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제주에 다녀오면 안 될까""
느닷없는 내 물음에
"그렇게 하슈!"
아내는 아주 쉽게 허락(?)했다.
어차피 말려도 듣지 않을 것을 알기때문이라 했다.
그렇게 제주에 왔다.
지난 9월 29일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지만 가난한 백수에게 저렴하면서도 썩 괜찮은 숙소가 좋은 인연으로 내게 연결되었다.
올 사월이었다.
자전거로 제주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작정하고 섬에 왔었다.
"샵"에서 빌린 자전거로 2박 3일 240여km를 씩씩하게 돌았다.
둘쨋날 남원쯤이었을 게다.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괜찮다싶어 자전거를 멈추고 지나쳐 온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뷰파인더에 배낭매고 걸어오는
거한이 눈에 띄었다.
셔터를 누르고 가던 길 가기에는 그 "거한"이 내게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잠깐 인사하고 놀멍 같이 걸었다.
그는 3년 전에 정년을 마쳤으며 제주에 두 번째라 했다.
숙소에서 나와 걸을 만큼 걷고 나서 버스타고 숙소로 돌아기를 되풀이 하는데
버스 연계가 잘 돼있어 여간 편리하지가 않다며 전화기를 들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제주 온 이래 이렇게 매일같이 날씨가 좋다며 즐거워했다.
잠시 걷다가 먼저 가겠노라 자전거에 올라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 연유는
그의 표정이 어찌나 평안해 보이고 길 위에 선 모습이 잘 어울리는지
마치 성지를 순례하는 성자처럼 거룩해 보이기 까지 했던 것이다.
그때 이미 은연중 나도 다음에 따라 하리라 작정했는지 모르겠다.
미호천 자전거길 따라 논에 다녀오면서 둑방 위를 나는 잠자리 떼를 보고서였을까?
아파트 위를 무시로 오가는 비행기가 어느 날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주에 가고 싶다.
특별히 꿈꾸지 않아도 종종 꿈은 이루어지고 그 꿈이 이루어져 제주에 왔다는 얘기가 길어졌다.
이튿날 자전거가 도착했다.
한 달을 온전히 걷기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마트에 갈때라도 필요하겠다 싶어
인터넷 최저가로 구입한 이른바 "유사 MTB"가 도착한 것이다.
미리 챙겨 간 몽키스패너와 드라이버 하나로 생각보다 쉽게 조립되었고 동네 한 바퀴 시운전 결과 딱 그 가격만큼 만족했다.
오후에는 집안을 정리했다.
방을 꼼꼼히 닦았다싶었는데 어디선가 기어 나오듯 머리카락은 끊임없이 눈에 띄었고 그때마다 손가락에 침 발라 주워냈다.
반나절의 수고 끝에 마침내 열 발짝 내에 취사와 취침과 생리적 걱정을 해소시킬 수 있는 시설이 완벽하게 마련되었고
침대에 누운 채 팔을 뻗어 창을 열면 제주의 하늘이, 몸을 반쯤 일으키면 동네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수평선에 떠있는 배를 바라보며 꿈꾸던 온전한 자유가 내게로 왔다는 생각에 밀려오는 행복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제주에서 작정한 한달살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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