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달살이 6

제주에서 한 달(11) - 동쪽 끝 성산

언제 어디로 갈 것인가는 정한 바 없으나 제주에 머물 날도 그리 많지 않으니 동쪽 끝까지는 가봐야겠다는 조바심이 한몫 했을 터이다. 수모루, 고래왓, 여의물, 광대왓, 반찬모르, 속도르, 어두모르, 뒤통모루 등 어원을 짐작키 어려운 정류장을 몇 개고 지나 가까스로 도착한 성산일출봉 오래전 이곳을 찾았을 때 가랑비 내리는 날 우의입고 정상에 올랐으나 구름이 풍경을 가려버렸던 곳 중국인민들의 경상도 토속어를 능가하는 억양과 무시무시한 데시벨로 귀청 나갈까 걱정했던 곳 지금은 저렇게 조용한 아침 인적마저 뜸하니 자연 사위가 조용하다. 경사가 곡하기에 계단에 의지해 천천히 올라도 숨이 가빠오는데 괴물이란 우리말보다는 몬스터라는 외래어로 표현하는것이 낫겠다 싶게 괴물은 괴물이로되 무섭지 않은, 마치 대개의 사찰 ..

제주에서 한 달(10)- 살았거나 죽었거나 모슬봉

11코스를 이어서 걸어야겠기에 버스타고 가다가 대정여고 앞에서 내렸다. 바닷가 파도소리 들을 만큼 들었고 아기자기한 항구의 모습 볼만큼 봤다는 생각에다가 내륙의 작은 오름이나 평원의 들 판 길 걷는 재미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길 잘했고 올레길에 정상적으로 진입했다는 반가운 표식을 확인하고 안도하면서 방향잡고 걸었다. 모슬봉 오르는 길 양쪽으로 눈에 띄기 시작하는 무덤들 밭머리에, 심지어는 밭 가운데 흔하게 눈에 띄는 무덤들을 보면서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황천이라는 말도 있거니 와 이쯤되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이다. 한편으로, 나름 좁은 땅에 평생 밭 일구며 살아가다 일 끝내고 누울 자리마저 밭을 떠나지 못하는 제주의 옹색한 땅 때문일까? 그런데 모슬봉을 오를수록 눈에 띄는 무덤..

제주에서 한 달(6) - 걸어서 외돌개까지

약천사 다람쥐 쳇바퀴 돌듯 세 바퀴 반을 헤매다 좁은 문으로 빠져나오니 세상은 넓다. 곳곳에 비닐하우스가 눈에 띈다. 따뜻한 남쪽지방에도 더 따뜻함이 필요했을까? 보다 더 일찍, 혹은 보다 더 많이 거두기 위한 사람들의 욕망은 트랙터와 함께 멈춰 녹슬어감에도 녹색 식물의 생명유지 욕망은 전기계량기함까지 채워졌다. 길은 결국 약천사를 거쳐 다시금 바닷가로 나 있었고 이즈음에서 7코스로 접어들었다. 선교사의 집이라 간판이 붙었다. 회색빛 시멘트만 어찌하면 천사의 집으로 바꾸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앙증맞은 포구에 언덕위의 집은 작은 왕국으로 보였다. 다가가 들여다보기엔 사위가 너무 조용해 지나쳐 가기로 했다. 차타고 다니지 말고 천천히 걸으면서 즐겁게 놀다가라함에도 그리하는 사람들이 그리하지 않는 사람..

제주에서 한 달(5)- 뭔이 중헌디?

숙소에서 야트막한 내리막길 따라 육백 미터쯤 내려오면 중문 관광단지다. 올레 8코스를 접할 수 있는 곳이기에 맵을 확인하며 성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비밀의 문같이 좁은 입구를 지나자 숨겨놓은 듯 한 풍광이 들어온다. 시작이 좋다. 느낌이 좋으니 발걸음이 가볍다. 신나서 걷다보니 자전거 타고 왔던 그 길이다. 올레길은 바닷가로 난 것이 아닌가? 맵을 확인해보니 경로를 이탈했다. . 올레길 곳곳에는 저렇게 홍,청색의 화살표 표식과 리본이 걸려있다. 시계방향으로 돌면 청색 리본과 화살표를 반 시계 방향이면 오렌지색 리본과 화살표를 따라 가면된다. 잠깐 한눈파는 사이 지나치기 일쑤였고 맵을 확인해 가며 되돌아오면 영낙없이 저런 표식을 못보고 지나친 것이다. 적응이 되자 쉽게 눈에 띄고 내가 제 길로 제대로 ..

제주에서 한 달-걷기 위해 날아가다.

"나 제주에 다녀오면 안 될까"" 느닷없는 내 물음에 "그렇게 하슈!" 아내는 아주 쉽게 허락(?)했다. 어차피 말려도 듣지 않을 것을 알기때문이라 했다. 그렇게 제주에 왔다. 지난 9월 29일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지만 가난한 백수에게 저렴하면서도 썩 괜찮은 숙소가 좋은 인연으로 내게 연결되었다. 올 사월이었다. 자전거로 제주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작정하고 섬에 왔었다. "샵"에서 빌린 자전거로 2박 3일 240여km를 씩씩하게 돌았다. 둘쨋날 남원쯤이었을 게다.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괜찮다싶어 자전거를 멈추고 지나쳐 온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뷰파인더에 배낭매고 걸어오는 거한이 눈에 띄었다. 셔터를 누르고 가던 길 가기에는 그 "거한"이 내게 너무 가까이 다가..

제주- 그 그리움에 대하여

안녕 제주! 나는 내일 뭍으로 간다, 가서는 바람 따라 파도가 하얗게 거품 물며 아무리 “때리고 부수고 무너뜨려도” “임처럼 꿈쩍도 않던” 현무암처럼 까맣게 잊고 살다가 불현듯 아직도 거기 바람부는지 감자꽃 하얗게 핀 밭고랑 따라 김 매던 할망들 옷 걸린 밭둑에 혼자 서 있던 나무 더불어 그대로 강녕하신지 “임처럼 꿈쩍도 않던” 현무암처럼 까맣게 잊고 살다가 다 올라선 영실 오르막 고사목 되어 장승처럼 서 있던 구상나무 아직 거기 그대로 벗은 채로 서 있는지 “임처럼 꿈쩍도 않던” 현무암처럼 까맣게 잊고 살다가 월령삼거리 버스 세워 오르던 저지오름 묘지 돌담에 노랗게 피어나던 키 작은 그 꽃, 아직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지 바람 따라 파도가 하얗게 거품 물며 아무리 “때리고 부수고 무너뜨려도” “임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