 동네처럼
텅 빈 마을, 내 숨소리 내가 들으며 훔쳐보듯 기웃거리는 것이 한편 불편하고 한편 조심스러웠다.
한발 한발 까치발걸음 옮겨가며 이집 저집 기웃거리면서
내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대한 추억이 저 옥수수 씨앗 같이 기억 속에서 죽은듯 살아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씨앗”이 다시금 부활하듯 되살아나 잠시잠깐 오래된 과거 속으로의 시간여행이 될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대부분이 그러했다.
적당히 가난한 사람들은 초가집 짓고 살고 적당히 부유했던 사람들은 기와집 짓고 살았다.
그렇다고 반드시 기와집 아랫목이 더 따뜻했던 것은 아니다.
쪽박 깨지는 소리는 왕왕 기와집 높은 담벼락 타고 흘러나오기도 했고
눈비 맞아 잿빛으로 변해가는 이엉 덮인 - 담벼락조차 없는 초가집 문틈으로 해맑은 웃음소리가 새 나오기도 했다.
그 적당히 가난했던 그래서 웃음소리 문밖으로 흘러나올 듯한 집 한 채 눈에 띄이나 싶더니 다가감에 따라 호기심에서
경계의 눈초리로 바뀌던 고양이 모녀 -
저 산등성과 초가지붕과 나무와 돌담위에 얹힌 이엉까지
자연과, 사람이 지은 집이 이렇게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수가 있을까?
들여다보노라니 지붕을 겹겹이 동여매다 시피 한 것은 이곳이 춥고 바람 잦은 강원도이기 때문이려니 하였다.
대부분의 집에 담장이 없다.
얼핏 흘려듣기로 집성촌이라 그러하기도 하였겠거니와
옛날부터 우리는 진즉에 동네를 "우리 동네"라 불렀다.
마당 한켠쯤은 언제나 이웃을 위해 내어줄수 있는 상시 개방의 대상이었고 옆집이나 윗집 저녁 밥상에 오른
메뉴는 익히 집작할 수 있을만큼 개방적이었는데 다가 툇마루에 밥상 내어 먹다가 지나가는 이웃 불러들여 숟가락 하나
얹어 같이 밥 먹던 시절이고 장소였다.
적당히 잘 살던 사람들 - 이를테면 종가집이거나 적당히 가난했던 사람들의 당숙 쯤 되는 어른이 살던 집 같은 기와집
이쯤에서 잠시 집고 넘어가고픈 걱정 하나는
이 촌로의 주절거림은
어디까지나 눈앞에 보이는 그림에 아직 살아있는 마른 옥수수의 “씨앗”속에 잠자던 내 기억속의 어릴 적 살던 동네와
그때 그 사람들과 스쳐지나가는 생각 잠자리채로 잡아채듯 생각 버무려 내 뱉는 넋두리라는 말씀으로
특정하고 있는 이곳 왕곡리 마을과 사진속의 집과 그곳에 살고 계실 주민들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이를테면 주말드라마 시작에 앞서 자막으로 안내하는 그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밝혀드린다.
동네 집집마다 번연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인데
가난이니 부자니 얕은 생각으로 함부로 재단하여 드리는 말씀은 아니라는 말씀 조심스레 드리면서
이런 저런 집에 이런 저런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정겨운 동네
왕곡리는 다름 아닌 내 어릴 적 살던 동네와 다름아니고 처마 밑에 걸리어 죽은 듯 살아있던 옥수수 "씨앗" 움트듯
아주 오래된 기억- 내 살던 동네에 대한 추억이 스멀스멀 움트듯 뒷꼭지가 가려워오던 2022년 8월29일 한낮
여기는 강원도 고성 왕곡리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