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보면서 부르는 노래

해질녘 안동에서

조강옹 2019. 12. 23. 18:22

"지금으로부터 팔년전 내가 식도암 판정을 받고 수술대에 오를 때

너그 어마이는 더도 말고 칠십까지만 살아주면 원이 없겠다고 했었다."


안마당에 멧방석 깔아놓은 자리

칠순 맞으신 장인께서는 다섯 남매와 그 배우자들, 그리고 그들의 2세를 죄다 불러 앉히고 뜨랑에 걸터 앉으셔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 팔년이 지난 오늘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찾아준 자식들에게 미안하구 고맙다. 칠십을 살아낸 내가 얼마를 더 살지는 나도 모른다. 허나 내가 세상 하직하고 난 이후에라도 너희 어마이 저버리지 말고 ...... 동기간에 서로 위해가며......."


상위엔 갖은 음식과 과일, 술병이 텃밭에 선 옥수수나무처럼 즐비하게 서있다.

결혼당시 중학생이던 막내처남 내게 술 따라주며 담배 하나 달라 하고....


이런 저런 말씀 끝에

죽마고우로 형제같이 지내시던 앞집 아저씨가 죽었다 했다.

술을 좋아하고 내성적이며 사람이 퍽이나 순해서 마주쳐 인사하면 겸연쩍은 웃음으로 고개숙이던 그 아저씨가 죽었다고 했다.


고추밭에 소독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했다.

시내 농약방에 약 한병 사들고 돌아오는 길

주유소 옆 익히 아는 얼굴들과 마주친 술자리에 끼어들었다고 했다.

느지막히 집에 돌아왔을 때

다섯 살 많은 부인의 견디기 어려운 질책에

고추밭에 약 뿌리다가 그 약이 고추벌레만 죽이는 단순한 농약이 아니라

고달픈 세상과의 연을 끊을 수 있는 효험이 있음을 알았던 모양이다.

매미 껍질 벗는다는 해질녘에 그렇게 갔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엔 안개가 앞산을 가릴 정도로 짙게 깔려있었다.

아침 초대 받은 동네 사람들 하나 둘 대문안으로 들어서고

유심히 쳐다봐도 그 다섯 살 많은 부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부산속에서 설거지 끝내고

모였던 자식들 짝지어 하나 둘 제자리 찾아 떠나는 시간

예견했던 것 처럼 인사는 한결같았다.


"어이 하든 어른 잘 모시고 잘 살게이"


작년 요맘 때

웃동네 아랫동네 다 합쳐

나 처럼 암 걸린 사람들 대여섯 명, 그들 다 앞세우고

나만 멀쩡히 이렇게 살아있다시며 흡족해하시던 어깨에 힘이 빠져보였다.


동네를 벗어나 다리를 건너 좌회전하면

동네를 원심 삼아 실 매달은 추 처럼 원을 그리며 돌다가

끊어진 실에 추 날아가 듯 동네를 벗어난다.


강옆으로 미류나무 줄줄이 늘어선 도로 천천히 가속 붙일 때

아내는 창문을 열었다.

행여 아직 마당에 서 계실까?

고개돌려 바라본 마을

그가 살았던 슬라브집이 아무일 없었던 듯이 앉아있고

아직 거기 계시건 만, 손 흔드는 우리 알아보지 못한다.


기다렸다는 듯 매미소리 요란하게 들어오는 것이

먼길 떠난 친구 어쩌면 못다 한 얘기 하고나 간다고

다시 돌아와 저리 울어젖히는 것은 아닌가?


"앞에 좀 보고 가소"

아내의 지청구에 가까스로 핸들 바로잡아 가면서도

귓전에 또렷이 들려오는 것은 그 매미 소리였다.


..............



조강. 

[2001년7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