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울릉도이거나 독도 이거나 - 동쪽의 멀리 있는 섬이야기

조강옹 2020. 6. 23. 02:39

묵호항 여객선 터미널

 

대합실 전경

 

 

 

승선 직전 기념촬영

2020년 6월 14일 아침 8시50분 묵호항에서 출항 예정인 씨스타 1호를 예약했다.

하루전 기상 사정으로 아침 6시로 출항이 당겨졌다는전갈을 받았다.

청주에서의 출발시간을 새벽 네 시에서 한 시로 변경했다.

출발 당시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묵호가 다가올수록 가늘어지더니 이내 멈추었다.

05시 20분 터미널에 도착  미리 준비한 샌드위치로 아침을 대신했다.

 

배안에서 바라본 묵호항
선실 내부의 모습
09시 울릉도 사동항 도착후 발열 체크

바다는 잔잔했다.

좌우를 둘러봐도 파란 잔디구장에 내 달리는 단거리 육상 선수 처럼  배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도착 예정시간 한 시간을 앞두고 아홉시에 사동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있었다.

배는 정시에 사동항에 도착했고 코로나와 관련한 발열체크가 있었다.

 

 

세상은 언제부턴가 커다란 좀비영화 세트장이 되어버렸다.

거리에 나설 땐 늘 마스크를 써야했고 맞은편에서 사람이 다가오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면서

일말의 두려움을 안고 비켜가야했다.

이곳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좀비를 가려내는 과정을 거쳤고 우리는 온전한 사람임을 인증받고 안심했다.

 

 

적색등이 현시된 임시 신호앞에 멈춰선 자동차

 

 

숙소 부근의 거리 모습

 

 

도동항으로 난 골목길

울릉도는 작은 섬이다.

일주도로가 개통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진에서 보듯 곳곳에 도로를 넓히거나 보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동해 깊은 물에 오랫동안 잠수해있다가 가까스로 까치발 뜨고 고개내민 형편에 사람들이 맘 편히 내디딜 땅을 내어줄 여력이 없는 것이다.

골목은 비좁았고 경사급한 산자락에 촘촘히 들어선 집들의 모습은 70년대 서울 어느 변두리의 달동네를 연상케했다.

 

도동항 입구의 노상찻집
저동항쪽으로 난 해변 산책로 입구
정박중인 배

 

도동항 광장의 풍경

숙소에 짐을 풀고 바람쐴겸 도동항으로 나왔다.

계획대로라면 배는 정오쯤 울릉도에 도착할 예정이었고

펜션 주인의 안내에 따르면 점심을 마치고 오후에는 인근 도보로 둘러볼 곳이 있다했다.

한나절 당겨 도착한 덕에 그만큼 여유가 있어 나왔지만 파도로 인해 저동항 쪽으로 난 해안 산책로는 폐쇄됐다.

 

 

도동항 터미널
도동해안산책로

펜션주인은 자기 차량을 이용하여 관광객들을 상대로 가이드를 겸하고 있었다.

혹여하고 하루 한나절  비용을 협상했으나 제시한  금액이 부담이 되는 액수였다.

관광안내소 부근에서 눈에 띄는 렌트카회사에 전화를 했다.

수화기 속의 렌트카 사장은 긴 말 필요없다는 듯

남은 일정 렌트비용을 우리가 두말 아니할 정도로 저렴한 가격을 제시했다.

흔쾌한 흥정끝에 정오까지 차량을 갖고 오겠다했다.

다소 복잡하고 난감하게 꼬인 난관이 일순간 담장 무너지듯 해결되었다.

이때가 오전 11시 20분 경이었다.

 

 

태하항 해변

   

 

산책로
태하향목관광모노레일
전망대 가는 길
한국 10대 비경으로 꼽히는 울릉도 등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하나 건졌다!"

 

밤낚시- 스물 스물 올라오는 찌를 숨 죽이고 바라보다 "때"를 확신하고 힘껏 챔질하였을 때 턱하니 바늘이 물고기

         입에 걸려 손에 전해져 오는 긴장감

 

사진 - 뷰파인더에 마지막 퍼즐이 조합되듯 꽉 잡힌 그림을 보고 흩어질세라 조심스레 셔터를 눌렀을때

        셔터음과 함께  전해져 오는 만족감

 

사격 : 조준선 정렬이 끝나고 가늠자와 가늠쇠 목표물이 이루어낸 일직선이 흐트러질세라 조심스레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표적 뒤편에 피어 오르는 먼지를 보았을때

 

자신에게 격려하듯 칭찬하듯 자랑하듯 되뇌이는 말

"하나 건졌다"

 

태하항 해변가에 간이 주점이 있었다.

