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강원도에서의 한밤 두 낮

조강옹 2019. 12. 24. 07:38






집나오면 개고생이란 광고 카피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대책 없는 “가출”에 한하는 얘기일터,


강원도 동해!

철지난 바닷가 바람이라도 쐬고 오자.

마침 하룻밤 묵을 곳이 있어 가까운 동네 친구 기별하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세집이 모인 것이 지난 주말 아침이었다.

악수 할 사이 없이  차 한대로 옮겨 타고 인근 오창 나들목으로 쏙 들어간 길은 강원도로 향한 고속도로의 시작이고 설렘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나이 먹어가는 얘기, 자식들 얘기, 작금의 근황까지 편한 마음으로 얘기 나누면서 한가한 도로 씽씽 달리다 보니 금새 고속도로의 끝이다.


강원도 왔으니 점심은 막국수를 먹어야 하지 않겠나는 의견이 즉석에서 반영되어 나들목 통행세 걷는 여인한테 정중히 우리 낙산 쪽으로 가는데 막국수 잘하는 집 좀 소개해 달라 말하니 기대 저버리지 않고 일러주는데 네비에 찍어보니 우리가 묵을 숙소 인근이다.


시작이 좋으면 과정도 좋고 끝도 좋더라는 생각에 절로 흐뭇해지고 한참 내달리다 홀낏 우리 숙소 지나 꽤 꼬부라진 길 요리 조리 핸들 돌려가며 찾은 길


떡밥 던져 놓으면 용케도 알고 몰려드는 물고기이나

음식맛 좋으면 불원천리 마다않고 찾아드는 사람이나 오십보 백보.

 


너른 마당 빼곡히 대 놓은 자동차 사이 간신히 우리 차 주차시켜놓고

겨우 자리 잡아 앉고 보니 개미굴에 개미 나오듯 꾸역꾸역 몰려드는 사람, 사람, 사람들

주방 어디선가 막국수 그릇 또한 꾸역꾸역 나오는지

넓기도 넓지만 저리 몰려드는 사람 세워놓지 않고 제때 먹여 내보내는 이집 손가락 셈법 또한 기막히다 감탄하고 있는데 차례가 닿았는지 마침내 상위로 올라온 막국수

하루 삼시세끼 국수만 먹어도 밥보다 낫다는 불초 조강

그래서 국수에 관한 한 입맛도 까다롭기 그지없는데

한 저범(젓가락) 입에 넣고 씹어보는데 금새 입맛이 와 닿지를 않는다.


이 정도 맛가지고 사람들이 이리 몰려드나?

하는 의구심과 다소의 실망감으로 한 저범 두 저범 먹기 시작하는데 저범 수가 되풀이 될수록 맛의 깊이 또한 깊어지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뒷맛을 감당하지 못해 남은 국물 벌컥 벌컥 들이키면서  곱빼기 시켰으면 배 터져 죽을 뻔 하였고나 적이 안심하고 나와 커피 자판기 앞에서 아무리 눌러도 커피가 나오지 않는다.

자시 들여다보니 유료다.

그려,  국수 맛이 그러하니 유료라 한들 누가 무어라하겠나?

동전 챙겨 거피 빼 마시면서 한결같이 하는 말이 사람은 여럿인데 입맛은 하나다.

마당옆에 감자고 옥수수고 강원도 온 김에 맛보자

골고루 넉넉히 사서 차에 싣고 가기전 다음에 또 올 때 대비하여 소매깃에 약도 그려넣고

그 집을 나왔다.

 

숙소로 가기엔 이른시간이고 보니 낙산사 들렀다가자

산 불난 얘기 하며 오르다 들어간 곳

보타전 아내의 기도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큰아들 임용고시 앞두고 절을 찾는 횟수도 잦아지고

불전함으로 들어가는 액수도 높아가 카메라 대고 한 장 찍으니

지키고 있던 보살님 손사래 치면서 사진 찍으면 단청이 바랜다면서 나무란다.

중생들 건지는 게 원이라면서 좀 너그럽게 대하면 안 되겠나 싶어 서운한 얼굴을 하고 내려

오는데 개나리에 자목련이며 수국까지 피어있으니 시절이 좀 헷갈리다가 낙산해수욕장 모습

눈에 들어오니 시원하기 그지없다.

  

 

 

맘속에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거  뻥 뚫어내는  바람으로 숨쉬기 운동 한번 크게 하고

어지간히 시간이 됐으니  숙소로 가자.

 

 

바닷가에 맘에 딱 들게 들어선 숙소 배정받은 316호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뒤로 난 밖의 풍경은 가을 들판이다.

문 열고 들어가니 앞으로 훤히 내다뵈는 바다

충청도 샌님들에게 바다가 내려다 뵈는 방에서 하룻밤 묵어간다는것 보다 더한 호사가 어디 있으랴!

 

 

 

방바닥에 벌렁 누워 천장바라보다 모로 누워 밀려오는 파도 내려다보니 슬그머니  졸음이 따라 밀려온다.

잠시 눈 붙이는 것 또한 보약이려니 하고 붙였다.


....................


때가 왔다.

대포항 구경 가자

어둠이 내린 아담한 항구

입구엔 왠 튀김집이 그리 많은지

좁다란 길에 휘황찬란 불이 밝혀지고 좌판의 고기만큼 많은 사람들

 

 

 

오가며 서로 발도 밟고 어깨도 부딪쳐가면서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 우린 운명처럼 도미와 광어와 우럭을 만났다. 챙겨들고 나오는 길은 왔던 길 뒤돌아 오는 길

3층 숙소에 상이 차려지고 국수만큼이나 좋아하는 회

그보다 쬐금 더 좋아하는 소주.  그만큼 또 더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건강을 위하고 행복을 기원하며 한 잔 두 잔 마셔대는데

강원도 물고기에 충청도 양념, 경상도 손맛이 우려낸 매운탕이 상위에 올랐다.

회를 더할수록 거머리처럼 입에 쩍쩍 달라붙은 술과 먹을거리

 

그래 이런 맛도 보고 살아야 하느니 스스로 감격해 마지않으며 일괄 처리해서 끝내고 배 두드리다 누우니 고대 죽어도 이젠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밖에는 오징어 배 불 밝혀 떠있다.

그려, 내일 갈적에 건어물상에 들러 오징어 좀 사갖고 가자.

아주 오래전

궁핍한 주머니 낭만 핑계대어 마른 오징어 안주삼아 깡소주 마시던 시절도 있었으니

 

강원도에서의 첫날밤이자 마지막 밤은 이렇게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