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필리핀-진갑 노인의 넋두리 1

조강옹 2020. 1. 22. 06:50

 

 

 

마당끝이 미호평야의 시작인 충청도 시골동네에서 자라난 친구들이다.

미호천 백사장에 저렇게 모래 파내고 고인물을 밀대 꺾어 빨대삼아 마시면서 뛰놀던 친구들이

필리핀 클라크필트- 수빅 해변  이곳까지 날아와서 저렇게 모래장난 하고있다.

 

 

 

 

농경시대 끝자락

누대로 물려받은 가난을 담벼락 같이 끼고 살던 시절

"지게벗기 운동" 스티커가 손잡이에 붙였던 리어카 한 대도 "있는 집" 주요 재산으로 치부되던 시절

당시의 부모들은 이 시대 기준으로 상상하기 힘든 고된 노동을 감내해야만 식솔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가까스로 해결할

수 있었고 교육이라고 그저 "한글만 깨치면 되지" 하면서도 그마저 감당하느라 등골이 휘던 부모세대를 기억하는 세대가

어느덧 당시의 부모들 보다 더 오랜 세월 살아온 세대가되었다.

언제부턴가 여기 저기 공장들이 지어지고 그만큼 생각지않은 일자리가 생겨났고

해변에 알 깨고 나온 새끼 거북들이 본능적으로 바다로 나가듯

대책없이 대처로 내몰리다피 몰려나가 스스로 일을 찾아 먹고, 살고, 제각기 짝 하나씩 얻어 가정을꾸렸다.

너나 할것 없이 애들까지 번듯하게 입히고 가르치고 키워내면서

어려움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어려서 보아온 부모들이 감내한 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에 젊음을 의지삼아

꿋꿋이 헤쳐나온 인생 여정- 돌이켜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한편 허망하기도 할 이 즈음

누군가가 뜬금없이 필리핀으로 놀러가자 소리에 생각도 없이 그러자했고

작심하고 야반도주하듯 머리맡에 짐꾸려 놓고 오지않은 잠에 뒤척이다 꼭두 새벽 서둘러 두어시간 버스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것이 새벽 다섯시 반이었다.

너댓시간 뱅기타고 오면서 잠시 졸다 깨고나서 필리핀을 얘기했다.

6.25전쟁때 참전한 나라

자기들 쌀밥 먹을때 보리밥에 삶은 감자로 끼니 때우는 우리에게 선뜻 장충체육관 지어준 나라

어린시절

라디오에서 아나운서의 들뜬 목소리로 "신동파"를 외쳐대면서 했던 농구중계의 발원지

그 중계방송은 늘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로 시작되었었다.
 

클라크 - 수빅만

미국 공군기지가 있었던 곳으로도 영화나 어릴적 흘려들은 뉴스로도 알려진 곳

"필리핀 가자"는 한 마디에 예까지 왔다는 얘기를 이리 길게 늘여 말씀드렸다. 

모두가 나이탓이다.

 

 

 

우리 땅을 일컬어 삼천리 금수강산이란 말이 자화자찬이 아님을 인식시켜주는 창밖 풍경

지질학의 기초상식만 있어도 강 풍경이 왜 저런지 쉽게 설명할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한 마디, 한 줄 쓸수 없는것은 그

기초상식 마저 내게는 없는 탓이다. 다만 언젠가 터졌을 화산과 관련있으려니 바닥 모래가 꺼먼것에 근거해서 어렴풋이

짐작해볼 뿐이다.

 

 

 

 

 

 

어렸을적 부모들의 곤한 노동은 대부분 저런 들판에서 이루어졌었다.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저 너른 들판은 풍요의 상징이었고 막연하지만 버릴수 없는 미래의 희망이었으며

녹슨 양철지붕은 세월따라 잿빛으로 변해가는 초가집 지붕에서 살던 이들에겐 부의 상징이었다.

저 들녘에도 개구리가 살까?

보름달 환하게 들판길 비춰오면  곤한 노동끝내고 나선 저녁 산책길 농부 벗삼아 개구리가 울어줄까?

오랜세월 거슬러 올라가 되새기는 추억이 창밖에는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현실 풍경이다.


 

 

결혼이란 무엇일까?

여럿 불러 모아놓고 요란스레 할 일은 아니다.

조용하고 한적한 장소 골라

"죽을 때 꺼정 같이 살자!"  눈 맞추고 진지하게 마주보며 손가락 걸어 맹세 한번 하면 될이다.

때론 서로 부퉁켜 안고 서럽게 울기도 했고  폴짝 폴짝 뛰면서 기뻐도 했다.

잠자는 모습 지켜보면서 내게는 더 없이 소중한 사람인데 귀히 여기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종종

서운한 마음에 서로 다투기도 했다.

전국에 생중계되는것도 아니고 승자에게 목에 메달 걸어주는것도 아닌데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지지 않으려고 다투었다. 

그러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넘치는 부분은 나누고 모자라는 부분은 채워가며 죽을 때 꺼정 같이 살기로 한 약속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요트라고 부르긴 했는데 흰색으로 말끔하게 단장한 작은 배였다.

아래층엔 주방이 있고 위층에 이렇게 깔끔한 점심상 채려놓았다.

누구나 머릿속으로 영화의 한 장면에 스스로를 주인공삼아 이렇게 둘러앉아 스스로 호사라며 즐겼다.

 

 


 금당이란 저수지가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 수영도하고 조개도 줍고 때론 가물치나 메기를 움켜잡기도 했던곳

"개구리 헤엄"이라 부르는 이 자유형은 동네 형들로 부터 아우들에게 전수되어 내려왔다.
 
자유형의 일종인 이 "금당형" 수영으로 필리핀 맑은 바다에서 한나절 물놀이를 즐겼다.

길이 멀어 오는데 하루 온전히 까먹었고 그래도 머물날이 아직 "엄청" 남았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여긴 아직 필리핀이고 더 누려야 할 시간과 장소가 야자수 이파리처럼 하늘까지 걸렸다.
 
당연 이야기는 계속된다.


뱀다리 : 올해 진갑된 친구 내외 셋 집이 필리핀으로 놀러갔다 온 이야기입니다.

        독백삼아 기억에 의존하여 쓰다 보니 읽는 분에 따라 불쾌하게 느껴질까 저어됩니다.

        양해하실 줄 알면서 스스로 뱀다리라며 붙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 모두가 나이탓이려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