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금강에 살어리랏다(1)

조강옹 2019. 12. 26. 14:10

언제부턴가 산에 오르다 보면

곡한 오르막길에서 오른쪽 무르팍에 신호가 오기 시작했고

어느 한가한 날

인근 정형외과 가서 진료를 받아본 결과 퇴행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꼭 그리하기로 작정한것은 아니지만 그날 이후로 자전거를 타기로 했었다.

그래서 사귄 친구가 조치원 지나 합강공원 이르기전 저 강가에 서있는 나무였다.

토요일 아침이면 날이 새기 무섭게 자전거 데리고 찾아갔던 곳

미호천과 미호천의 나무와 자전거를 벗하게된 연유이다.

그러다 문득

저 흐름의 끝이 바다에 닿는다는 것과 거리가 140여 킬로미터라는 것

그러기에 너무 멀어 갈수 없다는 것은 초등학교시절 둑방에 매어놓은 소 뜯기면서

오늘에 이르기 까지 갈수 없다는 생각에서 한 치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 바뀌지 않는것이 어디 있으랴!

걷는 것이 유일한 이동수단이었던 소년에게 자전거가 생겼고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가 이런 자전거 타고 거기까지 가서 바닷구경하고 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더라!

초여름 같은 따사로운 햇살과 볼을 간지르는 바람의 부추김도 있었다.

그리고 일이란 것이 생각날때 선뜻 저지르지 못하면 이루어질수 있는것 또한 별반 없더라는 경험이 생각을 굳히고 "나 또한 가보리라!" 라고 작심하기에 이르렀다.

"젊은이들 얘기지요 당신이 무슨!"

안해는 처음엔 "택"도 없는 말씀이라더니 중간에 힘들면 돌아오라 몇번이고 다짐하면서

이른 아침

누른밥을 끓여주고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배낭을 꾸려주었다.

2014.04.11. 06:00

집에서 이곳까지 4킬로미터

미호천 자전거 도로로 진입하는 곳

옆길은 오창에서 오송거쳐 조치원으로 향하는 도로이다.

충북선 철교가 보이는 곳

어려서 부터 사람들은 탑수강다리라 불렀고 전에 살던 동네서 시오리 가량 떨어진 곳이다.

흐린날 충북선 동차가 기적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마실왔다가도 그 기적소리 듣고 보리쌀 삶아야 되겠다며 일어서기도 했다.

"수다들 그만 떠시고 저녁밥 지으시라"는 신호탄이기도했던 모양이다.

오송에서 세종시를 향해 새로 뚫린 도로

고속철도가 생기고 부터 충북선의 한 간이역이 전국구가 되어버렸다.

첨단보건단지로 지정되어 식약처 등 관련 관공서들이 몰려들었고 들리는 소문에 국무총리도 고속열차 타고 여기서 BRT라던가?!

신호 한번 걸리지 않는 도로타고 세종시로 간다했다.

이하 세종시로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서 간다.

둑방에 올라서면 미호평야 가로질러 높고 곧은 기찻길이 곧게 나 있는데 행정수도 후보지에 올랐다가 결격사유중의 하나가 이 기찻길이 흉물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내 눈엔 어린이들이 즐겨 보던 은하철도 999처럼 하늘로 가는 기찻길로 보이기만 하더만...

미호천은 조치원 뒤편으로 흐른다.

경부선 부산쪽으로 달려가는 화물열차

이른 아침이기도하였지만 짐이 없는지 소리가 유난히 요란하다.

조치원은 아주 오래되어 유서가 깊은 고도이면서도 아직도 "읍"으로 남아있다.

보통 여기까지 와서 숨쉬기 운동하고 되돌아 간다.

그러고서 왕복 백여릴 달렸다고 스스로 대견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은 저 물길따라 바다까지 가기로 했다.

숨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출발!

최초의 오르막

오른쪽으로 헬기들이 모여사는 군부대가 있는데 늘 그늘속에 앉아있는 잠자리들 처럼 조용하다.

몇번이고 사진을 찍으려다 혹여 안보나 보안에 문제될까 저어한다.

고수부지 혹은 둔치라고 부르는 강변의 땅들은 이른바 4대강 살리기 공사 이전에는 농경지였다.

보리, 수박, 감자 등등

밭살이 곱고 땅이 기름져 웬만하면 대풍을 거두었다.

게다가 홍수가 나면 침수되기 때문에 농지세도 싸고....

이러던 곳에 쉼터나 저런 체육공원이 들어서고

아니면 이렇게 방치되어있다.

사람들이 몰려나와 운동하기엔 동네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고

강변의 대부분이 농촌이고 농민들이 농사짓기 바쁜데 예까지 와서 무슨 운동을 하겠냐고

일전 어느 촌로의 푸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말하는 금강종주 코스는 원래 대청댐에서 신탄진, 부강을 통해 흐르는 이 물길따라 가는 길이다.

내 사는 미호천과 만나는 곳을 합강공원이라 이름하고 정자와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카메라 들이대고 보니 공원의 정자 보다는 기중기가 하늘을 향해 "똥침"을 놓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햇님은 보이지를 않는다.

