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날 아침의 일기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팔순 노모 바깥 바람 좀 쐬어 드려야 겠다는 아들의 효심과 결과에 관계없이 임용고시 치르느라 욕 본 아들 바깥 바람 좀 쐬어 주어야 겠다는 어머니의 기특한 모정이 묘하게 합쳐져 네 식구가 집을 나선것이 지난 토요일 아침이었다.
벼베기 끝나 허허로운 들판따라 조치원 공주 거쳐 칠갑산 휴게소에 이르러 급한 일 없으니 서두를 일없다. 새로 생긴 흔들다리 놓여진 저수지 바라보며 숨쉬기 운동 한번 크게 하고 한 잔에 일천원짜리 원두커피도 폼나게 마셔가면서 쉬엄 쉬엄 도착한 대천항
바다는 황해답지 않게 푸르고 바람 한 점 없는데 햇볕은 봄날의 그것처럼 따사롭기 그지없다.
여기 저기 오라는데는 참 많은데 선뜻 가지를 못하다가 고무다라이 속에서 순서 기다리는 돔과 눈이 마주쳤다. 광어와 도다리 각 한 마리씩 찬조출연한 점심상 받아 매운탕에 소주 두 병 끼워 배불리 먹고 지천으로 널려있는 꽃게 전년대비 반값도 안된다며 한 자루 사 담고 모양새는 다르지만 값싸기는 마찬가지인 대하까지 잔뜩 사서 차로 돌아오는 길
아까부터 오른쪽 발이 꿉꿉한것이 여간 껄적지근한것이 아니어 가던길 멈추고 신발 벗어 들여다 보니 양말은 젖어있고 신발 바닥은 앞 부분이 쩍하니 갈라져 있다.
"꽃게가 반값이라더니 신발이 돈 달라 입벌리네 그랴!"
아파트 입주 이후 식탁 다리가 휘어질 걱정 처음으로 하면서 꽃게 찜에 대하 구이에 밤 구운것까지 배터지게 먹고 마감 날짜 다가오는 서울우유 하나씩 배급받아 입가심 하고나서 일찌감치 자리에 들어 누우니 숨쉬기가 여간 힘든것이 아니면서도 오래전부터 꿈꾸던 행복이란것이 바로 이런것이구나 하였다가 스스로 잠이 들었다.
어제의 내일이 오늘이었던 고로 오늘 새로이 떠 오른 해로 새 아침이 밝았다.
식구끼리 둘러앉아 아침을 먹으며 어제의 그 잔잔한 바다와 따사로운 햇살과 혀에 감기던 회의 그 감칠맛과 새로이 친해진 꽃게찜과 새우구이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또 밤새 감당하기 버거웠던 흐믓함에 절로 행복해 하면서 아침을 끝내고 산책이나 가자면서 안해와 거실을 나서 신을 신으려는데 문득 어제 바닥 벌리며 돈 달라던 신발이 눈에 들어온다.
신발장을 열어보니 내 신발이라곤 안동갈적에나 꺼내 신는 구두와 등산화 한켤레 뿐이다.
급한대로 눈에 띄는 운동화 하나 꺼내 신으려 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안해가 "그거 작은 아해가 아끼는 운동환데.."
도로 올려놓고 옆에 운동화 내리려는데
"그건 큰 아해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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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올려놓고 가까스로 일전 상갓집 상여매고 얻어 온 길거리표 운동화 챙겨 신고 나서면서 어제 그 신발 주워들고 "이건 버려야지.."하는데 옆에서 기겁을 하면서 또 안해가 한 말씀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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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는 멀쩡한데 버리긴 왜 버려요 비 안오는 날 신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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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