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제주에서 한 달(10)- 살았거나 죽었거나 모슬봉

조강옹 2022. 1. 6. 03:51

 

11코스를 이어서 걸어야겠기에 버스타고 가다가 대정여고 앞에서 내렸다.

 

바닷가 파도소리 들을 만큼 들었고 아기자기한 항구의 모습 볼만큼 봤다는 생각에다가 내륙의 작은 오름이나 평원의 들

 

판 길 걷는 재미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길 잘했고 올레길에 정상적으로 진입했다는 반가운 표식을 확인하고 안도하면서 방향잡고 걸었다.

 

모슬봉 오르는 길 양쪽으로 눈에 띄기 시작하는 무덤들

 

밭머리에, 심지어는 밭 가운데 흔하게 눈에 띄는 무덤들을 보면서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황천이라는 말도 있거니

 

와 이쯤되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이다.

 

한편으로,

 

나름 좁은 땅에 평생 밭 일구며 살아가다 일 끝내고 누울 자리마저 밭을 떠나지 못하는 제주의 옹색한 땅 때문일까?

 

그런데 모슬봉을 오를수록 눈에 띄는 무덤들은 제법 모양 갖추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급아파트 촌을 연상케 하였다.

 

 

 

누구나 죽으면 가야하는 저 세상

 

간 사람은 있어도 돌아 온 사람은 없기에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거기에도 아침 햇살이 눈부시고 가끔씩 바람이 지나며 작은 꽃잎까지도 흔들거나 할지라도

 

두툼한 흙이불 덮고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은 채 깊은 잠자는 세상 - 영원한 안식일거라고....

 

사람 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의 표식인양 느껴지게끔 좁은 길을 따라 내려오면 다시금 너른 들판 -산 사람이 거대한 그림을 그리듯 아름답게 채색된 풍경화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다리가 피곤했기에 쉴 자리 찾아 주저앉은 자리

 

앉고 보니 눈앞에 펼쳐지는 그림이 아름다워 마시던 물병 내려놓고 담은 사진

 

몇몇이 고랑 따라 호미질 하는 모습은 이 넓고 아름다운 그림 한복 완성도를 높이는 붓질에 다름아니다.

 

제주에서 한 달

 

누구는 부럽다고 하고 누구는 웬 청승이냐 한다.

 

먹고 자고 이후의 걱정을 덜어내는 일까지가 열 발짝 안에 이루어지는 작지만 옹색하지 않은 숙소

 

꼭 필요한 양 만큼 밥을 짓고 반찬을 챙겨먹는 일은 수도승들의 공양에 비해 더할 것도 덜할것도 없었다.

 

오늘 걸었던 길 복기하듯 되새기다 혼자 미소 짓기도 하고 노트북에 찍어놓은 사진 뒤적이기도 하는 것도 편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운이 닿으면 프로야구 중계도 본다.

 

오래전부터 내가 응원하는 팀은 우승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프로정신 보다는 일찌감치 올림픽 정신으로 품격 있는 야구를 하기로 작정한것이 아닌가

 

싶게 그리 승리에 집착하지 않는다.

 

덕분에 모처럼의 일 승에 크게 기뻐하고 잦은 패배에 그다지 실망하지 않고 병가의 상사처럼 덤덤하게끔 만들었다.

 

역설적이게도 승패의 세계에서도 욕심을 내려놓으면 외려 마음 편하게 가벼운 행복을 누릴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식탐을 절제하지 못한 새는 날수 없듯이 우리 살아가는 인생여정도 꼭 필요한 것 만 갖춰놓고 가비얍게 살다가 새처럼 날아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가치이자 행복이지 굳이 필요치 않은 것들까지 욕심내어 무거운 짐져가며 살아가는 것은 풍요도 행복도 아니다

 

창문 여니 하늘에 별이 총총 이고 가로등 비추는 내리막 도로 따라 저만치 바다에는 하얀 불 밝힌 어선 몇 척 떠 있다.

 

내일은 어디로 갈거나?

 

길이 없어 못 걸을까, 마지막 쓸데없는 걱정 내려놓고 베개 높여 잠을 청하는 제주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