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유전이거나, 거자유택이거나
전해 내려오는 말 중에 “잘한다 잘한다 하면 행주도 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촌부로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직불제에 관해 아는 부분이 있어 “니르고져 홀배”를 블로그에 두 꼭지로 나누어 올린 글이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듣고 보니 행주도 풀하는 기분으로 내쳐 얘기를 더 해볼까 합니다.
이 시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누굴까?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선거철 정치인들이 특히 즐겨 쓰는 말이고 “힘없고 가난한” 다음에는 으례껏 “농민”이라는 말과 “도시 서민” 이라는 말이 뒤따르지요.
작금의 직불제 논란은 이 중 하나인 농민에게 건네져야 할 “쌈지 돈”이 도회지 돈 많은 지주들에게로 흘러들어갔다는 데서 비롯됐습니다.
이 시대 대표적 약자의 하나인 농민!
그들의 유일한 삶의 터전이요, 근간인 농지는 농민들이 소유하여야 한다.
이른 바 경자유전의 원칙이란 것인데 난 이 대목에서 또 뜬금없이 또 다른 약자의 하나인 도시 서민들을 위한 “거자유택”이란 조어를 하나 생각해냈습니다.
우선 경자유전부터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직불제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개선책이 나오겠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이건 농민단체건 이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가면서 개선책을 모색하기보다는 본질에서 벗어나 자기 논에 물대기식으로 목소리만 높이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살펴 말씀 드렸듯이 직불제의 지급대상은 내 땅에서건 빌린 남의 땅에서건 직접 농사지은 사람이라는 것인데 직접과 간접의 구분이 현실적으로 참 애매하다는 말씀입니다.
언뜻 듣기를 정부에서 내놓은 개선책에 위탁영농은 직불제 지급대상에서 제외한다거나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에 한해서 직불금을 지급한다는 대목이 눈에 띄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시골에 가면 “건달농사” 혹은 “나일론농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업은 직장을 다니거나 혹은 자영업을 하면서 틈틈이 논농사를 짓는 것에 대한 별칭입니다.
논농사는 밭농사에 비해 공정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는데다가 그 공정마다 대부분 기계화되었습니다. 전체 공정도 그러하거니와 단계마다 부분위탁이 가능하다 이런 말씀입니다.
논 한 섬지기. 스무 마지기. 4000평. 13200㎡ 단위를 달리할 뿐이지 논두렁에서서 내다보면 바다같이 넓어 보이는 땅입니다.
기계화되기 이전에 대략 20여명이 하루 종일 허리 꺾어 일해야 끝나는 모내기를 이앙기 한 대에 사람 둘이면 끝낼 수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일 년에 하루 사용하기 위해 집집마다 이앙기를 구입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벼 베는 기계인 콤바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낫으로 베어서 논에 눕혀 놓았다가 마르면 뒤집고 이것이 다 마르면 다시 단으로 묶어세웁니다.
이것을 또다시 한 군데로 모아 우마차에 실어 마당에 쌓은 다음 탈곡기 들이대고 마당질 하던, 다소 복잡하고 오래 걸리던 공정은 바리캉으로 머리 깍는 것처럼 콤바인이라는 벼 베는 기계가 한번 지나가면 이 모든 공정이 생략되고 낱알은 옆구리에 걸린 포대에 탈곡되어 나오고 짚은 뱉어내듯 논바닥에 보기좋게 깔아 놓으니까요.
그래선지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내 집의 연장만 가지고는 농사지을 수 없다”는 말은 누대로 내려오는 농촌의 격언입니다.
열 집 중 아홉 집은 기계를 소유하고 있는 이웃에게 부탁해서 모내기를 하고 벼 베기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단계별로 이웃의 손(기계)을 빌려 농사를 지으면 내 땅 한 평 없이 물꼬 관리만 하면서 대리경작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올 봄에 “강부자”씨 소유의 논 한 섬지기 스무 마지기를 김건달씨가 빌렸습니다.
논 갈기와 논 쓰리기는 각각 박경운기씨와 최트랙터 씨에게 마지기당 2만원씩 주기로 하고 부탁하였습니다. 모는 길러서 판매하는 정모판씨로 부터 개당 2천 원씩 400개를 구입하였습니다.
모내기는 김이앙씨에게 마지기당 2만5천 원씩 주고 하루 만에 끝냈습니다.
2회에 걸쳐 입제로 된 제초제를 뿌렸고 밑거름과 가짓거름, 이삭거름 역시 각각 한 차례씩비료 총 27포대 직접 주었습니다.
병충해 방제를 위해 역시 가루로 된 농약 각각 7봉씩 3차례에 걸쳐 뿌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벼는 무르익어 박콤바인씨한테 마지기당 7만원씩 주기로 하고 벼를 베었습니다. 콤바인으로 벤 벼는 탈곡까지 되어 그대로 미곡처리장으로 보내졌습니다.
김건달씨는 남의 땅을 빌려 농약과 비료만 때 맞춰 주어서(이 일마저 품삯을 치르고 남에게 부탁할 수도 있습니다.) 일 년 농사를 마무리 지은 것입니다. 마지기당 쌀 네 짝 수확이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스무 마지기 80짝 중 강부자씨에게 건넨 20짝 제외하더라도 60짝, 많이는 아니지만 “남는 장사” 입니다.
농사의 팔 할은 하늘(날씨)이 짓는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늘이 도와서 농사가 아주 잘 되었을 때라 할지라도 농사지은 결과를 이렇게 셈으로 하면 셈 자체가 맞지 않지만 얼른(대략)계산해도 8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합니다.
