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제주에서 한 달(6) - 걸어서 외돌개까지

조강옹 2022. 1. 5. 09:32

 

 

약천사

 

다람쥐 쳇바퀴 돌듯 세 바퀴 반을 헤매다 좁은 문으로 빠져나오니 세상은 넓다.

 

곳곳에 비닐하우스가 눈에 띈다.

 

따뜻한 남쪽지방에도 더 따뜻함이 필요했을까?

 

보다 더 일찍, 혹은 보다 더 많이 거두기 위한 사람들의 욕망은 트랙터와 함께 멈춰 녹슬어감에도

 

녹색 식물의 생명유지 욕망은 전기계량기함까지 채워졌다.

 

 

길은 결국 약천사를 거쳐 다시금 바닷가로 나 있었고 이즈음에서 7코스로 접어들었다.

 

선교사의 집이라 간판이 붙었다.

 

회색빛 시멘트만 어찌하면 천사의 집으로 바꾸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앙증맞은 포구에 언덕위의 집은

 

작은 왕국으로 보였다.

 

다가가 들여다보기엔 사위가 너무 조용해 지나쳐 가기로 했다.

 

 

차타고 다니지 말고 천천히 걸으면서 즐겁게 놀다가라함에도 그리하는 사람들이 그리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나쳐간다.

 

다리는 편하되 눈이 빈곤한 사람들과 다리는 곤하되 눈이 풍족한 사람들 간의 극명한 대비다.

 

이 부분에 대한 나의 선택은 당연 우파다.

 

 

 

강정마을

 

사회적 갈등의 대표적 사례로 기억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선택을 강요당한다.

 

대부분 이거냐 저거냐 양자택일을 강요받는다.

 

혹간 이도 저도 아닌 것을 선택하려하면 우유부단, 결정 장애, 어정쩡이란 비난성 수사가 따라붙는다.

 

제주에 해군기지를 왜 건설해야하는가?

 

그건 그렇다 치고 왜 하필 강정인가?

 

강정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는?

 

이보다 더 나은 다른 대안은 있는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상대를 설득하거나 상대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과정을 통해서 서로가 양보하고 양보 받거나 혹은 보

 

찾기처럼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대안을 발견하거나 이 지루한 과정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 혹은 당사자들끼리의 존중과 신뢰는 바람에 나부끼고 찢어진 플래카드처럼 삭아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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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환에 도착했다.

 

올 봄

 

자전거 타고 왔을 때 저 여인에 홀려서 카메라 뷰파인더에 담고자 설쳐대다 양쪽 정강이에 큰 부상을 입었었다.

 

자전거 길과 겹치는 지점에서 오랜만의 해후에 반가움이 앞선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던 영화의 한 장면에 생각이 닿아서였을까?

 

외계인이든, 용왕님이든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새겨진 듯한 느낌

 

가끔씩, 곳곳에 이런 돌멩이는 눈에 띄었고 그럴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핏 필리핀 어느 해안의 그림과 흡사하고

 

끊어진 길 이어주는 다리는 나그네에게 늘 고마움의 대상이고 그래서 그런지 더욱 아름다워보인다.

 

대부분의 내가 건천인데 비해 풍족한 유수()

 

들려오는 물소리에 바람마저 식히지 못했던 등허리 땀이 식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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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사유지로 막힌 길

 

저 카페의 주인이 길을 내어 주었다했다.

 

내 땅이라는 이유로 어떤 이는 길을 막고 어떤 이는 길을 열어준다.

 

덕분에 형성된 미로 같은 길은 고마움과 서운함이 겹치는 묘한 지점이다.

 

외돌개

 

이름에 외로움이 배어있는 그래서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그림 하나

 

접근성도 좋고 길이 아름답기에 패키지 여행객들도 맛보기로 걷기 위해 모여들어

 

오롯이 사진에 담기도 어려웠던 곳인데 벽안의 가족들만이 단출하게 바라보고 있다.

 

자연을 훼손시키는 것이 사람인데 그 자연에 사람이 빠지면 허전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는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서로 어울려 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대문 앞이 황천길이라고 황홀경에서 몇 걸음 옮기면 금방 속세다.

 

걸을 만큼 걸었다.

 

내심 흡족한 마음으로 숙소로 가는 버스 조회해서 돌아오는 길

 

집 가까이 왔을 때 마트가 눈에 띄었다.

 

서둘러 내려 감자를 비롯한 식자재를 구입하고 다시 환승하여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오늘 하루 일과 중 자전거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온전히 버스와 다리콥터(도보)를 제외한 다른 교통수단을 이동수단으로 삼지 않겠다.

 

선서하듯 다짐하면서 내일도 오늘 같게 하소서!

 

그리 되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에 자전거를 중고장터에 내놓았다.

 

 

선착순이랄지 인연이랄지

 

시오리 떨어진 곳에 한 달간 머물 작정으로 둥지를 튼 사람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타이어에서 아직 고무 냄새나는 자전거를 나름 흡족하면서 몇 번이고 고맙다 인사하고 돌아갔다.

 

살림이 궁해 식구 하나 덜자고 예쁜 딸 건넛마을 부자영감 후처로 보내는 조선아비의 심정으로

 

그가 아니, 자전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