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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예이츠였다.

2012 언터처블 1% 프랑스 영화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영화 목전 칠십의 노인이 중학교 1학년 때 이야기니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기억을 더듬어 1971년도 봄날이었을게다.인근 분교 2개 포함하여 3개 초등학교에서 마치 예선전을 통과한 학생들이 모이듯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년 전체 3개 반 전교생이 600명이 안 되는 신생 중학교 운동장 끝에 때마침 깔린 경부고속도로를 배경으로 세워졌던 현판엔 100억 불 수출 1000불 소득이라 커다란 현판이 세워졌던 때는 바야흐로 농경사회에서 산업화로 전환을 시도하던 때였다. 어느 집이건 대부분이 가난했다.가정방문을 다녀가신 선생님께서 방과 후에 미니 도서관에서 참고서 몇 권 챙겨 내게 주셨다.가세가 빈한하여 아이 참고서 하나 사줄 형편이 못된다는 아버지 ..

파크골프-과유불급에 대한 보고서

미호강의 일출 모습입니다.지구는 둥글기에아침 해는 떠 있는 구름이 먼저 맞이합니다.그 광경은 저렇게 곱고 아름다운 빛으로 "미리 보기"로 보여주는데 부지런한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 황홀경입니다.그리고저렇게 수십미터 거리에 깃발 세워놓은 홀컵을 목표로 하여 절제된 욕망으로 공을 쳐 보냅니다.결과는 그때마다 다른데"이쯤이면 됐다." 하는 만족감과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순서 없이 교차, 반복됩니다.그러면서 또다시 주어진 기회를 맞으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것이 요즘 내가 폭 빠져있는 파크골프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구름본시 땅에 고여있던 물이 방울져쪼개고 쪼개지는 분열을 거듭하여 새털처럼 가벼운 차림으로 하늘에 머물고 있습니다.언젠가는 다시금 모이고 모여, 더해진 중량감으로 저..

오르도스- 종소리의 추억

테무친 영화로도 그려진 칭기즈칸의 일대기그가 이룩한 몽골제국의 흔적이 고스란히 까지는 아니래도 비교적 잘 보존되고 관리하고 있었다. 몽고라고 배우던 이름은 언제부턴가 몽골이 되고우리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듯몽골도 중국 관점에서 일부를 접수하여 내몽골 자치주라 이름하고 이것이 우리가 와 있는 곳이다. 외몽골이 과부 땡빚 얻어 줄어든 살림처럼 줄어들어 고비사막 너머 단일국가 외몽골이라 이름한다고 한다. 우리처럼 단일민족의 자부심이나 정체성은 본시 없고그 연유가 부족이란 개념이 강한 데다가 중간에 너른 고비사막에 의해 떨어져 있는 데다가지도자들의 갈등과 반목으로 지금은 문자도 전혀 다른 것을 각기 사용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칭기즈칸의 유적은중국 자치구인 내몽골에 보관, 보존되어있어 외몽골 사람들도 자주 찾..

오르도스- 곡예사의 추억

하다못해 아침 점호 때 다 같이 행하는 국군 도수체조도 손발을 맞추기가 쉽지 않고사람끼리 모여앉아 카드 들고 그림을 표현하는 카드 섹션도 사람들의 눈을 홀린다.헌데, 말과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 연출해 내는 장면에서 자연 탄성이 나온다.양쪽에 가끔식 한글 자막이 나오건만 장면을 따라잡지 못하고 느려터져 그것에 의지하여 내용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관객 대부분이 한국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말 안내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대충 눈치로 보건대 형제간의 갈등하는 장면도 보이고 전장으로 떠나는 아들을 전송하는 어머니의 절절한 모습도 연출된다.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고 어렴풋이나마 아마도 칭기즈칸 대기를 다룬 것이라 짐작할 뿐이었다.그보다는 말과 사람이 손발 맞춰 연출해 내는 장면이 볼만했고 여러 마리의 말과 ..

오르도스- 초원의 추억

재작년 가을이었다.딴엔 주유천하라 거창하게 이름하고 열흘 남짓 간쑤성 일대 여행할 적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초원을 처음 보았다.한가로이 풀 뜯는 야크 떼를 멀리서 바라보며 전원 같은 그림에 마음까지 여유가 넘쳐났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저 푸른 초원"은 척박한 땅 위에 듬성듬성 난 풀밭이었고 야크 처지에선 온종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뜯어 먹어야 겨우 배를 채울 수 있는 처지였다.여기초원 곳곳엔 스프링 쿨러가 돌아가고 있었고이런저런 어린이 놀이터 만들어 놓아비행기 타고 예까지 왔는데 시간 때울만한 것이라곤 저 "초원 썰매" 타기가 그나마 괜찮아 보여한참을 줄서 기다리다 타고 내려가니 만만찮은 속도감에 은근히 스릴까지 있어 좋았다 싶었는데종착지까지 무사히 도착해서 일어서야 하는데 냉큼 다리가 펴지질 않는..