김건달씨는 남의 땅 스무 마지기를 빌려 건달농사를 지어 대략 800만원의 수익을 올린 것입니다. 며칠 전에 나온 보도에 따르면 쌀 직불금 문제로 사퇴한 이봉화 전 보건복지부 차관에게 자경(自耕) 확인서를 써 준 동네 이장이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와서 농민국회의원을 비롯한 의원들로부터 이 전 차관이 농사를 짓지 않았는데 왜 확인서를 써줬냐는 추궁에 “요즘 농사는 기동력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맞서면서 의원이 “이 전 차관이 농사짓는 걸 봤느냐”는 물음에도 이장은 “의지만 있으면 농사짓는 데 시간이 많이 안 걸린다.”고 답했다고 전합니다. “요즘은 기계로 2~3시간만 하면 2000평 벼 베기는 끝난다”는 이장님의 말씀은 적어도 그를 위증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합니다.
위와 같은 경우 직불제는 누구에게 지급되어야 할까요?
다 같이 풀어야할 이즈음의 숙제로 남겨놓고 갑니다만 모쪼록 나라에서 마련해서 지급되는 따뜻한 돈이 힘없고 가난한 농민들만 콕콕 짚어서 돌아가기를 희망해 봅니다.
다음은
거자유택에 대해 말씀드려봅니다.
이태전만 하더라도 저는“논두렁” 로 대표되는 시골 주택에 거하다가 인근 8600세대에 이르는 아파트단지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 아파트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할 즈음에 행정수도라는 얘기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이곳 오창 과학산업단지에 모델하우스가 지어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마당 끝이 논인 내 살던 농가주택은 80년도 시멘트로 찍어낸 벽돌을 쌓고 기와를 올린 집이었고 직장 다니면서 건달농사 짓고 있던 저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분양신청이란것을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일러준 서류를 준비하고 모델하우스란 곳을 갔을 때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엉킨 낚싯줄 모양으로 늘어선 행렬에 도로가에 끝도 없이 늘어선 자동차 행렬
하나같이 얼굴이 뿌연 도회지 사람에다가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 번호판은 서울 경기를 비롯해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아주 용케도 분양권 하나 당첨이 되었는데 이후 행정수도는 물 건너갔고 이곳 아파트에 불었던 투기 열풍은 사그라졌지만 이곳 전체 가구의 80%정도가 전세 사는 젊은 세입자들이라고 들었습니다. 당시 면소재지였던 이곳 과학산업단지에 입주하는 기업들의 직원들과 이곳 지역민들을 위해 짓는 아파트에 왜 외지사람들이 대거 몰려들어 선점하는 것인가?
이런 불만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저를 딴 세상에서 온 사람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팔기 위한 제반행위”
어떤 이는 투기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투자라고도 합디다만 그 사람들이 선점하여 가격을 올려놓은 덕분에 아직 어리고 꿈 많은 자녀들과 주말이면 들로 산으로 소풍 나와 세상사는 재미 만끽하여야 할 이 시대 젊은 부부들은 그 꿈 잠시 접어두고 각고의 노력과 적지 않은 웃돈을 얹어 내 집이라 가까스로 이름은 지었지만 그 외지의 돈 많은 사람들이 올려 받은 웃돈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했고 그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맞벌이를 하여야 하고 형편이 이렇다보니 일주일 내내 졸라매었던 허리끈 주말에 풀어놓고 밀려오느니 졸음이요 낮잠에 숨쉬기 운동으로 숨 골라놔야 월요일부터 다시금 내 집 만들기 과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방과 후 아이들은 퇴근시간에 맞겠금 본의 아니게 사설학원에 보내야 하고 따라서 수입에서 학원비가 추가로 지출되고 그만큼 내 집 만들기 프로젝트의 완성시한을 멀어져가는 것이지요.
농지를 농사지을 목적 외로 구입하지 말고 농사지을 사람들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경자유전의 원칙처럼 아파트를 비롯한 주택도 주거할 목적 외로 구입하지 말고 들어가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거자유택”의 원칙도 같은 논리로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돈푼께나 있는 사람들이 “남겨먹기” 일환으로 자행되고 있는 아파트 사 모으기가 이 시대 누구보다도 젊고 활기차게 살아가야 할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내 집 마련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일로 매진하다 탈진하여 정녕 꿈같이 보내야 할 젊은날의 휴일을 낮잠으로 소일하게 만들었다면 과장인가요?
농사짓기 위해 있는 농지를 부자들이 사들여서 빌려지은 농민들의 수확에서 4분지 1을 거두어 가고 덤으로 직불금까지 챙겨가는 것이나 집 없는 사람들이 들어가 살려고 짓는 아파트를 집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미리 사들여서 정작 들어가 살려는 사람에게 웃돈 얹어 팔거나 세를 놓아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 상가도 아니고 다른 용도도 아닌 사람이 살려고 하는 아파트 가지고 이러면 되겠나 싶은 것이 직불제 이전에 종부세에 대한 우리나라 부자들의 거센 저항을 지켜보면서 아무리 넘쳐나도 모자라는 게 욕심이라지만 지금은 가진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의 욕심을 덜어 나눔으로서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직불제 개선으로 고민하고 계실 정치인들과 관리 여러분
부디 이 시대 힘 없고 가난한 농민과 도시 서민을 위한 경자유전과 더불어 거자유택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과 성찰 있으시기를 기대해봅니다.
깊어가는 가을
일찌감치 붙이고 있던 잎사귀 다 털어내고 홀가분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생각이 많아지는 촌부의 요즈음 하고 싶은 얘기 좀 털어내다 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