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추억의 여서도-히피의 섬(종합)

조강옹 2020. 5. 10. 23:14

 

전면에서 바라본 마을의 모습입니다.

수심이 깊고 물이 맑은 청정지역입니다.

보이는 방파제는 전두환 정권시절에 제주도를 비롯한 인근을 오가는 선박의 대피 목적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털보 집주인의 설명에 따른것이기도 합니다.

기후는 제주도에 가까운 아열대성 식물이 있다고 하기도 하고 여서도에서 완도까지 백여리 제주도까지 백시오리 정도 그러니까 중간에 위치했지만 내해라기 보다는 외해 즉 바깥바다에 속한다고 합니다.

 

조강이 농삼아 동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태평양에서 불어오는것이라 한것은 여기에 근거한 나름 일리가 있는 주장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보건진료소입니다.

주민들의 연령분포가 4,5십대 젊은이들 대여섯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고령화 되어있다하니 꼭 필요한 시설이라 생각했습니다.

가만 생각하니 원주민이라고는 이장님과 이전 글에서 올려드린 할머니 한분 히피님 덕분에 매스컴 타신 할머니 한분 그리고 저녁 물회를 제공해주신 해녀내외분 외에는 본적이 없습니다.

 

섬 일주에 배를 제공해주신 이주민 선장 두 분을 포함한다고 해도 바닷로 고기잡이 가셨는지 아니면 영화촬영에 협조하느라 술래처럼 꼭꼭 숨어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들섬이란것은 영화촬영팀이 촬영을 위해 붙여놓은것입니다.

 

이러니 지역 유지라고 꼽을 만한 대상이 파출소장. 발전소장. 보건소장. 이장. 폐교되기 이전엔 교장선생님 정도 될것 같습니다.

 

 

 

마을 중앙에서 오른쪽이니 동쪽입니다.

정박해 있는 뱃머리 앞 부분에 파출소가 있습니다.

정년이 얼마남지 않은 경찰관이었는데 사진찍기를 한사코 거부하여 사진에 담지를 못하였습니다.

 

 

 

한때 가파른 저 산을 넘어 남쪽에도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얘기가 허구로 들리지 않은 유일한 근거는 아직 남아있는 여서국민학교 폐교의 규모입니다.

여서광장외에 유일하게 조깅이 가능한 곳이기도 합니다.

운동장 한편에 과거 이곳에 오래 근무했던것으로 추정되는 교장선생님의 공덕비와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있는곳기도 합니다.

 

 

 

 

섬이란 대게가 그렇듯이 바닷가운데 산 하나 솟아 오른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물이 마른적이 없답니다.

해발 352미터의 높지않은 산 깊지 않은 계곡에서 공급되는 물 치고는 양이 많은 편이란 생각입니다.

개인집에 물통을 하나씩 마련해서 집수하는 한편 사진에서 보듯이 두 개의 공동우물이 있습니다.

마을 중턱에 하나 그리고 아래 사진에서 보듯 히피님 저택 바로 아래 하나가 그것입니다.

 

집집마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가구에 수세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어 정화되지 않은 생활하수로 인한 바닷물 오염을 걱정하는 뜻있는 사람들의 얘기도 들었습니다.

물은 넘치고 그늘은 절대 부족

여서도의 양면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이곳이 여서도 남방입니다.

제주도를 등지고 운봉산이 팔을 벌려 마을을 끌어안고 있는듯한 형상인데 이십오리 해안선 일주도로가 왜 없는지 금방 이해가 갔습니다.

 

수심이 깊은 탓인지 물색이 참 검푸른것이 물에 넣기만 하면 벽돌처럼 가라앉은 조강에겐 물색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였습니다.

 

 

히피님 저택은 위치가 참 좋습니다.

공동우물옆에 서 있는 수령미상의 동백나무와 잘 어우러져 있고 조망권이 좋아 여서항 앞이 훤히 내려다 보입니다.

 

 

완도에서 오후 세시쯤 출발해서 여서도 까지 오는 배 입니다.

오는 중간 중간 이장이 비료대금 청구서 돌리듯 여기 저기 떨어져 있는 섬을 거쳐 이곳에 저녁 여섯시 쯤 도착해서 하룻밤 묵고 이튿날 아침 일곱시에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앞서 설명드린 황사장님외 대여섯분 정도가 이렇게 배를 가지고 고기잡이를 하고 광장 근처에 위치한 몇몇 가구가 낚시꾼들을 상대로 민박집을 운영하고 나머지 분들은 무얼하고 무얼 먹고 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볼것없고 먹을것 없고 특히나 여름엔 쉼터도 없고....단지 수심이 깊고 물이 맑아 고기가 많고 그러니 낚싯군들에게만 환영받는 곳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수백년 내려오면서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원주민들에 의해 지어진 집과 급한 경사에 미로처럼 펼쳐진 돌담길은 이곳에 뿌리내려 대대려 내려온 섬사람들의 지혜와 예술이 녹아있는 소중하 유산이며 유물 그 자체였으며 적잖게 눈에 띄는 빈집과 집터 유물처럼 남아있는 절구통은 여서도의 현주소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우리야 여기서 이렇게 살지언정 자식새끼들 뭍으로 떠나 보낸것이 자랑이고 보람이고 꿈이라는 얘기 얼핏 들었습니다.

 

꿈을 이룬 할머니

바람이 불거나 눈비가 오거나 오늘같이 아침부터 삶아대듯 푹푹쪄대는 더위속에서 일찌감치 아궁이 불지피며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뭍에서 생각없이 들이닥친 조강이 잠시 헤아려 보지만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만 이미 오래전에 화두를 놓아버린 깨달음이 있기에 저리 자애롭고 평화로운 표정이 지어지는 것이라 짐작할 뿐입니다.

 

 

식전 부지런 떤 덕에 그리고 밀림 탐험하듯 수풀 헤쳐가며 빈집 하나까지 앞장서서 안내해주시고 중간 중간 족집게 설명까지 곁들여 주신 히피님덕에 그리고 기꺼이 찍사를 자청하여 주신 덕분에 조강까지 할머니 옆에 서서 사진에 담을수 있었습니다.

 

문득 나무는 큰나무 옆에서면 죽지만 사람은 큰 사람 옆에서야 비로소 큰다는 말씀을 생각했으며

지금까지도 머리속에 잔상이 남아있는것은 빛이 참 고왔던 청산도의 그 푸르른 절경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고일곳은 고이고 트일곳은 트여놓으면서순서정해놓고 쌓아올려진 돌담과 그 돌담을 부축하듯 어우러진 덩굴

사람은 떠났어도 마당 한켠 묵묵히 자리 지키고 있는 절구통들입니다.

 

 

떠나온 여서도가 벌써 그리워진다는 말씀을 이리 장황하게 올렸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 !

복 받으시기를..............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