오르도스 - 사막의 추억

어느 날수영장에 다녀온 우리 집 할멈이 촌로에게 이르기를 "몽골인가 몽고인가사람들 별 보러 간다하면서 같이 가자 하는데 어찌하오리까?" 촌로 내심 기뻐하면서도 짐짓 옷매무새 가다듬고 정색하여 고하기를 일찍이작고하신 엄허니께옵서 유훈삼아 우리에게 이르시기를'젊어서 밤잠 제대로 못 자가면서 돈 버느라 고생했으니 이제는 맛있는 거 골라 사 먹어 가며 못 댕긴 구경이나 댕기면서 살아라.' 돌아가셨다 하여 엄허니의 유훈을 따르지 아니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도리가 아니오이다.비장한 각오로 결의를 다지다가 문득 1970년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오란씨 광고노래를 끄집어 내어 마무리한다. "하늘에서 별을따라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손에 담아드려요~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오 오란씨~ 오란씨 파인!..

내가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이유

퇴직한 지 어언 7년이다.뒤돌아 보면 잠깐이고 짚어보면 긴 세월이다.오랜 직장 생활의 끝은 1년간의 자회사 근무였다.본사이다 보니 젊은 직원들이 대부분이었고 부서가 달라도 서로 교육하고 엘리베이터나 복도에서 만나면 지위고하를 떠나 반갑게 인사 나누고 지내는 참 분위기 좋은 회사였다. 다만 한 가지 아쉽고 안타까운 점은 모회사 직원들과 견주어 업무수행 능력이 조금도 다를 바 없음에도 보수에서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게다가 알게 모르게 모회사의 간섭이나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가 좋종 있었서 그것을 견뎌내는 직원들이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나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그들을 격려했다.여러분의 능력은 어디 내놔도 특줄 하며 주눅 들지 말고 회사가 내 것이다라는 자부심으로 일하라. 와중에 젊은 여직원 하나가 특별하..

어느 소년 이야기

이른 저녁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산책길에 나섰다.큰 길 네 거리를 지나 호수 공원으로 가는 길공터에서 하이틴 몇몇이 야구 글러브 갖고 캐치볼 하다가가까이 있던 소년 하나가 지나가는 우리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어 그래! 그런데 너 정말 미남이구나!"앞서 가던 아내가 소년을 돌아보며 덕담 삼아 건네는데 덤 얹듯 나도 거들었다.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 아버지가 미남이니까 아들이 미남이지!" "우리 아버지 못생겼는데요!"망설임 없이 내뱉듯이 실토하듯이 두 눈 똑바로 뜨고 말한다. "그럼 엄마가 미인가보다 엄마를 닮아서 그런가?" "네! 우리 엄마는 잘 생기셨어요" 정직도 이런 정직이 없다.팩트라 할지라도 맛이랄지 멋이랄지 무엇인가 한참 부족한 것 같은데 콕 집어 얘기할 아무것이 없..

고의령은 가슴에 품고 망산은 기억속에 다졌다.

농경시대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혹독한 노동을 감내하면서 사시는 부모님 도와 방과 후 소를 뜯기거나 어린 손에 호미 들고 고랑 따라 밭고 매었다. 산업화 시대도시로 몰려가 서툰 숙련공을 거쳐 전문가가 되었다.그렇게 만난 선남선녀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길렀다.부모에 대한 존재는 늘 엄격하고 지엄했으며 형제간에 선의의 경쟁 속에 살았다.더러는 대학에 진학해 와이셔츠에 넥타이 메고 일하는 직장을 얻어 부모를 감동케 하기도 했다.그러나 대부분은 불루컬러로 남아 꼬부랑 노인이 되셨던 부모님에겐 늘 안쓰럽고 미안한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름 열심히 살아 내집 마련하고 자식들 내가 못 다닌 대학 가르쳤다는 자부심도 대단하다.다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해외여행도 더러 다니고 내차 몰고 이제는 부모님 계시지 않..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

두 아이가 초등학교 재학 시절농가주택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두 아들과 더불어 밥상에 둘러앉아 밥 먹는 시간 작은 아들이 말했다."엄마 엄마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이 자기네 집이 부자인 사람 손들어 보라 해서 손을 들었는데 둘러보니 손든 애들이 나밖에 없었어. 근데 우리 부자 맞아?" 어찌 답을 해야 하나?어른 셋이서 선뜻 답을 못하고 있는데 옆에서 듣던 큰아들이 말했다." 그냥 보통으로 사능 겨" 6공화국이 모토로 내걸었던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는이미 이때 초등생 아들에까지 이렇게 시작되고 완성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