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육백릿길 - 고인돌 이야기
아주 오래전
동생네 가족들과 전국일주를 계획하고 집을 나온적이 있었다.
그때 경험으로 삼시 세끼중에 저녁만 제대로 먹으면 아무 문제 없다는 것과
점심은 특히 길가다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놓고 버너에 불을 지펴 라면을 끓여
아침에 남긴 찬밥에 말아 먹으면 경비와 시간이 함께 절약된다는 깨달음으로
오늘날까지 우리내외의 길거리 점심 먹기가 맥을 이어 오는것이다.
삭힌 들깻닢으로 싼 주먹밥은 달리 반찬이 필요없을 정도로 간이 제대로 맞아 꿀보다 맛이있고
압력밥솥에 취사 두번 눌러 삶은 계란은 상온에서도 보존기간이 길고 그냥 삶은 계란보다 대략 여덟배 반이 맛이 있다. 우유랑 곁들어 먹으면 뼈 없는 통닭에 연한 쇠고기 구이를 먹는것과 진배가 없다 아니할수 있겠는가?
고인돌 공원이 있다는 이정표가 언뜻 눈에 들어왔고 지척이라 그리로 향했다.
일금 천원
저 야박한 도회지 화장실 이용룟값에 지나지 않은지라 주저아니하고 차를 돌렸다.
아주 오래전 이렇게 집을 짓고 살았다 하는데 들여다 보니 바닥이 평퍼짐하다.
군복부 시절 동계훈련 숙영지를 만들던 경험에 비추어 지붕 높이를 대거 낮추고
혹한기 추위를 견디려면 바닥을 반 지하로 파야 하지 않겠는가?
그때 사람들은 그렇게 짓고 살았을 터인데 재현한답시고 설계한 사람이 아무래도 미필자가 아니었겠나?
요즘으로 치면 공원묘지와 다름아닌데 한 구석 통나무를 바퀴삼아 굴려왔을거라는 그럴듯한
추측하에 체험장을 만들어 놓았다.
안해가 보고 묻기를
"이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끌고 간다한들 돌을 옮기기가 쉽지 않겠소이다."
맞장구 치며
"하물며 진창에서나 오르막에서야 오죽하겠소?"
"그럼 어찌하여 이리 큰 돌을 가쁜히 옮겨와 들어 올렸단 말이오?
"달리 방법이 없으니 아무래도 공룡을 길들여 이용한것이 분명하오이다."
"나약안 인간이 어찌 크나큰 공룡을 길들일수 있단 말이오?"
"우리보다 신체가 왜소한 태국인들이 코끼리 길들여 타고 다니는것 보았잖소?"
안해는 그제서야 감탄사 섞어 날숨으로 뱉어 내면서 고개를 끄덕였으나 공룡이 살던 시절
우리 인간은 이땅에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길이 없다.
내가 거실에서 쥬라기공원 볼적에 안해는 안방에서 머릿속으로 복잡다단한 삼각관계 머릿속으로 도형 그려가며 주말연속극만 보아왔음을 익히 아는 터,
요는 사람이 밥 숟가락 놓게되면 요렇게 광정을 파 묻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이겠으나
아래와 같이 큰 돌을 어디서 가져다 또한 요렇게 사쁜히 올려놓았을까이다.
그건 머지 않아 스스로 체험할 기회가 있을 터인즉 자연스레 의문이 풀릴것 아니겠나?
그저 소풍나왔으면 소풍이나 즐길진져!
하늘은 높고 햇살은 따닷하니 이보다 더 좋을수가 없을 이 시각이 대략 오후 두서너너댓시쯤 아니되었겠나?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