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5

제주에서 한 달(12)- 저지오름 가는 길

서쪽으로 방향잡고 버스타고 가다가 월령삼거리에서 내렸다. 딴엔 저지오름을 향하여 반시계방향으로 돌아보겠다는 심사였다. 밭에서 일하는 아낙 하나 눈에 들어온다. 친정에 다니러 온 “시집간 딸”일까? 시댁에 댕기러 온 며느리 일까? 지루하게 냇가 따라 올라오다 그림이 달라지니 별것에 다 관심이 간다. 스스로 “메누리”라 짐작했다. 친정에 온 딸이라면 당연 친정어머니 “몸빼”라도 걸쳐 입고 밭에 나왔을 터 등산복 차림에 “몸 붙여” 일하는 폼새가 아니라 딸은 아닐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제주 곳곳이 절경이고 비경임엔 더 말해 무엇하랴만 저렇게 고랑따라 일구고 가꾸는 사람의 흔적이 비로소 그 절경에 비경의 완성도를 높인다. 정말 많이 걸었다. 그보다는 생각했던것 보다 저지오름이 멀리 있었던 것이다. 200여..

이제는 말해두 될터인데........|

"총각요, 총각있니껴?" 아침 퇴근길 걸친 술이 아직 깨지 않았었나부다. 오후 두어시쯤 됐었던가? 부르는 소리에 방문열구 내다보니 그 아주머니다. "와 안오능교 약속하구 서리" ....... "조카딸 와 있으니 와서 한번 보소 술도 한잔하고...." 꼭 17년 전의 일이다. 지금의 처삼촌 소개로 조강을 처음 만난 것이. 고교시절부터 오랫동안 사귀어 왔던 여자가 부모님의 뜻을 따르겠노라며 내게 작별을 고하고 고시공부 한다는 남자에게 시집을 간 그 이듬해 정월이었다 처삼촌 집에 세 들어가는 직장 동료의 이삿짐을 날라주고 간단히 술한잔 먹는 자리에 조카딸 있으니 선 한번 보겠냐구해서.... 술좌석이었고 "갑순이가 시집을 가버리는 바람에 화가 나서 장가를 간 갑돌이"의 심정으로 그러마 하고 대답했고, 그러면 요..

안동산 삼베적삼

삼년간의 고행을 끝으로 아카시아꽃 활짝 핀 부대 진입로를 걸어 나온 길은 "욕봤다" 는 선친의 말씀과 더불어 음봉산 자락의 이백평 남짓 두어 떼기 콩밭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둑따라 호밋자루 놀리다 더러는 콩줄기도 잘라내고 이따금 호밋날에 채이는 자갈을 산아래 골짜기로 팔매질 하다가 게으른 오뉴월 해가 뉘엿 거릴 즈음 더 굽어져 보이던 선친의 등뒤로 산을 내려오기를 보름 남짓..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날아온 복직 통보서는 과거 어느 순간에 멎어버린 기억을 되살려 건전지 갈아 낀 시계가 다시 돌아가듯 콩밭 메는 것보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그 생활로 서서히 묻혀 가고 있었지 싶다 마냥 곁에 있을 것 같던 여인이 여름 우박 내리듯 홀연히 떠나가더니 그해 시월인가 동짓달인가 다른 사람의 여자가 되었다고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