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주유천하7-문현천지

조강옹 2024. 11. 1. 13:46

 

내 생애 언제 이런 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오는 첫날부터 메모를 했다.

천장 낮은 열차안에서도 숙소에서 룸매이트에게 방해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휴대전화기로 불 밝혀 가며 오늘 아침부터 이동 중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대한 느낌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 다음 사진 바라보며 정리하고 편집하고 해서 두고두고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은모든 일정을 마치고 북경으로 오는 열차 안에서도 이어졌다.

 

그런데 열차에서 내릴 적 배낭을 올려놓은 3층 침대칸 발밑에 있는 소지품 빠짐없이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내렸건만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깨달았다.

 

머리맡에 마지막 순간까지 메모하고 그냥 베갯머리에 그대로 놓고 내렸음을.

이렇게 허무하고 이렇게 맹랑한 일이... 다리에 힘이 빠지고 주저앉고 싶었다.

 

 

문현천지

관공서에서 운영하는 곳 같은 느낌을 받았다.

티켓 서비스 센터란 한글 한 줄이 반갑기 그지없다.

난주에서 내려 어디가 어딘지를 모르는 체 이리저리 나다니면서 간판이고 어디에서고 한글 한 줄 본적이 없고

 외국인이라곤 우리 말고 없는 듯했다.

 

유독 숙박업소 프런트 여직원들만이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도 수속을 밟기 위해 받아서 든 여권을 보고 알았고 금세 얼굴이 환해지면서 급격히 친절해졌다.

 

여기서 저렇게 한글 한 줄이 우리의 국력이 이렇게 여기까지 뻗쳤다는 비약에 겹쳐 감동까지 받았다.

그만큼 멀리 왔구나 하였다.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이고 일정이다.

내일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 먹고 셔틀버스 타고 올라가면 된다고 하였다.

오면서 간간 추수를 끝낸 볏짚을 쌓아놓은 모습을 보았다.

여긴 콩을 뽑아 볕에 말리는 것인데 농부들의 방식은 모두가 같은 것이 신기했다.

 

몇 해 전 중국을 통해 백두산 천지를 가던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풍경이 흡사했다.

중국에 천지가 백두산 천지를 포함해 다섯 개이며 그중 하나가 이곳 문 현천지라 했다.

 

 

깊이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낮았다.

둘레 따라 둘렛길을 조성해 놓았고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 봄처럼 따사롭기까지 하다.

 

 

입구에 떡치는 모습을 보고 한 그릇 시켜 나누어 먹었다.

입 천장에 들러붙는데다가 기대치 만큼 맛을 내지 못했다.

척박한 땅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먹었던 요리였구나 하였다.

다시 문현으로 돌아와 하룻밤 묵는다고 했다.

중국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그리고 북경역 앞을 비롯한 시가지 곳곳에 세워놓은 오토바이들은 하나같이 저렇게 바람막이를 설치했다.

 

오래전 오토바이 타고 출퇴근하던 시절

겨울 추위를 피하고자 윗도리 안에 신문지를 넣고 다니던 기억이 있다.

중국인들은 그 부분에 대해 우리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아주 적극적이구나 하였다.

 

 

시간을 내 마트도 들렀다.

독한 술 한방 저렴한 가격으로 샀다.

저녁에 이틀 나누어 마셨는데 그런대로 괜찮았다.

 

모처럼 샤브샤브 성찬을 먹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오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도회지엔 예외없이 골리앗 크레인이 여기 저기 아파트를 짓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병영사를 비롯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절경인 관광지엔  인적이 뜸했다.

 

우리를 위해 인민들을 통제한 것 아니냐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 이래도 운영이 되나 싶게 사람이 적었다.

우리 중국통은 이르기를 언젠가는 부푼 풍선처럼 터져버릴 것이라며 그 여파가 고스란히 우리에게 미칠 것이기에 불안하다 했고 관광지 사람이 적은 것은 불경기에 중국 인민들의 살림살이가 곤궁한 탓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어둠이 내린 야시장 아낙들의 눈빛엔 생기가 돌고 씩씩해 보였다.

야경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아직 여긴 중국이고 내일 어디로 가는지를 여전히 모르는 채 밤은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