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의 제주도 이야기(6)
제주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름 원칙을 정한것 중의 하나가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시설엔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언뜻 들으면 무슨 "격"이 있는 여행을 계획한것 같이 들릴수 있겠으나 기실 들여다 보면 박물관이나 식물원 같은 "돈"받는 곳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어딜가나 지자체에서 세운 박물관이 도처에 널려있고 하나같이 적자 운영을 하는 면치 못하고 있다는 처지라는 것이 수차에 걸쳐 언론을 통해서 보도된 바 있고 제주도를 잘은 모르지만 그 자체가 커다란 박물관이고 식물원인데다가 이 모든것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선물이지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울타리를 치거나 금을 그어놓고 돈을 요구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어불 성설이란 생각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아주 신기하게도 내외의 생각이 일치하였습니다.
첫눈에 반해버린 우도
그 두 시간의 제한된 시간에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그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성산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불과 두 시간 전에 우도로 떠날적 그렇게 아름다워보이던 성산의 앞바다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가느냐 안해가 물었습니다. 김영갑 갤러리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거기가 뭐하는 곳이냐 묻길래 나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짧게 문장궈님이 추천사에서 밝혀주신 57년 생의 제주를 사랑한 사진작가이며 루게릭인가 하는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고 밖에 더 이상 설명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상 아는것이 내겐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산에서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뜻밖에 길가에 유채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출발할적 안해에게 따로 디카를 들려주면서 내가 늘 찍기만 하다 보니 정작 내가 나를 찍을 수 없으니 가끔씩 나를 찍어주오 하고 부탁하였는데 같은 장소에서 번갈아 찍었는데 안해가 찍은 사진이 더 보기에 좋아 올렸습니다.
이후 정말로 보기 좋고 잘 꾸며놓은 유채꽃밭이 종종 나왔는데 입구에 하나같이 사진 촬영료로 천원을 받는다는 안내판이 써 있었고 실제로 주인듯한 사람들이 입구에 매표소(?)를 차려 놓은 곳이 여러번 눈에 띄었습니다.
"야! 유채꽃이다." 하고 탄성을 지르다가 유료라 하면 분개하면서 그때마다 단호하게 "통과!"를 외치곤 하였습니다.
제주도는 도로가 아주 한산하여 긴장하지 않고 드리이브를 즐길수 있다는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자동차가 문명의 이기이고 아주 유효한 교통 수단으로 도로와 자동차의 수효가 적정하게 조화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두모악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침 입구에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에게 인증샷을 부탁하였더니 선뜻 들어주었습니다.
카메라를 건네 받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이 분은 아주 유명한 작가랍니다!"
얼떨결에 "예"하고 건네 받고 돌아섰는데 그 "작가"가 사진작가인지 글작가인지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갤러리 관계자인것으로 보아 사진작가가 아닌가 나름 생각했습니다.
곳곳에 호칭이 "선생"이라 적혀있었습니다.
따라서 나도 선생이라 호칭하기로 하였습니다.
한양공고를 졸업했다해서 서울 출신인 줄 지레짐작했는데 충남 부여가 고향이라 적혀있었습니다.
위 아래 두 모습이 생전 투병 당시의 모습인듯 다소 야윈 모습입니다.
충남에는 대개 훌륭한 여성분들이 많고(유관순 열사, 오칼님 등) 충북에서 훌륭한 남성분들(조모씨 등)이 많은데 좀 의외다 싶었습니다.
적혀있기를 서울에서 제주를 오가며 작업을 하다가 제주에 대한 사랑이 너무 간절하여 제주로 아주 내려왔다는 것, 그리고 언제부턴가 희귀병으로 투병하다가 생을 마감했다는 내용 천재는 신도 시기하여 일찍 데려가는 것 아닌가 잠시 그런생각했습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하여 만들었으며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관심깊게 사진을 감상하는 것을 보고 나름 기분이 좋았습니다.
입구에 마련된 매표 직원에게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하긴 했지만 왠지 도리가 아닌것 같아 가슴에 담기로 했습니다.
어느 시인이 그의 사진을 보고 "나는 시로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자네는 사진으로 시를 찍고 있었던게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선생의 사진예술을 대변하지 않았나 짐작해봅니다.
폐교를 갤러리로 만들면서도 곳곳에 학교의 흔적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울먹이다 죽어갔다던 전설의 "이승복 어린이"를 생각하게 합니다.
무슨 전장에 갈것도 아닌데 신발끈을 다시 동여매고
이 다음 내가 사진을 더 공부할 기회가 있어 선생의 예술세계를 들여다 볼수 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겠거니와 설령 그렇게 까지 되지 않더라도 제주를 끔직히도 사랑했던 그래서 제주에 눌러 앉아 제주를 사진에 담아내다가 유명을 달리한 선생의 넋을 잠시 기릴수 있던 이 시간이 참 소중하고 행복했습니다 영면하소서!
2009년 3월 11일 11:25분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