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의 가을
.
충청북도
"쪽수"로 따지자면 일개 광역시만도 못한 일백육십만 도민
한반도 남쪽, 반도의 가운데 어미뱃속에서 자라나는
태아 모양으로 잔뜩 웅크린 형상의 좁은 땅에서 옹기종기 모여 삽니다.
속리산은 그 발목 부분에 자리한 명산으로 충북인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명산대찰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이름난 산엔 큰 절이 있습니다.
속리산도 예외는 아니어서 법주사란 대찰 하나 있습니다.
산이 좋아 산에 온 사람들일지라도 이곳이 모두 절 땅이니 구경하는 값을 치러야한다는 안내판 하나 구석에 세워놓고
입구에서 턱하니 저렇게 돈을 거둡니다.
얼마 전 이곳 승려들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큰 판돈 규모로 노름을 한다는 사실과
그것을 제보한 사람이 같이 노름을 했던 승려이고
발고하고 나서 자취를 감췄다는 내용에 비추어 아마도 큰돈을 잃은데다가 "개평"마저 인색한 같은 "꾼"에 대한
앙심에서 비롯되지 않았겠나! 추측하면서 혀를 차는데
"그래도 새벽 예불시간 되면 노름을 멈추고 부처님께 예불 드리러 갔다네요"
역성들듯 거드는 아내마저 미웠던 것이 엊그제인데 초입부터 "떵"밟은 기분으로 일금 사천 냥 털리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2020년 10월 23일 오전 10시 50분
"세조길"로 이름 진 산책로 같은 길을 따라 올라오다 보면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맑아지는 듯 한 세심정이란 휴게소
하나 나옵니다.
왼쪽으로 가는 길은 문장대이고 아래 조붓한 길 따라 가면 천왕봉 가는 길입니다.
.
햇살이 내려쬐는 단풍이 고운 아침
이 길은 초행입니다.
평일에다 코로나 여파인지 인적도 뜸합니다.
경사도 높은 험한 길은 계단으로 잘 정비하여 오르는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한 시간여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얼핏 저런 그림이 나옵니다.
얼른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
.
정상입니다.
이곳에서 문장대 쪽으로 능선 따라 가면서 보여주는 그림이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
.
.
이곳에서 사람 하나 만났습니다.
문장대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길은 험하지 않은지 걱정되고 궁금한 마음에 길게 물었는데
"쬐금만 가문 디구유 질은 좋아유"
긴 물음에 짧은 답인지라 반신반의하며 뒤를 보이고 가는데 또 한 말씀 건너옵니다.
"난 요 아래가 집이유. 국민핵교 소풍을 일루 댕기구 해서 잘 알지유.
지금은 인천 사는디 고향 온 짐에 잠깐 올러온거유"
신선대 휴게소입니다.
전해 내려오기를 신선들이 모여 노는 모습이 보이 길래 다가와 보니 아무도 없는지라 다시 돌아가서 바라보면 여전히 또
신선들이 앉아서 노니기에 신선대라 불렀다는 얘기인데 주어는 늘 그러하듯이 "한 고승이……."로 시작합니다.
.
.
.
.
.
.
능선 치고는 길이 제법 험하기도 하고 멀리 보이는 봉우리 이길 돌아서면 잘못 드는 거 아닌가 하다 금세 다시금
보이는 봉우리에 안심하면서 잎사귀 떨군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기암괴석들의 절경에 입을 다물기가 어렵습니다.
마침내 문장대의 모습이 지척에 보이고 아래 이정표 앞에 까지 이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오후 두시 반경이었습니다.
.
.
.
여기까지는 문장대에 올라서 내려다보이는 그림입니다.
다소 늦은 시간인지라
전에는 사람에 치여서 제대로 내려다보지 못했던 그림들이 새삼 눈에 들어옵니다.
.
.
단풍고운 길 따라 내려와 어느덧 세심정에 도착했습니다.
언제부턴가 문득 느끼고 깨달은 것이 사람의 뒷모습이 앞모습 보다 더욱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저렇게 짝을 지어 걸어가는 모습에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보다 내려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더욱 눈에 들어옵니다.
세심정을 지나 내려오는 길이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무겁고 하릴없는 짐 내려놓고 빈 접시 설거지하듯 마음 닦고 내려오는 길이기에 그러려니 했습니다.
앞서가는 사람들 따라 문장대 오르는 길만이 속리산인 줄 알았는데 천왕봉에서 문장대 겨눠 반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돌아
내려오면서 잎사귀 떨군 나무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던 크고 많은 바위가 연출한 자연에 대한 경이와는 별개로
그래도 적잖은 세월 나름 절간 출입하고 살아온 중생인지라
삼귀의에 사홍서원 마음에 담아 염해왔는데
부처님의 기르침 전하노라 "고집멸도"를 논하던 "스님"들이
산적처럼 길목지켜 중생들 호주머니 털어낸 돈으로 밤새는 줄 모르고 도박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스님을 스님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승려라고 부르는 마음속 분노를 떨쳐내지 못하고 가는 길
굳이 휴심정에서가 아니라도 다시금 마음 닦고 찾아오리라!
나무그림자가 일찍 길어지는 계절
속리산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길은 환속의 길이기도 합니다.
2020.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