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들에게 고함
촛불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참으로 암울했던 시대, 극소수의 권력과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면서 안그런척 점잖떨고 있거나 선무당 같이 칼춤 추는 어둠의 무리들을 일거에 몰아냈던 희망과 이 땅, 이 나라의 주인이 바로 나와 내 이웃. 우리 모두의 것이란 것을 새삼 확인시켜주고 서로 다짐하는 그런 엄숙하고 경건하기까지한 그런 시간과 그런 장소에 빛나던 촛불이었다.
그 촛불을 너희들이 든다한다.
공정을 외치면서 ‘스승’을 향한 성명서라면서 요구사항이 ‘이리 해라’ ‘저리해라’ 훈계하고 가르치듯까지 하면서 과거 우리가 부당한 권력에 맞서 밝히던 그 촛불아래 우리가 외쳤던 그 어투에 대상만 ‘독재 권력’이 아니라 ‘스승’으로 바꾸어서 말이다.
그래
언행불일치, 자녀수시입학과정을 비롯한 몇 가지 메뉴를 가지고 마치 중국집 주방장이 밀가루 반죽 한 덩이로 수십, 수백 가지 면발을 뽑아내듯 모든 언론과 정치인들이 꾸역꾸역 내뱉고 갈라내던 수십만 가짓수의 의혹들. 나발만 귀청떨어지록 요란하게 불어댔지 원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젊은 아해들아!
아직 세상 살아갈 날이 나보다 훨씬 많이 남아있고 우리 살아가는 세상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돌멩이하나가 중력가속도 (g=9.8m/s²) 에 버금가는 속도로 급변하는 시기에 너희들이 외치는 공정으로 너희들 또한 “언행불일치”의 우를 범하게 된다는 것 가슴에 새기도록 해라.
가만 생각해보렴.
너희들이 지금 서있는 너희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써냈던 자소서와 봉사활동, 인턴 등 입시를 위한 스펙을 구비하기 위해 했던 일련의 행위들 속에 혹시 지금 너희들이 외치는 공정에 반하는 사례는 없었는지
네가 그 학교에 적을 두고 지금 그 우월감과 자부심으로 생활하기 까지 예의 그 자소서에 글 한줄 혹여 사실과 잘못 기재되어 있는 것은 없는가?
네가 행한 봉사활동. 그 기간 하루 한 시간 어긋남 없이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하고 그 걸 스펙으로 대학 진학에 이용한 것은 없는가?
네 부모가 경제적으로 특별히 부유하거나 자부심 가득찬 기득권에 속해있어 부모의 힘 빌어 기본적으로 특혜 받은 것은 아닌가?
요는 너희가 ‘조국스승’을 비난하며 외치는 그 ‘불공정’속에 ‘조국의 자녀’가 받았다는 그 ‘특혜’속에 이미 너희도 충분히 불공정했고 충분히 특혜를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네 부모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네가 받은 과외를 받지 못해서 아예 그 자리 서지 못하였거나 혹은 더욱더 형편이 안 좋아 고등학교로 학업을 마감하고 아주 많이가진 사람들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열악하고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일하다 “산업재해”라 불리는 피할 수 없는 위험에 부딪혀 꽃다운 나이 생을 마감해야했던 네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상대적으로 네부모가 부자라는 이유로 네부모가 이 사회 기득권층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받은 특혜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그들도 너희와 같이 캠퍼스에서 같이 공부할 수 있도록 보다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은 해본적 없는지 작금의 사태와 더불어 한번 되새겨 보기 바란다.
작금의 이 사태는 좌우를 떠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금수저를 가진자들이 그 숟가락 내려놓기 싫어 ‘공정’을 핑계 삼아 더 배터지게 먹고싶은 욕망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밥그릇에 대한 집착- 그 욕망 아니고 달리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누구나 ‘공정’을 꿈꾼다.
특히나 질병과 교육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같은 병에 걸렸어도 부자라는 이유로 병원 가서 살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반지하에서 죽어가서는 안되듯이
아버지가 부자건 가난하건 학문적 지식을 갈고 닦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고르게 주어져야한다는 것.
말이 길었다만 너희들이 지금 거기 서서 분노하고 증오하는 이유가 특정인의 특혜 때문이라 주장하기에 앞서
혹여 너희 부모는 아니 그러하셨는지 그분 따님만 그런 줄 알았더니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더라는 대오각성
보다 더 공정한 사회를 위해 내가 받은 장학금 나와 같이 대학에 들어오지 못한 가난한 이웃을 위해 나누고
나아가 우리 부모가 부자라서 내가 특별히 받은 고액과외를 통해 얻은 학문적 지식을
지금 부모가 가난하여 학원에 가지 못하는 가난한 이웃들의 젊은이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생각은 없겠는지
오해하진마라
얼핏 이른바 명문대 학생들의 가정형편을 들여다보니 대부분이 부자 부모를 둔 아해들이 다닌다하고, 그 연유가 앞서 장황하게 늘어놓았듯 당시의 입시제도가 가진 자들에게 유리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그 제도의 편의로 너희들이 넓은 문으로 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너희들이 거기서 촛불들고 스승을 향해 공정을 외칠 때 학자금을 마련하고 병석에 누워계신 가난한 부모를 약값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뛰는 가난한 학우를 생각하고 그들에게 진정 너희들이 부모와 더불어 행한 ‘불공정’에 대해 반성하고 자성해야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우리가 들어야 할 촛불은 금수저들이 그들만의 그 금빛을 유지하기 위한 탐욕의 촛불이 아니라
이 나라 백성 누구나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학문으로의 접근에 순서를 정하거나 우선권을 정해놓고 새치기해서는 안된다는 그 촛불이어야 하고 그것은 너희들까지 포함해서 이미 “불공정”이나 “특혜”의 무리속에 속해있다는 깨달음과 반성의 촛불이어야 한다.
이르노니, 속히 그 치기를 거두고 깊은 성찰 있기를.
2019년 9월 21일 노인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