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축사
사랑하는 아들아!
아가야!
이리 보니 참으로 멋있고 아름답구나!
축하한다.
나는 1971년 중학교에 입학했다.
두 달쯤 지나서 참고서를 뒤적이다 아주 짧은 시 한 편을 발견했지.
그곳에 쓰였으되
내사 가난하여 꿈이 있을 뿐
그대 발아래 꿈을 펴노니
사뿐히 밟고 오시라 꿈에 오는 이
가난하지만 꿈은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그 꿈을 펼치면
그 길을 통해서 누군가 내게로 오지 않겠나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문처럼 즐겨 외웠다.
스물여섯 살 나던 해 봄날
내가 펼쳐 놓은 꿈길을 따라서 아리따운 처자 한 사람
거짓말처럼 내게로 왔다.
혼주석에서 지켜보고 있는 너의 어머니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때 내가 느꼈던 것은 경이로움이었다.
그해 가을 우리는 결혼을 했고
그 길을 따라서 두 아들이 차례로 우리에게로 왔지.
그때의 느낌은 감동이었다.
그리고 오늘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네가 우리 가족에 합류했다.
내게는 40년 만에 또 하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국어사전에 어떻게 정의되어있는지 모르겠다마는 감동보다 한 단계 더 강한 울림이 있는, 나는 이것을 환희라 말해주고 싶다.
오늘 너희 부부가 하객들 앞에서 백년가약을 맺는다는 것은 새로운 꿈을 펼치겠노라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할 것이다.
지혜롭고 현명한 우리 아들 내외를 믿고 사랑하고 응원한다.
오늘 이 자리에는 양가 어머니를 비롯해서 내 인생의 멘토 고모님 내외분과
누님 세 분도 함께 자리하고 계시단다.
누군가의 아내라는 이유로 또 누군가의 딸이라는 이유로 늘 남편을 앞세우고 말없이 뒤를 따라야만 했던, 그리고 남자 형제에게 교육의 기회를 자발적 양보를 해야 했던, 그 불공정을 운명인 양 받아들이고 나아가, 묵묵히 응원하고 견뎌낸 이 분들을 나는 존경하고 사랑한다.
잊지 마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행복과 안온함은
이분들의 땀과 눈물이 이루어낸 성과이지
우리 남자들이 맘 편히 누려야 할 복이 아니다.
우리 몸에는 부끄러운 남성 우월적 DNA가 흐르고 있다.
아버지 탓이다.
아내에게 헌신까지는 아니라도 무한 양보하고 희생해야 한다.
미안하다.
대를 이어 갚아야 할 부채다.
세월이 흘러 네가 아버지 나이 되었을 때
그때도 “아버지가 옳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하고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부디 가슴에 새겨라!
사랑하는 아가야!
자고 나면 벌판에 공장이 들어서고 벌집처럼 그만큼의 일자리가 늘어나던 시절
땀 흘려 일하면 하는 만큼 에누리 없이 대가가 주어지고
그래서 나름으로 열심히 살면서 결혼하고 자식 낳아 키우면서
내 집 하나씩 마련하고 비로소 꿈을 이루었다고 흡족해하던 시절
농경시대에서 산업화로 들어갈 즈음이 내 청년 시절이었다.
6공화국의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실감하기도 했었지.
이어,
누구나 내 차를 가질 수 있어 원하는 곳을 날개 달린 새들처럼 자유로이 나다닐 수 있고
인터넷을 이용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것 모두를 얻을 수 있는 지식정보화시대로의 전환은
조물주가 선심 쓰듯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내려준 요술 방망이와 다를 것 없는 축복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고 나면 있던 일자리도 없어져 품고 있던 꿈을 하나씩 접어야 하는 아픔은 너희 스스로 극복해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단다.
아가야!
하루 한편씩 시를 필사한다는 네 얘기를 접하면서
웬만한 등산로에 하나씩 있는 “깔딱 고개” 그 험한 고갯길 오를 적 입안에 녹여 삼키던 사탕의 달콤함이
정상을 오르는 데 큰 힘이 되었던 기억을 되새기며
그렇게 시를 쓰고, 읽고, 읊조려가면서 더해지는 생의 달콤함이
너희들이 너희 시대의 “깔딱 고개”를 넘어가는 데 큰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
하여,
우리 함께 살아가는 나날들이
세상, 소풍 나온 듯 즐겁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것 - 이 시대 부모로서의 새로운 꿈이기도 하단다.
자녀들의 새로운 삶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늙어간다는 것은 우리 부모가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자 완성의 마지막 퍼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연으로 우리 가족과 함께하는 삶이 그래서 새롭고 소중하다. 축하한다.
2025년 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