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세숫대야 말구 그냥 대야산

조강옹 2019. 12. 25. 06:17

 

아침에 일어나 뒷베란다 문을 열고 내다 보니 모처럼 각리 초등학교에 햇살이 비친다.

쥐구멍에 볕들기보다도 학교 운동장에 볕들기가 더 어려운것 같은  올 여름

저 아해는 박찬호를 꿈꾸는 것일까?

안해는 나보다 "무르팍장애"가 더 심한데 눈만 뜨면 산에 가자한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대야산-물어보나 마나 일백오십만 충북도민의 영산, 속리산 자락이다.

"광'자 "업"자를 쓰시던 조상님께옵서 우리 본관이 하동인데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덕촌"이라 부르는 곳에 터를 잡으셨다.

언젠가 우리 아해가 그 연유를 묻는 말에  아마도 임진왜란 때 피난길에 올라 북쪽으로 올라오시다 뒤돌아 보시고 산천경개가 수려한 이곳에 터를 잡으셨나보다고 둘러댔다.

 

둘러대고 보니 대충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낚시하는 물가가 가깝고 속리산 자락에 아해들 공깃돌 깔아 놓은듯 여기 저기 솟은 산마다 다 명산이니 따로 망설일 필요가 없다.  가끔씩 갑갑하다 생각하면 훌쩍 떠날수 있는 뱡장도  지척에 있다.

하물며 기차역이니 고속도로니 다투듯 이곳을 거쳐가니 조상님의 선견지명에 고개 수구릴뿐.

주차장에서 작은 고개  하나 넘어가야 등산로의 시작인데  보이는 풍경이  병아리 어미닭 날개깃 파고들듯  정겨워 보인다.

대형버스에서 꾸역 꾸역 나온 선남 선녀들이 앞장을 선다.

사람이 싫어 찾은 산에 사람으로 산을 이루니 이를 어찌할꺼나?

난 무리들과  섞이기 싫어 걸음을 늦추는데 안해는 대수롭잖다는듯 생각없이 따라간다.

하기사 저  사람들도 사람싫은 사람끼기 사람피해 왔으려니.........

어쩌랴!  오늘 만큼은 모양새가  남필종부로세!!

처음 오는 산이고 다시 찾은 산이고 나는 모르는 길도 묻고 아는 길도 묻는다.

안해는 쳐다보지도 않고 혼자서 간다. 그 연유로 무작정 앞만 보고 가다 불러세워 길을 바로 잡아주기도 한다. 반 시계방향으로 돌아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널리 알려진 용추폭포라했다.

파인 바위 모양이 하트 모양이라 해서 난리란다.

외과 의사외에 거의 본적이 없을터인데 왜 사람들은 심장 모양이라며 법석인가?

기실 이날은  8월 14일이다.

역사의 기록은 이렇게 가끔씩 오류를 범한다.

비록 모래위에 새겨진 기록일지라도 사실대로 바로잡는것이 역사 바로알기의 일환 아니겠는가?

정말 놀랄 정도로, 지루할 정도로, 맑고 긴 계곡이다.

이제 끝나면 어쩌나 싶게 소리내며 지나가는 굽이 굽이 맑은 맑은 물이 맑은 소리내며 지나쳐간다. 

길고 긴 계곡이 끝나면 또다시 길고 긴 시누대 숲이다.

마추쳐 지나가기도 불편할 정도로 좁은 사잇길 따라 가다 보면 오래전 베트남전에서 밀림 헤쳐가며 베트공 색출 작전 펼치던 맹호부대 용사들이 생각난다.

군 복무시절 주임상사께옵서 이르기를 베트공 잡는 작전은 일렬로  밀림헤쳐 가며 가는데   "첨병"이라 부르는 맨 앞장선 사람은 십중 팔구 살아오지 못한다했다.

 

그  생각에 난 안해를 뒤따르라하고 앞장서 나갔다.

아주 다행이 살아 돌아와 그때를 회상하니 얼마나 행복한가?

"사즉필생" 난중일기를 통해 깨달음을 주신 이순신 장군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

 

 

얼핏 본 떡바위가 아닌가 생각한다. 사려깊은 사람들이 있어 구를까봐 나뭇가지 꺾어 고여 놓았다.

감사한 마음으로 쳐다보는데 생각없는 사람 하나 다가가더니 나뭇가지에 손을 대려하기에 소스라치게 놀라 버럭 소릴 질렀다.  조금만 늦었어도 하마터면 바위가 구를 뻔 했다.   등허리에 식은 땀이 났다.

할아버지들이 손자를 귀여워하면 수염을 잡아당기는지 상투를 잡아당기는지는 버르장머리 없는 정도에 따라 구별짓겠지만 산신령님께서 사람을 어여삐 여기시다 보니 저렇게 상투위에 기를쓰고 올라가고 거기서 눌러앉아 냄새 풍겨 가며 배를 채운다.  그래도 너그러이 받아주시는 신령님 !!

멀리서 올려다 보니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자주 다니는 것도 아니고 많이 다니지도 않은 산

누군가가 저렇게 옆에서 폼 잡고 찍길래 나도 찍다 보니 오늘도 그냥  또 찍는다.

욕심 비우러 왔다가 이 작은 욕심 하나 버리지 못하고 저렇게 앉아 챙기기는 내외가 다를게 없으니 부창부수랄 밖에.... 

 

오래 오래 한 곳에 머무르며 이웃한 "억년 비정의 함묵"과 "늘 푸름"

달음질 치듯 소리내어 흘러내리면서도 맑음을 유지하던 계곡 물처럼

나 또한 대야산을 뒤로하고 낮고 넓은곳으로 흘러내려오면서 가슴팍에 또  그림 한 장 새긴다.

 

안녕!  대야산!  아니,

안녕히 계시옵소서!  산신령님!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