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길위에서 쓰는 편지- 진도 가는 길

조강옹 2022. 1. 6. 12:25

아직도 눈에 어른거리는 소금밭을 뒤로하고 진도로 가는 길

 

창밖 풍경 한 컷 - 날아가는 파리 손으로 움켜쥐듯 찍었다.

 

어제도 그러했으므로 오늘도 그러하고 내일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일상

 

저 곤한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전에 떠 있는 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야 하기에

 

"저 놈의 해는 머슴도 안 살아봤나?"

 

푸념도 하고

 

"좀 쉬었다 하세나"

 

참으로 나온 열무김치 안주삼아 탁주 한 사발의 술기운으로 덜어내기도 하고

 

더러는 "아나 농부야 말 들어" 신명 좋게 뱉어내는 가락 따라 부르다 보면

 

사래 길었던 밭고랑도 둑에 다다르고 긴긴해도 늬엿 서산으로 넘어갔다.

 

이제는 "끼니걱정"없이 먹고는 산다는 생각에 이전보다 다소 여유가 생겼지만 저 밭에 열 지어 고랑따라

 

손 놀려가며 심고 가꾸는 "어머니들"의 거룩한 손놀림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을 차안에서 훔쳐보는 마음이 썩 편치만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고자 나선 길

 

내륙의 한 가운데서 살아온 충청도 노인의 눈에 비친 풍경은

 

아직도 잔영이 남은 소금밭과는 달리 바닷가라고해서 다 멋있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실망감 또한 적지 않았다.

 

나들이가 어찌 볼거리 뿐이랴!

 

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 "빗자루"만한 생선 한 마리 골라 회를 뜨고 준비해 온 양념으로 매운탕을 끓여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며 세상사는 얘기 순서 없이 나누었다.

 

다만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묻기보다는 묻는 말에 답하던 시절이 가고

 

이제는 모르고 궁금했던 것을 묻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경륜과 경험에서 터득한 지식과 요령을 전수하며 젊은이들로 부터 존경받던 노인의 시대가 가고

 

이제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젊은이들로 부터 지청구 들어가며 되물어 깨우쳐가는 노인의 시대

 

4차산업 시대를 살아가는 노인의 지혜 아니, 요령 아니겠는가?

 

"너도 나이 오십 돼봐라 더 자고 싶어도 못 잘티니께"

 

아침 출근 시간을 앞두고 5분이 아까워 잠자리에서 "뭉그적거리는"네게 어머니는 예언삼아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어머니의 예언은 나이 육십을 넘어 퇴직을 한 이후에 현실화 되었다.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필수"가 없어지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아니해도 되는 "선택"이 남았을 때

 

신기하게 새벽잠이 말끔히 사라지고 이른 아침 동이 터오는 시간과 풍경이 이리 아름다운지를

 

미호천 따라 내어놓은 자전거길 따라 폐달 밟아가며 비로소 깨달았다.

 

구름에 가리워 늦게 얼굴 내민 해를 보며 걷다가

 

아침 바다와 물이 나고 들면서 백사장에 새겨놓은 메시지를 해독하려 들여다보면서 비로소 바닷가의 아침 시간을 즐겼다.

 

 

진도 타워

 

야트막한 산

 

그나마 차로 누구나 쉽게 올라올 수 있고 쉽게 내려다 볼 수 있다.

 

빠른 물살을 이용하여 열세척의 배로 수백 척의 왜군을 물리쳤던 울돌목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

 

나라와 백성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있는데

 

임금은 무능하고 의심이 많아

 

적과 적을 무찌르는 신하를 같이 두려워했으며

 

조정의 간신들은 권력투쟁에 백성의 안위는 아랑곳없었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인용하여)

 

그래서 김덕령처럼 죽을 수도 없고 곽재우처럼 살수는 더욱 없어

 

전장에서 죽는 것만이 자연사고 그래서 칼은 늘 울고 그것이 노래가 되어

 

곳곳에서 칼날 위를 걷듯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한 승전을 거듭하다

 

노량해전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칼의 노래, 칼의 울음은 이렇게 맺는다.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은 누구였을까

 

멀리 나왔으므로 집으로 가는 먼 길 내내

 

외롭게 힘들게 칼날 위를 걷듯 편치 않게 살다가신 장군의 생애를

 

그리고 13척으로 200여척의 왜적을 맞아 외롭고 두려운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던,

 

420여 년 전의 울돌목과 가리듯 아름다운 다리가 놓인 작금의 울돌목을 책장을 넘겼다 되넘기듯 번갈아 그려보며 집으로 가는 길.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은 누구였을까?

 

 

소풍 나왔다 돌아가는 아해가 문득 미뤄놓은 숙제 걱정하듯 마음이 편치 않음은 길길이 먼탓만은 아니었다.

 

202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