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보면서 부르는 노래

이제는 말해두 될터인데........|

조강옹 2019. 12. 23. 17:48

"총각요, 총각있니껴?"


아침 퇴근길 걸친 술이 아직 깨지 않았었나부다.

오후 두어시쯤 됐었던가?

부르는 소리에 방문열구 내다보니 그 아주머니다.


"와 안오능교 약속하구 서리"

.......

"조카딸 와 있으니 와서 한번 보소 술도 한잔하고...."


꼭 17년 전의 일이다.

지금의 처삼촌 소개로 조강을 처음 만난 것이.


고교시절부터 오랫동안 사귀어 왔던 여자가 부모님의 뜻을 따르겠노라며 내게 작별을 고하고 고시공부 한다는 남자에게 시집을 간 그 이듬해 정월이었다


처삼촌 집에 세 들어가는 직장 동료의 이삿짐을 날라주고 간단히 술한잔 먹는 자리에 조카딸 있으니 선 한번 보겠냐구해서....


술좌석이었고 "갑순이가 시집을 가버리는 바람에 화가 나서 장가를 간 갑돌이"의 심정으로 그러마 하고 대답했고,


그러면 요번 설에 집에 데려다 놓을 터이니 댕겨가라 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부시시 일어나 거울을 보니 아직도 토깽이 눈이다.

팔짱을 끼고 밖에 서 발을 구르는 폼이 아예 끌구 갈 작정이다.

대충 물 묻히구 옷을 갈아입을까 싶다가 그냥 쓰리빠 끌구 츄리닝 바람에 따라 나섰다.


"진짜루 왔어유?"


"그런 일을 장난으로 하요 그럼"


그래서 만났다.

명절 끝다리 안주부스러기 담아 올린 소반에 간단히 차린 술상 보아놓구 둘러앉아 세 들어 사는 직장동료 같이 어울려 술 먹으며 옆에서 바람 잡는 얘기 몇 마디 거들었던가?

수줍음 많이 타던 나는 영락없는 충청도 샌님이었다.

말은 고사하구 상대방 얼굴 한 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구 연거푸 술만 들이키구 있었지 싶다.


그 모냥이 보기에 애처로웠던지

둘이 나가 데이트 하구 오라구 등 떼밀려 나왔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내를 거슬러 둑방길을 십여분 걸었다.


"설시러 왔네베유?"

"이름이 뭐래유?"

앞서 걸으면서 내가 건넨 두마디였다.


"술한잔 하실래유 아니문 다방 가서 차 드실래유?"

시내 들어와서 물은 것이 세마디째였다.


"다방 가입시더"

두어 걸음 뒤쫒아 기어가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눈에 띄는 선술집으로 들어갔다.


"배운 것이 부뚜막 술이라 난 이런디가 맘이 편해유"


연탄불에 노가리 구어놓구 소주 한병, 사이다 한병, 오징어 두르치기 시켰었지 아메


오른 술기운 때문에 용기가 생겨 훔쳐본 옆모습

생글생글 웃어가며 이야기 하는 것이 "세상 걱정 없이 살아가는 건강한 경상도 처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구에 기신데메유?"

술기운이 오르면서 봄판에 개구리 입떨어지듯 그 한마디를 시작으루 족히 서너 시간 떠들었구 소주 하나 더 시켰었다


"나좀 봐유

이런 말씀 디리는거 어띠키 생각하실 지 모르겄네유

나두 그리키 승질 급한눔은 아닌디유

워나기 거리두 멀구 자주 만나기두 어렵구 해니께...


자주 만난다구 사람속 뒤집어 볼수두 읎는거구유...

그러니께 이 자리서 아주 결정을 했으문 좋겄유"


커진 눈으로 쳐다보는 모습을 정면으로 대하니 짙은 눈섶밑에 눈동자가 참 맑다는 생각을 했었지 싶다.


'지가 맘에 있으문 이 쐬주 한잔 다 드세유, 그리구 맘에 별루다 싶으문 고개 돌려 마시는 척 하문서 바닥에다 그냥 버리세유 그럼 지가 그런갑다 할티니께"


그때 그 여자 소주 석잔을 거푸 받아 마셨었다.


고개 돌린 적도 없구 바닥에 버린 적은 더더구나다.


조강 - 지금 나하구 같은방 쓰는 여자가 그 여잔디 -


지금까지두 우긴다

곧죽어두 바닥에다 버렸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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