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제주에서 한 달(5)- 뭔이 중헌디?

조강옹 2022. 1. 4. 14:22

 

 

 

숙소에서 야트막한 내리막길 따라 육백 미터쯤 내려오면 중문 관광단지다.

 

올레 8코스를 접할 수 있는 곳이기에 맵을 확인하며 성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비밀의 문같이 좁은 입구를 지나자 숨겨놓은 듯 한 풍광이 들어온다.

 

시작이 좋다.

 

느낌이 좋으니 발걸음이 가볍다.

 

신나서 걷다보니 자전거 타고 왔던 그 길이다.

 

올레길은 바닷가로 난 것이 아닌가?

 

맵을 확인해보니 경로를 이탈했다.

 

.

 

올레길 곳곳에는 저렇게 홍,청색의 화살표 표식과 리본이 걸려있다.

 

시계방향으로 돌면 청색 리본과 화살표를 반 시계 방향이면 오렌지색 리본과 화살표를 따라 가면된다.

 

잠깐 한눈파는 사이 지나치기 일쑤였고 맵을 확인해 가며 되돌아오면 영낙없이 저런 표식을 못보고 지나친 것이다.

 

적응이 되자 쉽게 눈에 띄고 내가 제 길로 제대로 가고 있다 안심케하는 반가운 표식이기도 했다.

 

 

.

주상절리대

 

해안 쪽으로 담을 쌓고 입장권을 구입하여 들어가게끔 유료지역이다.

 

 

.

 제주에 오길 잘했고 이리 방향잡길 더 잘했다.

 

걸음을 옮길 적 마다 그 파도에 그 바위인데 그림이 달라진다.

 

평생을 뭍에서만 살아온 충청도 늙은이에겐 이보다 더 좋은 호사가 어디 있겠나!

 

.

 

저 모퉁이 돌아서였을 게다.

 

조용히 파도소리만 들으며 살고픈 마음에 바닷가 풍광 좋은 곳 골라 집을 지었을터인데도

 

무시로 오가는 사람들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 마다않고 길을 내준 집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에

 

인기척 없음에도 까치발로 조심스레 지난다.

 

 

 

 

내 죽어 저렇게 묻힌다면 따순 햇살 이불삼고 파도소리 자장가삼아 낮잠 즐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겠다.

 

죽음조차 길 가는 나그네의 휴식처럼 여겨지다가 가운데 솟아오른 바위섬 하나는 홀로 외로워 보인다.

 

 

 

길가 무인판매대 한 바구니 이천 냥

 

갈증 나던 차에 껍질 벗겨 하나 먹어보니 생각보다 훨 달고 맛있다.

 

나머지 배낭에 넣고 쉴 때 마다 먹었는데 마트에서 산 것보다 외려 맛있었다.

 

이정표 겸 방향 표시등은 나를 약천사로 이끌었다.

 

우선 그 규모에 놀랐고 규모에 비해 사람이 적은 것에 놀랐고 사찰 앞 연못정원의 아름다움에 입이 벌어졌다.

 

뭍의 사찰과는 달리 이국적인 분위기에 적당히 빛바랜 단청을 바라보노라니

 

언제였던가?

 

강원도 어디쯤 이름난 절에서였다.

 

대웅전 들여다 보다 부처님전 절을 올리는 사람들의 옆모습이 경건하고 간절해 보여

 

무심코 셔터를 눌렀는데 어디선가 청천벽력 같은 고함이 터져나왔다.

 

화들짝 놀라 살펴보니 안에다 의자하나 놓고 자리를 지키던 보살님이었다.

 

요는 카메라 후레쉬 빛에 단청색이 훼손되어 촬영을 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일순 모두들 나를 향한 시선이 불편하고 한편 억울하기도 해서 하고픈 말이 없진 않았지만

 

방울방울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도 있긴 하거니와 나는 객이고 저쪽은 쥔이 아닌가!

 

세월이 많이 흘렀고

 

그 보살님 아직도 거기 의자 놓고 앉아 나같이 무지한 길손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리하여 그 절에 단청 아직도 빛 고운 모습으로 참배객을 맞이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때의 그 분노 섞인 고함과 그 표정은 아직도 내 귓전에, 내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져있어

 

이후 절에 가면 딴에 내안에 욕심 거두어 달라는 마음 담아 부처님전 올리던 삼배의 종교적 예식은 생략되었다.

 

뭣이 중헌디?”

 

기억에 의존하면 필리버스라고 하는, 국회의원들의 긴말 이어가기에서 어느 의원에 의해 내게 기억된

 

이 말이 그 시간과 장소에서의 의미와는 별도로 내게는 풀어야 하되 쉬 풀리지 않는 화두가 되어버렸다.

 

그런 연유로 발은 들였으나 맘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여기 저기 서성이다 그만 가던 길 가기로했다.

 

들어 오는 길은 넓었으나 나가는 길은 숨겨놓은 듯 좁기 찾기 어려웠다.

 

경내를 세 바퀴 반을 돌고서야 비로소 찾아낸 그 길 따라 난 계속 걷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