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보면서 부르는 노래

3309호실에서

조강옹 2019. 12. 23. 17:41

 

침 맞고서 이십 여분 지나면 병실이 떠나가게 울어 젖힌다고 했다.

고혈압에 의한 뇌출혈-

현실과, 우리가 넘볼 수 없는 세상을 넘나들면서...

거기서 지난 세월의 아픔을 문득 문득 만나는 모양이다.


친구의 어머니이자 나를 서방님이라 깍듯이 부르는 여인

..............


꽃다운 나이..

수줍음만 가득 안고 운명처럼 찾아든 고래등같이 커다란 시댁

그 촘촘히 박힌 기왓장을 휘어져라 등지고 있는 서까래 모양으로


그 시대 누구나 그러했던 것 보다 더 혹독한 시집살이를 견디어낼 때

베름빡같이 등 기대주어야 할 남편은 장터에 딴살림 차렸었다.


못자리 판이라 불리는 집성촌

육촌만 넘어가면 이름도 모른다는 그 동네


집안도, 같은 종파도 아닌, 게다가 외아들의 친구인 나를

그 아들이 보는 앞에서도 되련님이라 부르던 그 여인은


객지에서 돌아와 논배미 둘러보고 오다 마주친 그때부터

그 '되련님'을 서방님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고


어렵게 지은 하우스 농사, 수박 갖다 먹으라고

못 주어서 안달하며 떠 안긴 그 수박 들고서 올적에


신작로 접어들며 돌아본 그 여인은 잠시 허리 펴고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던 것이 지난여름이었다.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그 아픔 혼자 삭혀가면서

뒤늦게 찾아온 본디 행복을 누리기엔 너무 지쳐 있었던지


시댁 웃어른 다들 돌아가시고 늙은 남편 뒤늦게 곁으로 왔건만

홀연 쓰러져 병원에 이렇게 지내는 것이 달포가 되었다고 했다.


땀흘려 키워냈던 그 수박덩이보다 작아 보이는 체신에

힘에 겨워 가는눈 뜨고 쳐다보건만 이 '서방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저며오는 '여자의 일생' 그 노랫말보다

몇 곱절 가슴아린 사연을 남몰래 엮으면서 살아온 칠십 년 세월


'영원한 안식' 마저도 그녀에겐 호사일까

금당 모퉁이 돌아 나오면서 바라 본 그 허한 들판에

고랑마다 쉬이 녹지를 못하는 눈처럼


떠나지도 머물지도 못하면서

아직도 이 세상에 뿌려야 할 눈물이 남아있는지

패인 눈, 깊은 주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베겟잎을 적시고 있었다.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