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기행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집을 나서는 것이 집이 싫어서가 아니지
잠시 마음이 들떴어.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 먹을거리 챙겨 싣고 동쪽으로 가는 길
문막휴게소에서 큰아이가 운전을 교대해줬어
덕분에 조수석에 앉아 가는 편안함을 누려가며
그대로 쭈욱 달려 이제는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현암나들목
고속도로의 끝을 나와서 비로소 시장기가 돌더군.
어머니께서 사주신 문막휴게소 감자 때문에 때를 놓쳤던 거지
“이 차선으로 가다 국수집 눈에 띄거든 들어가자”
큰아이에게 이르고 시장기 몰려오는 만큼 좌우를 살피건만
필요할 때 눈에 띄지 않는 목록에 국수집도 포함되었던 모양이야
한참을 지나서 정말 허기질 때 하조대 막국수 간판이 들어왔어
얼마나 반갑던지 놓칠세라 눈을 크게 뜨고 살펴오는데
중간 중간 서너 개의 친절한 간판 덕에 찾아든 국수집은 때가 지나선지 많이 한산했어.
적당히 지저분한 옷차림의 사십대 주방장이 눈에 들어오더군.
오늘 제대로 된 국수 맛보던지 아니면 망치던지 둘 중의 하나렷다.
그러면서도 조짐은 좋은 쪽으로 오는 것을 느꼈어
쫀득하면서도 까칠한 면발에 혓바닥 양쪽으로 스며드는 국물맛
인공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깊은 맛이란 평에 가족들 하나같이 고개 끄덕이고 흡족한 표정으로 배 두드리며 나서 자판기 커피 빼면서 자못 흐뭇해했다네.
시작이 이리 좋으니 이번 나들이는 절반의 성공으로 시작이다.
오른쪽으로 펼쳐진 검푸른 바다 바라보며 한참을 가서야 우리가 묵을 숙소가 눈에 들어오더군.
3층에 올라 짐을 풀고 밖을 바라보니 안마당인양 동해 검푸른 바다가 베란다 밑에까지 와있고 머지않은 물치항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밤늦게까지 저 바다 바라보며 소주병 자빠뜨릴 생각하며 오늘 또 한 번 호강 좀 하게 생겼다.
가만 생각하니 간밤에 잠을 설쳤어
무너지듯 눈 붙였다 깬 시간이 네 시였지
낙산사 들러 대포항가자
주섬주섬 옷가지 챙겨들고 다시 오던 쪽으로 잠시 내려가 들른 곳
길에서 길을 묻다는 돌 위에 새긴 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몇 개의 계단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 팔순 노모께서 숨차하시네
아이들 앞서 보내고 모자간 계단위에 잠시 앉았네.
이번 구경 제대로 잘 왔다 앞으로 살아생전 언제 다시 오겠나 이게 마지막이지…….
혼잣말씀하시는 어머니 아들은 못들은척 고개 돌리며
언젠가는 우리 모자 이별할 날이 오겠지만 그렇다고 이번이 마지막이 되지는 않게 해드려야지 스스로 다짐해보네
바람이 많이 찼어.
어둠이 내리는 낙산사를 뒤로하고 대포항으로 가는 길은 잠시지. 가깝거든.
여전히 주차장은 만원이고 그 짧고 조그만 공간 마주 오는 사람들과 어깨 비벼가며 백열전구 환한 불빛 속에 왼쪽으로 늘어선 식당과 오른쪽 줄줄이 좌판위에 올라앉은 갖은 해물들이 열병식 하듯 도열해 있는 곳
우리들의 만찬을 위해 명을 다할 생선을 점지해야 하는 자리는 송곳 꽂을 자리 하나 없을 만큼 비좁아 제 몸 가누기조차 힘들어 비비적 거리다 문득 좌판위에 생선들과 눈이 마주치고 나니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거야
그 너른 바다에서 마음껏 “찬물을 호흡하다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예까지 왔고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인 고로 요강만한 좌판 고무다라이에 몸을 맡기고 의연하게 때를 기다리는데 나보다 여러모로 처지가 나은 그대 인간들 왜 이리 경거망동들이신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합의하에 몇 마리가 도마 위에 올랐어.
