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제주에서 한 달(12)- 저지오름 가는 길

조강옹 2022. 1. 6. 04:10

서쪽으로 방향잡고 버스타고 가다가 월령삼거리에서 내렸다.

 

딴엔 저지오름을 향하여 반시계방향으로 돌아보겠다는 심사였다.

 

밭에서 일하는 아낙 하나 눈에 들어온다.

 

친정에 다니러 온 시집간 딸일까?

 

시댁에 댕기러 온 며느리 일까?

 

지루하게 냇가 따라 올라오다 그림이 달라지니 별것에 다 관심이 간다.

 

스스로 메누리라 짐작했다.

 

친정에 온 딸이라면 당연 친정어머니 몸빼라도 걸쳐 입고 밭에 나왔을 터

 

등산복 차림에 몸 붙여일하는 폼새가 아니라 딸은 아닐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제주 곳곳이 절경이고 비경임엔 더 말해 무엇하랴만

 

저렇게 고랑따라 일구고 가꾸는 사람의 흔적이 비로소 그 절경에 비경의 완성도를 높인다.

 

 

정말 많이 걸었다.

 

그보다는 생각했던것 보다 저지오름이 멀리 있었던 것이다.

 

 

200여 미터 관점을 높이면 이런 그림이 나온다.

 

웬 젊은 아낙이 아해 들쳐 업고 저렇게 서있다.

 

낯선 풍경에 웬일로 예까지 올라왔나 물어볼까하다가 자칫 별것 다 물어보는 싱거운 노인네 취급 받을까

 

저어되어 말았는데 지금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궁금할 땐 망설이지 말고 묻자!

 

 

 

"잠깐 일어나야 되겄어유"

 

지난 주

 

가까이 사시는 고모님 댁에 안부 여쭙고자 아내와 같이 들렀었다.

 

어둑해진 저녁

 

청국장 끓여 저녁을 같이 먹는 자리

 

식사를 끝낸 고모부께서 하시는 말씀이었다.

 

고모님이 일어나시어 숭늉을 가져올 때까지 그 말씀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저 양주분께서는 무어라 할까?

 

자꾸만 쓸데없는 궁금증이 일어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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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바람이 불거나 혹은 그렇지 않거나

 

 

애타게 그리워하거나 금방이라도 안보면 죽을 것만 같은 그런 열정이 없음은

우리가 나이를 먹고 세상사는 이치를 그 만큼 깨달아서 이리라

너는 너대로 네가 서있는 거기에서 하늘을 보며 자라고

나는 나대로 내가 서있는 여기에서 하늘을 보며 자라고

마주보고 서로 고목이 되어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아주 다행스럽게도 때로 바람이라도 불면

서로의 가지가 부딪히며 손이라도 잡을 수 있는

그런 두 그루 나무가 되어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깊은 못이 있다했다.

그 심연에 대한 참담한 이해

그 참담함이란 다름 아닌

너도 한 그루의 나무로서 나 또한 한 그루의 나무로서

평생을 마주보며 살 수 있을지언정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그 깨달음은 아닐는지

 

'이해'에 아파하면서, 수많은 생각의 가지들을 갈라내다 가도

스스로 다가갈 수 없는 절망에 가끔은 잎새마저 떨어뜨려 내어도 보고

처연히 하늘만 쳐다보며 외롭게 늙어 갈지라도 우리는 나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금 싹을 띄우고 가지를 갈라내고 매미를 옆구리에 붙여도 보면서

볕이라도 있으면 그늘이라도 그려 볼 일이다.

바람이 불거나 혹은 그렇지 않거나…….

 

2001/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