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팔년전 내가 식도암 판정을 받고 수술대에 오를 때
너그 어마이는 더도 말고 칠십까지만 살아주면 원이 없겠다고 했었다."
안마당에 멧방석 깔아놓은 자리
칠순 맞으신 장인께서는 다섯 남매와 그 배우자들, 그리고 그들의 2세를 죄다 불러 앉히고 뜨랑에 걸터 앉으셔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 팔년이 지난 오늘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찾아준 자식들에게 미안하구 고맙다. 칠십을 살아낸 내가 얼마를 더 살지는 나도 모른다. 허나 내가 세상 하직하고 난 이후에라도 너희 어마이 저버리지 말고 ...... 동기간에 서로 위해가며......."
상위엔 갖은 음식과 과일, 술병이 텃밭에 선 옥수수나무처럼 즐비하게 서있다.
결혼당시 중학생이던 막내처남 내게 술 따라주며 담배 하나 달라 하고....
이런 저런 말씀 끝에
죽마고우로 형제같이 지내시던 앞집 아저씨가 죽었다 했다.
술을 좋아하고 내성적이며 사람이 퍽이나 순해서 마주쳐 인사하면 겸연쩍은 웃음으로 고개숙이던 그 아저씨가 죽었다고 했다.
고추밭에 소독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했다.
시내 농약방에 약 한병 사들고 돌아오는 길
주유소 옆 익히 아는 얼굴들과 마주친 술자리에 끼어들었다고 했다.
느지막히 집에 돌아왔을 때
다섯 살 많은 부인의 견디기 어려운 질책에
고추밭에 약 뿌리다가 그 약이 고추벌레만 죽이는 단순한 농약이 아니라
고달픈 세상과의 연을 끊을 수 있는 효험이 있음을 알았던 모양이다.
매미 껍질 벗는다는 해질녘에 그렇게 갔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엔 안개가 앞산을 가릴 정도로 짙게 깔려있었다.
아침 초대 받은 동네 사람들 하나 둘 대문안으로 들어서고
유심히 쳐다봐도 그 다섯 살 많은 부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부산속에서 설거지 끝내고
모였던 자식들 짝지어 하나 둘 제자리 찾아 떠나는 시간
예견했던 것 처럼 인사는 한결같았다.
"어이 하든 어른 잘 모시고 잘 살게이"
작년 요맘 때
웃동네 아랫동네 다 합쳐
나 처럼 암 걸린 사람들 대여섯 명, 그들 다 앞세우고
나만 멀쩡히 이렇게 살아있다시며 흡족해하시던 어깨에 힘이 빠져보였다.
동네를 벗어나 다리를 건너 좌회전하면
동네를 원심 삼아 실 매달은 추 처럼 원을 그리며 돌다가
끊어진 실에 추 날아가 듯 동네를 벗어난다.
강옆으로 미류나무 줄줄이 늘어선 도로 천천히 가속 붙일 때
아내는 창문을 열었다.
행여 아직 마당에 서 계실까?
고개돌려 바라본 마을
그가 살았던 슬라브집이 아무일 없었던 듯이 앉아있고
아직 거기 계시건 만, 손 흔드는 우리 알아보지 못한다.
기다렸다는 듯 매미소리 요란하게 들어오는 것이
먼길 떠난 친구 어쩌면 못다 한 얘기 하고나 간다고
다시 돌아와 저리 울어젖히는 것은 아닌가?
"앞에 좀 보고 가소"
아내의 지청구에 가까스로 핸들 바로잡아 가면서도
귓전에 또렷이 들려오는 것은 그 매미 소리였다.
..............
[2001년7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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