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왕소나무 친견기

조강옹 2019. 12. 24. 09:02

 

 

돌이켜 보면 33년 넘는 세월을  저 철길위에서 어둠을 밀어내며 밥빌어 먹고 살아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이 저 어둠을 밀어내면 나는 퇴근한다.

그리고 단 한번도 어김없이 어둠을 밀어내는 새벽이 내게로 왔다.

난 풀려나듯 철길을 벗어나면서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이 특별한 시간을 어찌할꼬?

 

 

문득, 누구셨던가?

괴산에 왕소나무가 있다했다.

왕고모, 왕시누이,  쉽게 얘기해서 댓방이라는 얘긴데 소나무의 댓방은 과연 어떻게 생기셨을까?

 

가보자!

그래서 갔다.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에 있다해서 찾아갔다.

가까스로 찾아가긴 했는데 자동차 한 대 겨우 지날 정도의 좁은길 요리조리 지나 찾아간 곳

과연 명패부터 달랐다.

 

 

오른쪽 부채꼴 형상의 모습이 왕 소나무이다.

왼편은 아마도 늦게 얻은 재취인지 자녀인지 칠십성상 머물다 가는 인간의 눈으로 가늠하는것 자체가 무리아니겠나싶.었.다.

 

씌여있듯 춘추가 대략 600년이라 했다.

저 산을 마주보고 구름 일다 스러지듯 집짓고 논밭 일구며 살다 서둘러 가는 인생 몇몇을 보며

무슨 생각하며 예까지 왔는가?

생각이 많으니 자연 가지도 많이 갈라놨겠다.

 

요리 조리 둘러 생각따라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고 아니, 꼬이시고

 

 

아뢰기 참 황송하지만  이도령 춘향이 벗겨놓고 이리도 보고 조리도 보듯이

돌고 돌며 바라보니 보는 각도 마다 자태가 새롭다.

 

과연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라 한들 이 마당에 누가 제정신에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왼쪽으로 두 발짝 떼고 올려보고

 

 

다시 오른쪽으로 아홉발짝 떼고 올려도 봤다.

그러고 보니 송구스럽다. 과연 왕소나무요, 

원래 세 그루가 있어 동네 이름도 삼송리라 하였으나 두 그루는 오래전에 작고하셨다한다.

그렇다고 누대로 내려오던 동네 이름마저 일송리라 바꾸어 부르면 600년 춘추의 왕소나무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싶긴하였다.

 

 

안해는 저 사람들 좀 빨리갔으면 했다.

저 왕의 옆구리를 잡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질것 같다는 그럴듯한 생각을 아주 적절한 시기에 들었던 모양이다.

 

저 사람들도 나름 머물고 싶은 욕심이 우리 만큼은 있지않겠나?

안해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안해는 큰아해 합격을 빌었을테지만  난 안해의 건강을 소원했다

 

 

왕소나무 앞에서 누군가 아주 건방지게 아끼는 신하를 베어버렸던 모양이다.

건방지기는 매 한가지인  누군가가 그 그루터기에 걸터 앉았다.

 

 

본래 오래 머무는데 익숙지 못한지라 돌아서 가려는데 돌아본 자태가  또한 새롭다.

 

 

600년 동안 한결같이 맺고 떨어뜨린 저 솔방울

범상치 아니하다며 안해는 한줌 주워 간다했다.

 

아주 오래전

이즈음 어딘가에 소나무 한그루 서있었을 것이다.

솔방울을 매달고 견디다 바람에 삭아져  문득 바람 한 자락에 솔씨 하나가 몸을 실어 여기 이 자리톡 하고 떨어져  싹을 틔웠을 것이다.

 

비와 바람과 햇볕이 서로 도와 600년 세월 뿌리와 잎새 사이 줄기따라 부지런히 오가며

덩치를 키우고 표나지 않게 늘 푸르도록 잎새를 갈고 솔방울을 맺고 떨어뜨리다가

오늘도 한결같이  오십 중늙은이 내외를 맞아 저 솔방울을 내어주는 왕소나무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별한다. 

 

 

인근 석문사란 절이 있다해서 잠시 들렀다.

안해는 늘 그러하듯 부처님을 찾아뵙고  나는 산신령님께 인사드린다.

 

아래 그림 참조하여 백악산이라했다.

거하시는 크기가 쏘로우-문잠궈님의 오두막보다 작다.

신이고 인간이고  그늘이 큰 존재일수록 거하는곳은 작다?!

 

 

다음에 저 산에 한번 오르리라! 

내심 홀로 다짐하다 오른쪽 무르팍의 그 시큰한 통증을 생각하고 절망한다. 

인생 오십, 벌써 퇴행성 관절염이 나를 반기다니  600년 왕소나무 앞에 참 쪽팔릴 일이다.

 

 

산은, 나무는,  그냥 있는 그자리를 탓하지 아니하고 육백년을 한자리에 암말두 않고 서 있는데

나는 벌써 또 왔던곳으로 돌아가려한다.

 

언젠가 나무를 보면서 나무만도 못한 인간이 나무를 헤아리는 마음으로 시를 한 수 읊었다.

이것도 참 쪽팔릴 일이긴 하지만서두 ....

 

애타게 그리워하거나 금방이라도 안보면 죽을 것만 같은 그런 열정이 없음은

우리가 나이를 먹고 세상사는 이치를 그 만큼 깨달아서 이리라

너는 너대로 네가 서있는 거기에서 하늘을 보며 자라고

나는 나대로 내가 서있는 여기에서 하늘을 보며 자라고

마주보고 서로 고목이 되어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아주 다행스럽게도 때로 바람이라도 불면

서로의 가지가 부딪히며 손이라도 잡을 수 있는

그런 두 그루 나무가 되어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깊은 못이 있다했다.

그 심연에 대한 참담한 이해

그 참담함이란 다름 아닌

너도 한 그루의 나무로서 나 또한 한 그루의 나무로서

평생을 마주보며 살 수 있을지언정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그 깨달음은 아닐는지


그 '이해'에 아파하면서, 수 많은 생각의 가지들을 갈라내다 가도

스스로 다가갈 수 없는 절망에 가끔은 잎새마저 떨궈 내어도 보고

처연히 하늘만 쳐다보며 외롭게 늙어 갈지라도 우리는 나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금 싹을 띄우고 가지를 갈라내고 매미를 옆구리에 붙여도 보면서

볓이라도 있으면 그늘이라도 그려 볼 일이다.

바람이 불거나 혹은 그렇지 않거나.....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