그사이 사람들끼리 오가는 얘기가 있었네. 오징어가 열 마리에 만원
그중 세 마리 덤으로 우리 “봉다리”속에 얹히고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숙소로 돌아왔다네.
회는 왜 바닷가에서 먹어야 맛이 있는지 설명하기가 딱히 그런데
부엉이는 산에서 울어야 하듯 회는 바닷가에서 먹어야하지 않겠나 하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문득했어.
맛있는 순서대로 가격이 정해져 있었고 젓가락이 생선 맛을 먼저 알아버렸네
시원이라 이름 붙은 일백오십만 충북인의 소주 네 병중 두 병을 자빠뜨려 가면서 혀에 감치면서 달라 붙듯하다 이내 녹아 뱃속으로 스며드는데 못미더운 소주가 길을 내가면서 열심히 열심히 배불리기 작업은 매운탕이 나오면서 절정에 달했지.
요때 만큼은 꼭 한번 내가 장가를 잘 갔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아내의 매운탕 우려내는 재주만큼은 천하제일이라해도 결코 지나 지치 않거든
같은 혀가 저지르는 일일지라도 말은 거짓이 있을지 모르되 맛은 거짓이 없지않은가?
아주 기쁜 마음으로 설거지를 했고 일전 주례서준 집에서 보내준 메론이 제대로 익어 후식으로 선정되었지. 작은 아들 언어연수 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으나 난 무슨 얘긴지 못 알아듣겠으니 두 번 세 번 거듭 거듭 생각하고 챙기고 해서 그르침이 없도록 해라 이르고 자리에 누웠네
역시나 검푸른 바다
여기 저기 환하게 불 밝힌 오징어배가 눈에 들어오고 바로 밑 짧은 해변에 다가와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들…….
취기 때문이 아니야 . 바다에 누운 듯 출렁이는 잠자리
밤새 일하는 어부들을 생각했지. 다돼가는 삼십 삼년. 내가 몸담고 있는 일터
팔 할을 난 맞교대로 일해 왔지 않나
그들만이 아니, 우리들만이 알지
힘에 부쳐 헐떡이며 기다리는 그 새벽이 얼마나 먼지
그렇게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우리와 하낳두 다를것 없는 교대자들이 나오고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일터를 빠져나와 마시던 아침술은 얼마나 속이 찌리하며
집에와 누운 자리 잠자고 일어난 대낮은 얼마나 낯설고 생경한지
다시금 그 긴밤 불 밝히고 새벽을 기다리는 일을 반복해야하는것이
얼마나 몸서리쳐질 만큼 진절머리 나는지를 …….
잠을 설쳤어. 자다 깨고 깨다 자고 하는 사이
어부들은 밤을 새웠고 날이 새자 불을 끄고 철수하더군.
그들도 어디선가 그 속이 찌리한 아침술 마실까?
바다위에서 해가 솟는 신기함
게으른 겨울 해 덕분에 구경하고 아내와 같이 해변으로 산보를 나갔네.
고운 모래와 둥근 돌이 적당히 제자리 앉아 파도를 맞이하는 곳
찬바람 맞아가며 걸어가다 아내가 제법 큰 돌 하나를 집어 들더니 기념으로 가져가겠다며 주머니에 쑤셔 넣는 거야
그 돌 바라보며 넌 참 멀리도 시집가게 생겼구나 하다 보니 아내도 참 멀리 시집 온 여자 아니던가? 동병상련의 인연이려니 했지
아침은 어제 남은 매운탕에 물 부어 그 간 맞춰 다시 먹고 설악으로 들어갔네.
설악으로 가는 길
들어가는 길 양쪽 모텔 여전히 그 자리 지키고 침대방 3만원
아주 오래전 설악을 찾을 때 봤던 그 플랜카드 또한 여전하데 그려
입구에 주차료는 그렇다 치고 안에 신흥사 있다는 생각을 잠시 잊었어.
내 이곳을 찾은 이유는 팔순 노모 높이 모셔 아래를 내려다 보시겠금 해 드리려는 이유 말고 없는데 길목 지키고 있다가 나그네 봇짐 터는 산적처럼 문화재 관람운운하며 돈 내놓으라 으름장 놓는 매표소 떡하니 입구에 도사리고 있더군.
