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보면서 부르는 노래

세상, 안이거나 밖이거나

조강옹 2019. 12. 24. 08:29

영하의 날씨

양지쪽에 모이는 것은 붕어나 낚시꾼이나 마찬가지

7척 내림대에 글루텐 비벼 달고 찌를 응시하고 있는데 문자하나 들어온다.

 

"안타까운 소식 전합니다. 우리의 친구 김** 사망 청주 **장례식장 2층"

때는 늘 감으로만 오는 것은 아니다.

 

낚싯대 접어들고 둑방길 오르면서 먼 길 떠난 친구를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일찌감치 키운 덩치 덕에 전교에서 늘 1등깡 2등깡을 다투던 그였다.

라이벌이었던 친구는 고속도로 개통이후 휴게소에서 뼈다귀 없는 통닭(삶은 계란) 장사를 했다.

어느날 상하행선 넘나들다 차에 치어 세상을 떴다.

덕분에 그는 일찌감치 그의 독주시대를 열어갔다.


그렇게 6년을 보내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새로 문을 연 중학교에 진학할 때

공부와 담쌓고 서둘러 기차만한 트럭 "곁꾼"부터 시작했다한다.


학교안에서 1등깡이라고해서 학교밖에서도 1등깡은 아니었다. 

일찍 나온 세상의 사람들은 늘 자기 생각과 같지 않았고 그는 그런 세상과 사람들을 쉬 용납하지를 못했다.


하여

누구도 그에게 다가서려 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와 눈이 마주치는걸 원치 않았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늘 일뜽깡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가는 길이 외로운 것이라 자위했는지도 모른다.

 

세월은 흐르고 흐르는 세월 만큼 외로움은 커지고

최근 보령에서 일한다면서 몇몇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회 사줄 테니 소주 한잔 하자"

 

다가가기엔 아직 그가 너무 멀리 있다 생각했는지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

 

 

추운 겨울날 밤

마지막 바람벽이 되어주어야 할 그의 아내마저

휴대폰 요금 통지서를 문제 삼아 그를 아파트 베란다로 몰아붙였고

기댈 곳 없는 그는 10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게 일찍 갈것이면 착하게 좀 살다 갈 것이지 하는 사람도 있었고

본디 마음은 착했는데 표현이 서툴렀다고 애석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돌아오는 길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가 살던 아파트를 앞에 두고 고속도로 육교 내려오면서 갈림길에서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다.

쭉 미끄러지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전륜구동으로 바꾸고 천천히 폐달 밟아 오다가 문득 그 "화들짝"의 여진이 있었다.

 

33년 전 오늘

열아홉살 나이로 세상밖으로 나왔다.

때 이른 졸업장과 발령장을 같이 받아들고 청량리발 강릉행 야간 보통급행 열차에 올랐다.

친구들과 불안한 시선 주고받으며 경상도 이름도 낯선 어느 소도시 임지로 가는 길이었다.

 

이 썰렁한 날

그 친구 또한 때이른 졸업장과 발령장을 같이 받아들고 또 다른 저세상 밖으로 나간 것이다.

그래도 전송 나온 사람 이리 많아 외롭지는 않으려나?

 


난 전송 나온 사람 하나 없이 맛동산 과자 안주삼아 쓰디 쓴 경월소주 들이마실 때 창밖에서 나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또다른 나와 눈맞춰 가며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달래고 있었는데...........

 

 

잘 가시게!

되돌아 올 수 없는 먼길

서둘러 떠난 친구여!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