"두물머리" 이런 좋은 말을 제쳐두고 "합강"이라니 ......

하류쪽

저만치 세종시가 보이기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청댐 기점과 내가 출발한 오창 아파트 기점이 도로 표지와 자전거 속도기록계를 비교하니 내가 가는 길이 대략 3킬로미터 멀다.

속도계 오차도 있을터이고 자칫 돌아가는 수도 있을터이니 비슷하다 여기면 되겠다하였다.

세종시에서 유성쪽으로 건너는 다리

요즘 멋있고 이뻐보이는 것을 꼽으라면 성형여부를 떠나 젊은 처자들 하고 물길 건너는 다리들이 아닌가 싶다.

금강으로 물길따라 가는 길은 오른쪽 처럼 파란색 길만 찾아가면 된다.

그러나 가끔씩 공사나 도로에 새로 도색하는 등등의 연유로 지워진곳이 있다.

처음엔 화가 나다가 보물찾기 하는 양 재미있기도 했다.

다리 밑으로난 자전거 도로

도로위로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다리 옆구리 후벼파내 자전거 도로를 낸 형상이다.

기분이 묘하다.

신기하기도 하지만 왠지 언짢기도 하고.....

여기서 잠시 쉬면서 바나나 하나 먹었다.

전화기를 꺼내 보니 배터리가 다 돼간다.

먼길 혼자가려면 아마도 음악이 필요할것 같아서 예비배터리까지 충전시켜 갈 요량으로 예비배터릴 충전시켜 놓고 정작 전화기에 사용중인 배터리는 깜빡했다.

덕분에 깜박이더니 여기서 운명을 달리하셨다.

지금까지 자전거 타고 가장 멀리나온 곳이 세종시까지이다.

왕복 94킬로 미터.. 당연 이후로는 처음 가보는 길이다.

강변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에서 부터 "날이 새면 물새들이 시름없이 날으고"로 시작되는 오래된 가요에 이르기 까지 노래도 전해져 오기도 한다.

소월의 싯귀대로 뒷곁에 갈대우거진 초가집

그래서 바람이라도 불면 부스스...

요즘의 강변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짓고 살고 싶은 집은 저 집이 표본 아니겠나 생각했다.

오늘 가야할길을 145킬로미터이지만 내심 150킬로미터로 잡았다.

금강하구둑에 도착해서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을 더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강하구둑까지 남은 거리의 절반 즉 75킬로미터 표지판과 자전거 누적 기록계를 자꾸만 쳐다보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만 반을 이루어 놓아야 비로로 시작이란 말도 있기에

그리고 오늘 못가겠다 싶으면 아내가 가르쳐준대로 되돌아 갈 요량으로 인터넷 검색해 본 결과

공주, 부여, 익산 등등이 그들의 버스터미널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확인해 두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절반에 이르게 해달라는 기도는 좀체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하여 차선으로 남은 거리 숫자를 두자리 숫자로 줄어들게 해달라는 기도는 금새 이루어졌다.

공주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외가가 있는 곳

오른쪽으로는 자동자들이 줄지어 달리거나 신호에 걸려 매연을 내뿜고 있고

왼쪽으 그림은 대략 이러했다.

밭에서 일하는 아낙들의 모습이 한가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백제시대에도 강물은 흘렀고 아낙들은 강변에 나와 일했을 터이고 때에 따라 나무며 풀들도 이렇게 푸르렀으리라!

파란줄 친 자전거 도로는 공주 시내로 안내한다.

가다보면 이렇게 턱하니 자동차가 길을 막는 경우곧 생기고

요런 길은 내려서 걸어간다.

자전거로 달리다 보면 내려서 걸어가는 것이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얼마나 편하게 이동하는 수단인지 절감한다.

자전거 기어 단수 낮춰 구르다 보면 앞만 보고 갈뿐이다.

천천히 걷다보면 이런 그림도 눈에 들어온다.

박물관 앞을 지나다 보니 여행나온 학생들도 눈에 띈다.

초등학교 시절

며칠전부터 잠 설쳐 가며 기다리던 나의 수학여행은 온양 어디선가 열차와 수학여행단 버스가 충돌하는 참사가 일어났고 이 사고를 계기로 각 학교의 수학여행은 학교장 재량에 맡긴다고했다.

불행히도 당시 우리의 교장선생님께옵서는 "취소" 결정을 내리셨고 그 아쉬움이 지금까지도 남는다.

이시대 교장선생들께 간곡히 청하옵나니

결정중에 아니 중요한 결정이 어디 있을까만 앞날이 창창한 젊은 아해들과 관련된 결정은 심사 숙고해야 함이 옳을줄로 아뢰고 싶다.

도로 정비작업이 있었나보다.

길 바닥 황토색을 덧칠해 놓았는데 파란색을 아직 아니그어놓은 바람에 잠시 헤맸다.

고개 너머 다시 강변으로 난 길

문득 이렇게 서둘러 갈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산성도 올라가보고 박물관도 들여다 보고 해물칼국수도 한그릇 사먹다 늦었다 싶으면 숙소 정해놓고 쉬었다 갈 값이라도 여행은 그리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했었다.

투비 콘티뉴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