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한 달(7)- 버치냐?
외돌개에서 쇠소깍 방향으로 이어 걷기로 했다.
정방폭포에서 가까운 정류장에서 내려야했는데 두어 개 지나쳤다.
길을 잃었다는 순간의 당혹감은 조용하고 깨끗한 도심의 아침풍경에 금방 잊었다.
바닷가쪽으로 어림짐작 방향을 잡았는데 햇살을 등지고 걸어오는 유니폼 차림의 노인과 마주쳤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러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 송강 -
과학문명의 발달은 노인들이 이고 진 짐을 모두 내려놓게 만들었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존경받으며 세상을 이끌었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젊은이들에게 묻고 배우며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아야 하는 더 큰 짐을 지게되었다.
와중에 저렇게 깔끔하게 유니폼을 갖춰입고 스스로 거리 환경 개선에 이바지 하는 일
그나마 품위를 유지하면서 변해가는 세상에 자그마한 디딤돌를 자처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 노인의 성공적인 삶으로 보인다.
따라서 담벼락에 걸린 플래카드는 "(힘에) 부치세요? 거진 다오셨으니 힘내세요!"로 새겨 읽었다.
노인에겐 백발이 어울리듯 섬은 저렇게 홀로 외로워야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까?
맞는 생각이라면 들판에 홀로 선 나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것이다.
한편으로,
제주 - 신들의 정원에 사람의 손길은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사람들의 정원에 나무위에 지어진 새집을 사람이 기꺼이 허용하듯 그럴것이다 하면서도 때때로 위험수위에 다다른 모습의
풍경도 가끔씩 눈에 들어온다.
보목리에서 태어났기에 행복했던 시인은 보목리를 노래함으로써 주민들을 행복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득, 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호죽리로 시집가셔서 아직도 그곳에서 시래기 뽑고 계실 고모님을 생각했다.
임자 !!
명절때 맥힌 고속도로
목천서 청주 질러가는 길이 하나있어
글루 나와서
뜨거운 차 한잔 마실 즈음 되문
조그만 내가 하나 보이지
다리건너 바로 왼쪽으로 틀어
내 따라 올라가다 보문
조그만 분지안에 감춰 놓은드끼 동네 하나 나오거던
...............
꿈꾼게 아녀 증말루..
베포기는 이미 잘려나간지 오래구
모든 낭구구 풀들이구 갈색으루 갈어 입었거나
붙이구 있던 잎사구덜 비듬인양 털어버린지 오랜디......
베란간에 눈앞이 퍼래지는겨..
겨울답지 않은 날씨 대추나무 연 걸리드끼
땀흘린 사람덜 옷벗어 걸어놓구
파란줄 하나,
하얀줄 하나
또 파란줄 하나
또...
신발 벗구
밭고랑 따라 열병식 하듯 걸어갔던겨
발바닥이 시리도록 차가운 감촉
놀랠 건 아니지
겨드랑이 까지 가려울 것 있겠나만
몸이 게벼워지는것이 ...
땅심여 -지기(地氣)..
갓난애덜 장딴지 같은거루 하나 뽑어서
아무데구 그냥 둬번 문질러
메가지 비틀어 입으로 까거나
혹은 한입 깨물어 손대지 않구 알맹이만 까먹은겨...
씨래기 다듬어 주시는 거친 손
구리빛 얼굴에 흐르는건 땀이 아니지
거룩하기 까지 한
정(情) ....... 그런거 알지?
나
증말루 본거여.
호죽....
신이 감춰놓은 동네
그 무욕의 땅에서 무수 뽑던
우리 고모님과 그 동네 사람덜....
2011/11/28
“당최 댕겨 갈 생각 말아라!”
바쁘게 살면서 늙은이 뭐 볼게 있다구 오냐시면서 손사래 치시면서도
정작 찾아뵈면 지리하리 만치 “옛 이야기” 하시면서
갈 때는 어두컴컴한 헛간에 챙겨 줄 먹을거리 찾느라 분주하신 고모님은
아직도 호죽리 밭에서 나고 자라는 것들 가꾸며 살고 계신다.
바닷가로 난 길을 따라 쇠소깍에 도착했다.
한낮의 만만찮은 더위에 등짝은 땀으로 젖어오는데
바다에서 파도를 몰고 온 바람이 그 땀을 식혀주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고 내가 제주에 있으므로...
걸어야지!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그렇게 제주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