어디 예 뿐이던가?
전국 곳곳에 이런 산적 아닌 산적들이 창궐하다 보니 볼멘 중생들 원성이 법당 안까지 들릴 듯도 하건만 고급승용차에 몸 기대고 먼지 피며 오가는 승려들 하나같이 중생들보다 기름진 얼굴에 비만걱정 아니하고 사시는지 그리고 혹시 잊고 계신 건 아닌지 부처님께서도 살아생전 동이 터오면 제자들과 더불어 탁발 나가셔서 밥 빌어 자셨다는 사실을…….
넘어가기로 했네.
아니 깨달음이 있었지
언제 우리가 승려들 덕에 살았나? 승려들이 우리 덕에 살았지 하는…….
케이블카 요금이 만만치 않았는데 퇴행성관절염에 낙산사 낮은 비탈길도 숨 가쁘게 오르시는 팔순 노모를 그 높은 곳으로 가쁜 하게 올려 모셔 놓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곱절이라 하더라도 아깝지 않을 것 같더군
전망대에 계신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아들들과 더불어 계단 길 잘 단장해 놓은 길 따라 좀 더 위로 올랐네.
정작 절경은 그곳에 있었는데 다리 성한 사람들만 이곳에 이르러 탄성을 자아내며 사진 찍기 바쁘고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노나니 노는 것이나 보는 것이나 젊어서 해야 할 것 아니하지 말고 살고지고
다시 내려와 내려가는 케이블카 순서를 기다리는 사이
어머니께서는 또 매점에서 호떡을 사갖고 자손들 멕이시는데 생각보다 엄청 맛이 있었는데 그게 호떡만의 맛이 그랬는지 마침 일행 중 대부분이었던 중국 사람들 쏼라거리는 소리로 인해
“호떡집의 불” 이 생각과 미각과 청각이 기막힌 조화를 이루어 잠시 맛이 우러난 건지 지금도 알 길이 없네.
강릉 쪽으로 내려오다 휴휴암이란 조그만 절이 하나 있었던거 기억하시는지 물고기들이 대거 몰려든다는 바닷가 정말 손바닥만 한 해변이 있고 아기자기 오밀조밀 절 하나 다소곳이 앉아있듯 자리한 곳
거기 들렀다네.
물고기들은 다시 모여들지 않는 듯 아들들한테 한껏 자랑했는데 썰렁하니 고기 몇 마리 오가는 것밖엔 눈에 띄지 않으니 거짓말이거나 허풍이거나 하는 누명을 쓸 도리밖에 없는데 옆에 서 있는던 아내가 요즘엔 물고기 안 몰려오느냐고 보살님한테 물었던 게야
“봄이 오면 다시 돌아온답니다”
아주 고맙게도 이 한마디가 모든 진실을 밝혀주었지
가자!
꼭 집이 그리운 건만은 아닌데 돌아가는 길은 왠지 서둘러지는 게 나만 그런지 액셀러레이터에 힘을 주어 내려오는 길
그래.
언젠가 이웃으로부터 고등어 한손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어.
주문진 어딘가에 가면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파는 곳이 있다는 거야
난 원래 고등어는 좋아하지 않는데 그때 그 노르웨이산은 정말 맛이 있었어.
수소문 끝에 찾아가 고등어 네 손을 샀어.
“좀 더 넉넉히 사지”
내 하는 말에
“오래두고 먹지도 못하는 건데…….”
하면서 돌아오는데 여기 저기 줄 곳을 셈했던지 아내가 걸음을 멈추더군.
“좀 더 사야겠어.”
큰아이와 아내는 되돌아가고 작은아이와 나는 가던 길 가고
한참 기다린 끝에 우린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을 갔지
적어도 어느 두 집은 생각지도 않은 고등어 선물 받고 흐뭇해하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 쯧, 물 건너간 무주상 보시를 생각했어.
