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보면서 부르는 노래

아부지 아부지 우리 아부지

조강옹 2019. 12. 23. 18:30

음력으로 시월 초이레

돌아가신 울아부지 기일이다.


살아 계셨더라면 올해 일흔 여덟....

지금 사는 집이랑 논 아홉 마지기 남겨놓으시구 서둘러 가셨다.


추수 끝난 들판..

나는 꼭 한번 벼 베인 논에 왔다간다.


고속도로 옆이라 이미 70년대 경지정리가 끝나 바둑판 같은 논

아부진 비료를 골고루 뿌리기 위해 논둑을 열등분으로 나누어 말뚝 박아 표해 놓으셨다.


가신지 15년

그 말뚝은 지나온 세월만큼 사그라져 이제 네 개만 겨우 몰골을 유지하고 있다.

봄 여름 지나오면서 논두렁 풀 깎을 때도 행여 말뚝 상할라 조심조심

그때마다 당신 생각에 콧등 시려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짓곤 했었다.


영주에서의 신혼시절

손주보러 오셨다가 위장병이 심하다는 엄니 말씀에

모시고 간 병원...

결과는 위암 말기라는 진단이었다.


서둘러 남은 여생 편히 모시겠다고

아내 등에 돐도 안된 큰 애 들쳐업혀

허둥 지둥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그해 팔월이었다.


...................


끝없는 고통과의 싸움이 힘에 부치셨을까?

지켜보는 자식들의 어려움을 먼저 생각하셨으리라

새벽에 연락 받고 부랴부랴 조퇴하고 갔을 때

아부지는 이미 눈을 감으신 뒤였다.


"둘째만 대학 못시킨 것이 맘에 걸린다" 하시더라

엄니말씀에 더 섧게 울었었다.


...........


어릴 적..

못자리 피사리 하시면서

허리 펴며 얼굴 찡그릴 적마다

"공부 열심히 하면 이런 일 안해두 된다.

사무실에서 펜대 잡고 편히 살 수 있단다."

......................


서마지기 가웃에 옆논 합배미 쳐 아홉 마지기 맹글었을 때

추수 끝난 논두렁에 서서 바다같이 넓어 보인다 하셨다.


"이담에 지가 돈많이 벌어 이 들녘 다 사드릴께유"


"돈 많으문 돈 지키다 죽는겨 "


미소지으시던 것이 중학교 2학년 때 였다.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라 했던가?

이 무욕의 땅에 아부지는 계시지 않는다.


발길 돌려 집으로 오는 길..


"무슨 남자가 눈물이 그리 흔하누..."

혀를 차던 아내가 노래를 한다.


.......

오랫동안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 길로


아부지.......

 

200.10.25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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