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제주에서 한 달(11) - 동쪽 끝 성산

조강옹 2022. 1. 6. 04:02

 

언제 어디로 갈 것인가는 정한 바 없으나 제주에 머물 날도 그리 많지 않으니 동쪽 끝까지는 가봐야겠다는 조바심이 한몫 했을 터이다.

 

수모루, 고래왓, 여의물, 광대왓, 반찬모르, 속도르, 어두모르, 뒤통모루 등 어원을 짐작키 어려운 정류장을 몇 개고 지나 가까스로 도착한 성산일출봉

 

오래전 이곳을 찾았을 때 가랑비 내리는 날 우의입고 정상에 올랐으나 구름이 풍경을 가려버렸던 곳

 

중국인민들의 경상도 토속어를 능가하는 억양과 무시무시한 데시벨로 귀청 나갈까 걱정했던 곳

 

지금은 저렇게 조용한 아침 인적마저 뜸하니 자연 사위가 조용하다.

 

경사가 곡하기에 계단에 의지해 천천히 올라도 숨이 가빠오는데

 

 

괴물이란 우리말보다는 몬스터라는 외래어로 표현하는것이 낫겠다 싶게 괴물은 괴물이로되 무섭지 않은, 마치 대개의 사찰 일주문 지나 맞이하게 되는 사천왕과 느

 

낌이 흡사하다.

 

요즘 흔히들 쓰는 말로 "귀여운 괴물, 귀여운 몬스터"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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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한 오르막 계단 디뎌가며 천천히 오름에도 숨이 가빠온다.

 

숨 고를 겸 잠시 좌우를 살피면 저런 그림이 나온다.

 

 

오천 년전이라 했다.

 

뭍에서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자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 구름타고 내려앉을 즈음

 

제주도 동쪽 물밑에서 가쁜 숨 참지 못하고 불쑥 솟아올라 고대로 굳어 버린 곳이다.

 

눈 아래 펼쳐지는 오름이나 그 보다 먼 바다의 풍경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담하고 아름답다.

 

마치 때마다 하나씩 주려고 벽장에 감춰놓은 할아버지 곶감을 베게 쌓아 딛고 올라서서 훔쳐 먹는 손자의 심정으로

 

그렇게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둘러 보았다.

 

올라갈 적 보았던 풍경이 더 편하게 내려 보니 더욱 아름답다 느끼면서 다 내려와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우도를 보다 가까이 볼 수 있는 지점으로 가는 길이고 유료와 무료가 갈리는 길이기도 하다.

 

 

해가 보다 더 높이 떠올랐고 사람도 부쩍 늘었다.

 

눈이 호강했기에 족한 마음으로 내려왔다.

 

돌아보니 금 긋듯 내어 놓은 도로는 낮은 곳으로 가는 길은 무료이고 높은 곳으로 가는 길은 유료지역이다.

 

계단 없이는 오를 수 없는 곳이라 입장료에 대한 거부감이 덜했긴 했지만 보기에 좋기로는 양쪽 모두 더하고 덜함이 없었다.

 

동쪽 끝에 왔으니 가는 길은 서쪽이다.

 

왼쪽의 바다 보고 한참을 걷고 또 걷다가 때가 되었으므로 버스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제주에서 보낸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하루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