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 부터 꼭 팔십 년전
외할머니께서 산고의 고통을 감내하시어
이 썰렁한 날 어머니께서 세상에 나오셨습니다.
조강, 이미 지천명을 넘어선 지 오래
이젠 사람들 앞에 서는것은 자식들에게 맡겨도 되겠건만
식을 줄 모르는 성원에 힘 입어 다시금 대중 앞에 섰습니다.
일제치하 농경문화에서 태어나시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당신께서 살아내신 팔십년 세월은
우리 가정사이자 곧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왼쪽은 눈썰미 없는 사람들 많이 혼란스럽게 했던 쌍동이 형입니다.
이래뵈두 서울 장안에 유수한 대핵교 선생님이십니다.
언제 또 다시 일가 친지 모셔놓고 잔치 베풀 기회 있겠나
좀 뜻 깊게 한번 차려보자
일단 장소는 가까운 한정식집으로 결정했습니다.
멀리서 오시는 외가식구들을 배려해야 되고 뷔폐도 고려 대상이었지만
음식 가지러 오가다 보면 어수선해서 분위기 깬다는 의견을 반영하였습니다. 일단은 어머니 최근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면에 걸었습니다.
재작년 이사하면서 빛 바랜 액자의 사진들을 죄다 스캔해서 저장해 두었던것을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아버지와 처음 만났던 갓스물 시절, 누군가 유관순 누나를 닮았다고 해서 웃었습니다.
외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저 아이는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키워나갈까?
맏며느리 형수
뒤에 형수보다 더 젊은 육십 몇년전의 시어머니
세월의 강이 참 넓다고 해야할지 깊다고 해야할지.....요.
잔뜩 분위기 돋궈 놨는데 음식이 나오지 않아 흥이 식을까 조바심 납니다.
드디어 음식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유치부터 계약, 그리고 오늘 이 순간까지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신 한정식집 주인 마님 미모 만큼이나 음식 솜씨도 아주 좋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리면서 사업 번창하시길.....
콩나물 시루에 물주시듯
미래의 새싹들에게 즉석 장학금 하사하시는 울엄니
저 돈 그대로 저 아이 주머니속으로 들어가야 할텐데 ...
어렸을적 친척들한테 어렵사리 받은 용돈, 중간에서 갈취하시던(?) 어머니 생각에 걱정되는 바 없지 않았습니다.
친정 동생들 잘 들 자시나 둘러보시고....
학생 불러 세우듯 며느리 셋 불러세운 동생
울산에서 교편잡고 있습니다.
먹여주는 시누이, 받아먹는 올케- 박장대소 왕시누이
잔치 잔치 벌렸네
.................
오늘같이 좋은날
추운계절에 태어나시어 추위를 잘 타시는 울엄니
남은 여생, 늘 오늘같은 마음으로 따뜻하게 사옵소서
돌 씹고서....
삐거더억 소리내며 열리는 부엌문 밀고 들어가
단지 뚜껑을 열고 종그래기로 하나, 둘. 셋..
마당끝 우물가 펌프질해서 바가지 두 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물에 담긴 쌀 흔들어 옮기다 보면
돌에섞인 쌀 몇 톨 남었다.
'널랑은 내 먹을게 아니다'
마당에 뿌려대면 조선닭 댓마리 우르르 몰려와 쪼아먹었다.
솥뚜껑 열고 일은 쌀 붓고 왼쪽 손바닥을 얹은 다음
가운데 손가락 둘째마디와 세째마디 중간까지 물을 채우고 뚜껑을 닫었다.
성냥골 그어 아궁이 불 지피고 부짓깽이 가지구 이리 저리 뒤적이다 보면
솥뚜겅 틈새에서 내려오는 눈물같은 물줄기는 개흙바른 부뚜막에 닿기 전
피슷 끓어 없어지는 것이 우는것 같이 보여 불 때기를 멈췄었다.
하릴없이 불 붙은 부짓깽이 가지고 바닥에 이름을 쓰거나
아궁이 속을 다독거리기를 얼만가 하다가
솔가루 한 줌 넣어 다시 불 지피다 보면 뜨득 뜨득
누룽지 달라 붙은 소리를 신호 삼아 밥짓기를 끝냈다.
남은 솔가루 얹고 몽당빗자루로 부엌 바닥을 얼기설기 쓸다보면 들일 끝낸 울엄니
'에고, 우리 아들 밥 잘도 짓네'
애처로운 듯 환한 웃음지으시던 - 송글 송글 땀 맺힌 사십 몇 년전의 울엄니
.
.
'얼른 뱉어요'
빈그릇 들이대는 표정없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그때 돌 하나 없이 잘도 일었는데.......'
그 말 한마디 입안에 돌 섞인 밥 더불어 뱅뱅 돌고
' 맹장 걸릴라 ............'
사십 몇 년 에누리 없이 늙으신 엄니말씀에
돌은 뱉어내고 말은 삼켜버렸다.
2002/1/4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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