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소 파소!”
“안 팔아!”
처가가 안동인 덕에 또, 영화 속의 할아버지가 안동아버지(장인)와 비슷한 연세에
사투리마저 북부지방 특유의 억양까지 빼어 닮아 정겹게 다가왔다.
“소 파소!”
“안 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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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면 나무는 가지라도 흔들리지” 하는 할머니의 푸념이 지문처럼 새겨지는 여운도 좋았다.
딸랑땡 딸랑땡
떨렁 떨렁 땡땡
학교가 파하면 책가방 내던지고 미호천 제방에 매어놓은 소 뜯기러 나갔었다.
이리 저리 풀 우거진 곳으로 소를 몰고 다니다가 쳐다본 해는 음봉산 자락 두어 발 위에 걸린 채 도무지 질줄 모르고 비운 새참 광주리 이고 가는 윗동네 아주머니의 푸념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저놈의 해는 머슴도 안 살아봤나?”
소 뜯기는 일이 책가방처럼 쉬 벗어던질 수 없는 주요 일과 중의 하나였던 유년시절을 보낸 내게도 쇠방울 소리가 워낭소리라는것을 처음 알았다.
잊혀졌던 소리다.
먼저 보고 온 아들은 재미없다 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5분여짜리 예고편이 전부라 하면서 가시려면 그거 보면 안 된다 했다.
“내가 볼 영화가 어디있다구…….”
팔십 하나 되신 어머니께 극장가시자는 오십 둘된 아들의 의중이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누구는 할아버지 눈과 소의 눈이 닮았다고 했다.
나는 가까스로 한발 한발 내 딛는 소의 재껴진 발톱과 발가락 마디가 빠졌다는 할아버지의 가냘픈 그것이 닮아보였다.
소 어깨에나 할아버지의 어깨에나 늘 상 지워진 짐
그래서 늘 비틀걸음이고 그렇게 힘겹게 힘겹게 때로는 나누어지면서 살아온 생
“재미있었지?”
“재미있긴 첨부터 끝까지 소 새끼만 나오는걸 가지구…….”
두어 발 앞서 나오던 어머니와 젊은 딸의 대화를 시작으로 보고 나오는 사람들 한마디씩 하는 얘기 들어온다.
누군가 또 말한다.
자식이 아홉이나 되면서 경운기라도 한대 사드리는 자식 없냐고
옆논에 이앙기 들어서서 척척 모 심어 낼적
늙은 소와 더불어 진 논에 빠져가면서 번지질 하는 장면이 있었지
“보일러는 놔 드렸나봐
궁불 지피는 모습은 한 번도 안 나오는 거 보니께“
........
오래전
도회지 나간 자식이 걸어 다니기 불편하시다고 사드린 자전거를
윗방에 비닐 씌워 간수하던 늙은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때론 아버지의 고집이 자식을 불편하게도 하려니 그런 생각도 했다.
언저리에 소가 묻힌 그 밭살 고운 흙을 맨발로 한번이라도 밟아만 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시린 감촉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저절로 몸이 가벼워지고 금방이라도 어깨짓하면 하늘을 날 것 같은
그런 사람들만이 왜 봄 하늘에 종달새가 그리 높이 날아오르는지 알게 되겠지.
초등학교적
순하디 순한, 늘 콧등이 젖어있던 우리 소!
어느 봄날 고통스런 울음으로 산고를 인내한 나머지 외양간 구석에 턱하니 세상에 나왔던 그 송아지
그 송아지가 살아있다면 오늘 저기 밭살 고운 산밭에 묻힌 저 소와 같은 연배 아니겠나!
인생도 짧지 않지만 소의 생도 저리 살면 짧지 않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온 삶이라면 더욱더 …….
사랑방 모기장 속에 누워 천장의 국화꽃 무늬 세다보면
사립문 옆 외양간에서 들려오던 길게 내뱉는 소의 한숨소리
그리고 소년을 꿈나라로 안내하던 - 비로소 알게 된 - 워낭소리
딸랑땡 딸랑땡
떨렁 떨렁 땡땡
동구 밖이 황천일수 있듯 사십 년 전이 오늘일수도 있겠거니와 소는 죽어도 소리는 남는구나!
........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