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옹 2019. 12. 23. 19:30

친구!


전화를 할까 하다가 글로 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아 이렇게 컴 앞에 앉았다네.

먼저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같이 해야 할 것 같아.

중생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느껴질 때 부처라 했던가?

남의 자식을 내 자식인양 귀히 여길 줄 아는 자네 또한 이 시대 부처가 아닌가 싶네.


자식을 키워오면서 늘 따라다니는 걱정이 너무 많은 시간을 컴 앞에서 보내는 것을 지켜보면서 언제 좀 뛰고 땀흘리고 그래서 참고 견디는 것을 배우나 하는것이었네.

지난 겨울 이야기가 되겠네.

제 친구들 하나 둘씩 군에 간다 소린 들려오는데 내 아이는 병무청 홈페이지 몇 번 들락거리더니 뭉기적 거리는 눈치였어.

요즘은 웬만한 것이 다 컴으로 해결하는 시대 아닌가?


왜 그러냐 물었더니 편하고 좋은 부대 지원하는 것은 이미 다 마감이 되었다는 거지.

군 지원을 무슨 명절에 기차표 발매하듯 선착순으로 지원을 받고 보니 그럴 수밖에..

남은 자리라곤 전방 보병부대 밖에 없다는 얘기였어.


내가 그리했네.

기왕에 가려거든 보병으로 가거라. 그것도 전방으로 가면 금상에 첨화다.

남자들이란 늙어 죽을 때까지 술 한 잔만 들어가면 군대 얘기하는 거 너도 보아왔잖느냐

우선은 힘들어도 견디어 내기만 하면 제대한 그날부터 목숨 다하는 날까지 젊은 시절 내가 이 나라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지.


망설이던 아이는 급기야 마우스로 클릭을 했고 날짜 받아 강원도 춘천 어딘가에 있다는 보충대로 밀어 넣다시피 군에 보낸거야.

지난 2월의 일이었지.


내 아버지께서도 나를 군에 보내놓고 이러셨을까싶게 눈에 밟히는 날들이 지나고 몇 통의 편지와 전화가 오갔지.

생각보다 편하고 부대원들이 다 잘해주니 견딜만 하다고 그러면서 제 친구들에게는 군생활 장난이 아니니 죽어도 군에 올 생각하지마라 그랬다나 어쨌다나.


그러고는 백 일만에 휴가를 나왔어. 지난 월요일이었지.

그 백 일 사이에 게으른 대학생에서 군기가 바짝 든 대한민국 육군 이등병이 되어 있었어.

참 신기하고 고마운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는 씩씩해졌고 군인 티가 나더란 말이지.


짧은 휴가 쪼개서 시내도 들락거리고 짬내어 낚시도 하루 같이 다녀왔네.

하루는 제 친구들 불러모아 마당에 둘러앉아 삽겹살 파티를 열었던 모양이야.


마침 같이 입대했다가 제주도로 의경근무를 하게 된 친구 얘기도 듣고 먼저 다녀간 친구들 얘기도 건네 들으면서 아이는 아마도 제가 제일 힘들고 어려운 부대로 배치받아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모양이야.


그러던 차에 자네에게서 전화가 왔고 통화내용을 아이가 옆에서 듣게 되었던거지.

자네의 말을 듣고 무심코 아이에게 물었어. 설마 그리 대답할 줄은 몰랐지.


'아빠 친구가 네가 원한다면 편한 곳으로 옮겨준다 그러는데 너 그리할래?'


갑자기 무슨 얘긴가 싶어 눈만 껌벅이더니 금새 알아차리고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더군.


'그렇게 할 수 있대?'

눈이 커지고 있었어. 아이의 맘속에 기대도 그만큼 커지고 있었겠지.


이제 알겠는가?

서둘러 전화를 끊었던 이유를,  속으로 아차 싶었네.


아이는 많은 생각을 했겠지.

말 그대로 몸으로 때우는 고달픔이 청산되고 책상머리에 앉아 행정일을 보는 자신의 모습도 그려 보았을테고 그 힘든 행군이며 구보며 중대, 대대훈련 청산하고 약간의 스트레스 감내하며 행정반에서 편히 지낼 수 있게 해주겠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이 아비도 생각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네.


그러면서도 귀대일은 다가왔고 자네도 알잖은가?

휴가 나왔다가 들어가는 것이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같은 심정이라는거

그래서 그냥 버스태워 보낼려고 했는데 그게 서로 편할 것 같아서 말이지.

아이 에미가 영 말을 들어야지.  핑계는 언제 면회를 가더라도 갈 것인데 길을 알아둘겸 가야한다는 거였어.

실은 안쓰러운 자식 놓치않고 조금이라도 더 곁에 두고 싶은 에미의 욕심이었지.


그게 엊그제였어.

초행길 서둘러 왔더니 홍천 나들목 나와서 시간이 많이 남더군.

물어서 용문사로 찾아들었네.

귀대시간이 다가올수록 아이는 말이 없고 기분은 자꾸 가라앉고....


식당에 들어가 상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이가 작심한 말을 하더군.

'아빠  내 지금 생활이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참을만 해.

조금만 더 견디면 나도 고참될테고 지금보다는 많이 편해질테지.

그리고 부대원들이 다 좋고 내게 특별히 잘해주는 사람이 두 명 있는데 그 사람들이 좋아서라도 그냥 지금 있는 부대에서 근무할래'


친구!

다행이다 싶다가 자랑스럽더라고

잠시나마 흔들렸지만 꺾이지 않는 풀잎같은 아들이 말일쎄.


남은기간, 내 아이는 강원도 높은 산 맑은 공기 마음껏 누비고 호흡하며 이맛박에 송충이 한 마리씩 덧붙여 나가겠지.


친구!

더 이상의 걱정은 않기로 했네.

이미 내 아이는 제 문제를 저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만큼 커 버렸어.

그냥 지켜만 봐도 될 정도로 말이지.

이게 자식 키우는 낙이라면 낙이고 우리 나이에 낙치고 이 보다 더 좋은 낙이 또 있겠나?


고맙네!

자네의 호의는 가슴깊이 간직해 두겠네.

더운날씨 건강하시게.

 

 

2004년 여름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