쉬어갈 겸 앉아 멍게 먹으면서 소줏병 비트는 여주인에게

저 앞에 놓여있는 모노레일 타고 올라가면 무어 볼거 있나 물었다.

"10대 비경이라하니 볼만하겄지요,  요금도 이천원밖에 안하는데..."

탄성을 자아내면서 한참을 머물다 내려오면서도 자꾸만 되돌아 보게끔 만든 저 비경을

그 아낙은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소개했다.

비경도 자주보는 사람들에겐 비경으로 아니보이는듯 하였다.

 

꼬박 지샌 지난 밤

배타고 세 시간

점심 식사 후의 나른함

체력도 집중력도 바닥 난 그 피로감과 무기력감을 일시에 날려버리고

화들짝 정신들게 만든 울릉도의 비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다가왔다.

 

일찌감치 하나 건졌다

 

곧 6월14일 오후 세시 15분 경이었다.

 

코끼리 바위

천상 코끼리같으니 이름이 그렇게 붙었으리라.

뒤에 있는 것은 코끼리 똥이라했다.

 

훌라우프

일행중 한 사람은 저 포토죤에서 사진 찍지 못한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나리분지

높은 산-숨이 턱에 차오르게 올라서 내려다 본 마을 풍경을 바라볼때

 

비행기-뜨고 내릴적 내려다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

 

옹기종기 모여사는 우리 사는 세상은 아름다워보인다.

그래서 세상은 신이 가꾸어 놓은 정원일거라는 생각을 종종한다.

 

나리분지

급하고 곡한 경삿길 따라 올라오니 입구에 전망대 하나 있었다.

 

가끔씩 절실하게 느끼는 광각에 대한 아쉬움

24mm에 담기엔 매번 느끼는 만큼 부족했다.

 

구경이라고 하는 것이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족한 풍경이 있고

가까이 다가가서 구석 구석 들춰봐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다.

 

그냥 여기서 이대로 바라보다 뒤돌아 가고 싶었다.

그리하자해도 크게 반대할 일행도 없었지만 온 김에 그냥 차로 한 바퀴 둘러보자고도했다.

그렇게 돌아나왔다.

곳곳에 흔적은 있으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않았다.

나리분지는 신이 공들여 가꾸는 정원임이 분명할거라는 생각에 몰래 훔쳐본 죄책감 마저 드는 기분이었다.

 

이렇듯 두번째로 건진 것이 같은날 오후 4시 30분 경이었다.

 

 

딴바위

저걸 그냥 바위라 해야하나?

섬이라 불러야 하지 않겠나?

깊은 물에서 어렵게 고개 내민 바위섬은 곳곳에 몇 개 더 있었다.

삼선암

 

관음도

돌다보니 울릉도를 한 바퀴 돌았다.

생각보다 울릉도는 작은 섬이었고 

적당히 시장했고 매우 피곤했으며

오늘보다 내일 허여된 시간이 더 많았으므로

숙소로 돌아와

준비해온 고기를 구워 술도 적잖게 마셔가면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 나누면서도 피곤함에 못이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서둘러 결론 맺고

일찌감치 죽음보다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도동의 좁은 골목길
도동항의 아침

아침이 밝았다.

바닷물같이 맑은 정신과 새털같이 가벼운 몸으로  도동 해안 산책로로 향했다.

저동항으로 가는 길은 중간에 막혀있었다.

산책로 걷는 내내 기암 절벽에 파도가 부디쳐 빚어내는 소금보다 하얀 빛의 예술에 매료되었다.

바다와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곳에 바람이 그려낸 그림에 넋을 잃고 가다보면

가끔씩 산책로 까지 물이 튀어 신발이 젖기도 했다.

 

동쪽에서 떠 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저 수평선 너머 일본이 있을거라는 생각과

아주 오래전 배에 돛 하나 달고 혹은 노 저어 어찌 예까지 왔으며 어찌 조선 반도까지 욕심을 냈을까?

그 괘씸하고 고얀 만행보다 당시의 과학과 문명으로 납득할 수 없는 먼 길, 보이지 않는 길 따라 온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른 아침

파도소리와 갈매기 소리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던 하얗게 부서지던 포말

"사념의 머리 곱게" 씻어내는 소중한 아침의 시간이었다.

 

젊은 시절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마른 오징어 찢어 고추장 묻혀 만만하게 안주삼던 시절도 있었다.

열차안에 오가는 판매원이 외치던 심심풀이 땅콩과 더불어 싸고 맛있는 안주의 대명사였던 오징어

 

이제 더 이상 옛날의 그 오징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오징어와 마른 나물을 구입했고

가게 주인은 아침 마수걸이 제대로 했다는 흡족한 눈빛으로 우릴 전송했다.

