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제주도에서 한 달(3)- 내려다 보기 위해 오른 송악산

조강옹 2022. 1. 4. 07:37

송악산 가는 길위이 낭인들

자전거 타고 송악산으로 가는 길은 봄에 산방산 쪽으로 내려오던 길을 더듬어 올라가는 길이다.

 

길도 거슬러 올라가고 시간도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풍경들과 사람들이 보인다.

 

산방산과 한라산

 

그럼에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보다 뒤돌아본 풍경이 더욱 아름답다.

 

그래서 자전거 세우고 카메라 꺼내들기 일쑤다.

 

이후 서쪽으로 걸을 때마다 불끈 솟아오르듯 봉긋한 송악산은 한라산과 더불어 어디서든 눈에 들어왔다.

 

송악산 오르막에서 뒤돌아 본 풍경

 

저 밑 정자에 자전거를 놓고 송악산을 오른다.

 

"제주에는 도둑이 없습니다."

 

안덕 창천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자전거를 어찌할까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안주인은 웃으면서 말했었다.

 

"혹여 누가 집어가지나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되돌아보면서 자전거의 안녕을 확인한다.

 

늙은 탓이다.

 

 

전망대 가는 길

 

송악산 전망대 오르는 길

 

높이가 다름에 따라, 걸음을 옮김에 따라 닮은 듯 서로 다른 풍경에 자칫 발을 헛디디기 일쑤다.

 

오른 높이에 비해 제주가 내어주는 풍경은 늘 절경이고 비경이며 풍성하기 그지없다.

 

감사할일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둘레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산방산

 

제주 올레길 곳곳의 아름다움을 필설로 어찌 풀어내겠나만 저 길만큼은 단연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의 미로 이어진 길이라 생각된다.

 

 

마라도와 가파도

 

더 오를 곳이 없어서 둘러본 풍경

 

가파도와 마라도도 훤히 내려다보인다.

 

내리막 길 내려 올 때 바람이 불었다.

 

돌이켜 보노라니

 

세상 적잖게 살았다.

 

내 아버지께서는 예순 셋에 작고하셨다.

 

세월을 가늠하기 위해 대나무 마디처럼 새겨 놓은 것이 나이라면

 

나는 내 아버지가 새겼던 나이보다 마디 하나를 더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이후 내 삶은 거저 주어진 보너스라 생각되었다.

 

 

 

 

 

.

 

자전거 타고 송악산으로 가는 길은 봄에 산방산 쪽으로 내려오던 길을 더듬어 올라가는 길이다.

 

길도 거슬러 올라가고 시간도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풍경들과 사람들이 보인다.

 

 

 

그럼에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보다 뒤돌아본 풍경이 더욱 아름답다.

 

그래서 자전거 세우고 카메라 꺼내들기 일쑤다.

 

이후 서쪽으로 걸을 때마다 불끈 솟아오르듯 봉긋한 송악산은 한라산과 더불어 어디서든 눈에 들어왔다.

 

 

 

저 밑 정자에 자전거를 놓고 송악산을 오른다.

 

"제주에는 도둑이 없습니다."

 

안덕 창천에서 하룻밤 묵기로 하고 자전거를 어찌할까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안주인은 웃으면서 말했었다.

 

"혹여 누가 집어가지나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되돌아보면서 자전거의 안녕을 확인한다.

 

늙은 탓이다.

 

 

 

송악산 전망대 오르는 길

 

높이가 다름에 따라, 걸음을 옮김에 따라 닮은 듯 서로 다른 풍경에 자칫 발을 헛디디기 일쑤다.

 

오른 높이에 비해 제주가 내어주는 풍경은 늘 절경이고 비경이며 풍성하기 그지없다.

 

감사할일이다.

 

 

 

 

제주 올레길 곳곳의 아름다움을 필설로 어찌 풀어내겠나만 저 길만큼은 단연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의 미로 이어진 길이라 생각된다.

 

 

더 오를 곳이 없어서 둘러본 풍경

 

가파도와 마라도도 훤히 내려다보인다.

 

내리막 길 내려 올 때 바람이 불었다.

 

돌이켜 보노라니

 

세상 적잖게 살았다.

 

내 아버지께서는 예순 셋에 작고하셨다.

 

세월을 가늠하기 위해 대나무 마디처럼 새겨 놓은 것이 나이라면

 

나는 내 아버지가 새겼던 나이보다 마디 하나를 더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이후 내 삶은 거저 주어진 보너스라 생각되었다.

 

밭머리 혹은 밭 한가운데 묘지가 있는 것은 제주에서 흔한 풍경이다.

 

그만큼 삶과 죽음의 거리가 멀지않다.

 

화산섬이다 보니 묘지를 쓸 마땅한 땅이 적어서 일까?

 

이전에 썼던 졸시 "비가이거나 만가이거나"의 제목으로 붙여본다.

 

 

 

잠자리에 든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이튿날

아침을 맞이한 사람은 서둘러 밭으로 나가고

저승을 맞이한 사람들은 밭머리에 묻혀 영면한다.

 

평생 저 밭 일구며 살아내다

비로소 일에서 손 떼고 누운 언저리

햇살 눈부셔도 일어날 줄 모르는 것은

넋은 이미 저 산 너머 일찌감치 멀어져 갔을 터.

 

............

 

아직 당분간이다.

잠에서 깨어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하여, 서둘러 이른 밥 지어먹고 밭으로 나가

손마디 굵어지도록 씨 뿌리고 고랑 따라 거두는 일에 감사하며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

 

몽글 몽글 피어나는 것이 어찌 저 무덤가 뒤편의 아침 안개뿐이겠는가?

 

 

 

 

돌아보면 우리의 생이 마냥 덧없고 부질없는 것만은 아닐 터

 

넋이라도 있고 없고부모든 이웃이든 멀리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밭머리에 머물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소망은 아닐까?

 

아직 살아있으므로 가야할 곳으로 가는 발걸음에 힘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