횡성 가는 길에 횡성 나들목은 없어
새말 나들목으로 나와 우회전해서 삼백 미터 남짓 가다 왼쪽에 커다란 휴게소가 하나 보여
그곳 일층에서 고기를 사갖고 이층으로 올라가면 일인당 정해놓은 가격으로 구워 먹을 수 있게 준비가 되어있어
난 강원도에 와서도 소주는 충북소주를 마셔
가족들 먼저 가서 고기사라 이르고 난 뒷좌석에 앉아 비운 물병에 불법 주조하듯 충북 소주를 부어 채워나왔어
이 시대
내가 호강하며 산다는 확실한 믿음과 이에 감사한 이유가 몇 가지 있지
내 손으로 내 갈수 있는 곳을 아무 때나 아무 곳이나 갈수 있는 자동차를 갖고있다는것 또는 조선은 물론이고 로마나 영국의 왕들조차 누리지 못한 컴퓨터 가지고 인터넷을 즐기거나 누리고 있다는 것 등등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보리밥에 열무김치 얹어 넣고 고추장에 비벼 먹으면서도 배고픔을 면하던 시대에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쇠고기를 사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그 중의 하나지
내가 이럴진대 팔순 노모께옵선 어떠하실까?
제일 비싸다는 안심으로 사갖고 올라가 자리했어
앞으로 종종 있을 기회이니 새겨들어라
아들들한테 이르고 강의하듯 시범을 보였지
불 위에 고기를 얹고 좀 기다리다 보면 고기가 땀을 흘린다.
때를 놓치지 말고 딱 한번 뒤집어라
때를 놓치면 일등급이 금새 삼등급된다.
색깔이 변할 즈음 챙겨 먹어라
쇠고기의 맛은 육질과 더불어 때가 중요하니 이 두 가지를 모두 챙기는 자만이 참다운 쇠고기의 맛을 알리라!
도둑질하듯 몰래 물 컵에 따라 부은 충북소주 팔순 노모와 나누어 마시면서 배불리 먹고 나선 시간이 오후 네 시
가는 길 잠시 지나가는 자막이 눈에 들어오는데 문막과 강현 사이에 정체가 된다는 얘기였어.
집으로 가는 문을 막는 다해서 문막이렷다. 혼자 자신에게 농한마디 던지고 혹시나 했던 것은 어김없이 역시나지
꽁무니 물고 길게 늘어선 자동차 행렬
그래도 서지 않고 어기적 걸음으로 가는 것이 다행이다.
이번 여행의 절반은 아주 고맙게도 큰아이가 핸들을 잡아주었어.
조수석에 앉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 찾아가는 무리들 지켜보면서
생각느니
내 마음속에 집 몇 채가 있지.
아니 그림이라면 그림이고
속리산 너와집 이른 아침의 원형극장
밤새 불 피워가며 노래하던 사람들 새벽이 오기전 부랴부랴 도망가듯 사라진 뒤 원 없이 타고나서 사그라든 모닥불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붙잡힌 모양새로 가는 연기 피어오르는 아침 그 고요함
새사위 적
창호지 하얗게 밝아오는 아침이면 솥뚜껑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여물 뒤적이면서 안동 아버지께선 쇠죽을 끓이셨어.
콩 볶듯 장작불 타는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제대하던 해
선친과 함께 뒷산 두어 떼기 콩밭 메다가 둑에 앉아 전에 다니던 직장으로의 복직을 걱정하고 있었을 때 문득 불어오는 바람처럼 그 등허리의 뜨뜻함이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을 잊고 몽롱하니 꿈나라로 데려가곤 했었지. 그 안온함.
이제 나는 또다시 집 한 채 아니 그림 한 장 얻어간다네.
동해바다 그 너른 곳에서 나와 도마 위에 얹혀 난도질당한 생선 몇 마리의 헌신과 충북소주의 정성으로 바닷가 삼층 아니, 바다위에 올라앉아 같이 출렁이며 내 쉰 두해의 삶과 나를 바라보고 사시는 팔십하나되신 어머니의 삶과 내 아내와 나의 미래이자 내 두 아들의 삶이 바닷가 쉼 없이 밀려와서 욕심 없고 미련 없이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그리하여 그렇게 쉼 없이 밀려와서 씻고 씻기우기를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둥그렇고 아름답게 다듬어진 돌멩이로 가꾸어져 내 아내가 주워 담은 그것처럼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아주 멀리 멀리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아주 귀하게 쓰임 받는 역사를 이루어 나간다는 그 깨달음 말이지.
바다위에서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