 

 

곳곳에 갈매기들 천지였다.

심지어 도로에까지 집나 온 새끼를 달래 귀가를 재촉하는 갈매기 가족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성불사 입구 길거리 화가에 의해 그려진 달마대사의 부릅 뜬 눈에 흠칫 놀랐다.

 

송곳산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성불사

 

성불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천부항 쪽 풍경

중국의 천문산을 연상케하는 송곳산 - 구멍이 세 개가 있었다.

아래 멋드러진 모습의 펜션은 주변 풍경을 거슬리지 않고 잘 어울렸다.

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편안하고 멋드러지니 한참을 머물다 다시금 저동 쪽으로 향했다.

 

 

내수전 쪽으로 향해 오면서 중간에 저 다리 건너 관음도를 구경하기로 하고 차를 멈췄다.

도로옆에서 차를 팔던 아낙이 다가와 이르기를 앞서 관음도 다녀 온 사람들이 관리소에 바람이

 불어 위험하다 고한 연유로 저 다리로의 출입이 통제되었다는 것이다.

납득이 가진 않았지만 앞서간 사람들이 뒤돌아 오는 것을 보면서 이내 체념했다.

달리 방법이 없는것은 알면서도 미련을 갖는 것 만큼 미련한 것이 어디있겠나?

 

 

내수면일출전망대에서 바라 본 관음도쪽 풍경

 

죽도의 모습

 

내수면 전망대

차에서 내려 잠시 곡한 오르막 숨차게 오르면 이런 그림들 둘러볼수 있다.

어제 태하항에서의 비경 못지 않은 절경

일등외에도 기억될 수있는 이등의 풍경이었다.

숨차게 오른 댓가 넉넉히 받아 들고 흡족해 하다가  문득 독도가 생각났다..

아직 시간은 오전이고 울릉도 일주도로를 한 바퀴 하고도 반을 돌아 다시금 도동항으로 가는 길

 

문득 우리를 데릴러 오는 배가 오후 다섯시 오십분

독도로 가는 배가 오늘 오후 세 시에 있다는 것을 배편 예약하다 얼핏 들었던 생각이 났다.

 

독도 갈까?

선박회사에 문의 하니 예약이 가능하다한다.

오후 세시에 독도를 다녀와서 울릉도에서 삼사십분 머물다 우리가 예약한 묵호로 가는 배가 그배란다.

 

배가 선회하면서 프로펠라가 빚어낸 환상의 쪽빛 예술

뱃길따라 한 시간 사십 분

독도가 거기 있었다.

한 차례 접안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방송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뒷편으로 돌면서 보여준 독도

가슴이 뭉클, 눈물이 울컥,

독도는 노랫말 처럼 외롭지도 않았고 의연했으며

유치환선생의 울릉도 싯귀처럼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밀리어 올것 같지도 않았고

그냥 의젓하고 꿋꿋한 모습으로 거기 서 있었다.

 

태극기는 준비했으나 플래카드는 준비하지 못했다.

미리 준비해 갔던 옆 사람들이 촬영을 끝내는 것을 보고 정중히 부탁해서 사진을 찍을 기회를 얻었다.

젊은 선원들은 애가 닳아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마스크 좀 쓰세요" 애원하다 시피 외쳐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 본연의 모습을 독도를 배경으로 담으려는 욕망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어떻게 한 분도 마스크 쓰신 분이 없네요" 탄식과 함께 포기한듯 내뱉는 젊은 선원의 말에

 

"내가 잠시 벗으시라했어요"

플래카드를 빌려주고 사진촬영까지 자처한 마스크 쓴 여인은 순간의 기지로 우리 허물까지 덮어주었다.

플래카드 빌려준 것 보다 그 말이 더욱 고마워 눈물까지 나려했다.

 

 

집으로 가는 길

다시 어렵게 사동항으로 돌아왔다.

사십여분의 시간이 허락되었다.

여자들은 배멀미에 시달리며 가야 할 남은 뱃길을 걱정했다.

서둘러 차량을 반납하고 짐을 꾸리고 가까스로 배에 오르면서 하룻밤 머물렀던 울릉도

애달픈 국토의 막내라 노래했던 울릉도의 비경과 절경 보다는

 

더 멀리서 

더 창망한 물굽이에

갈매기 벗삼아 의연히 서 있던 독도

어찌 뭍으로 향하는 그리움이 없을까?

그 그리움

그 간절함

끊임없이 출렁이는 물결속에 씻어내며 외로운듯 외롭지 않게 서 있던 독도

두고 오기엔 너무 멀리 있는 섬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애닯던 우리의 섬-독도가 벌써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