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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의 마흔시살적 일기(3)-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조강옹 2019. 12. 26. 14:00

나는 아침에 퇴근하지만 아침에 출근두 한다. 출근할 때 되면 울엄니는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내셔서 내가 신기좋게끔 구두코가 문쪽으로 향하게 놓아주신다.

 

첨엔 냅두시라구 몇번 만류도 하였지만 엄니는 묵묵히 그 일을 계속하셨다.

 

품에서 벗어난 자식에 대한 유일한 애정표시지....

 

마음을 편안하시게끔 하는것두 효도라구 생각해서 나두 기분좋게 신구 나오곤했다.

 

그리구 이것은 우리집 댓방이 엄니임에두 불구하구 실세가 곧 나라는 것을 가족들에게 과시하는 상징적 의미도 있었다.

 

그날은 회의 참석차 곧장 대전으로 출근하기 땜에(직장 큰집이 대전에 있음) 평상시 보다 늦게 출근해두 되는 날이었다.

 

"나 먼저 갑니다."

안해가 방문열구 고개만 삐끔 내다보며 인사를 한다.

 

안해가 출근하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라 마지못해 누운채로 낮은 포복하듯 뭉기적대며 마루로 고개를 내밀구 쳐다보니 울엄니 안해의 랜드로바를 방향바꿔 발밑에 밀어 넣어주고 계시지 않는가?

 

안해는 당연지사 받아신구 현관문열구 나가는 폼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듯 싶다.

 

우리 475세대들은 안다.

 

어릴적...

고무신과 바꿔 놓은 아스케키 폼잡고 마악 먹을라 할즈음 덩치크고 나이둬살 더먹은 웃집 성식이 언제왔는지 뒤에서 나타나 한입만 달라한다.

 

내밀었던 팔을 표나지 않게 당겨보지만 정확히 거리를 유지하며 그 커다란 입으로 최소한 반이상을 깨물어 갈때면

손가락 깨물리는 것 보다 더 큰 아픔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던 기억을 .....

 

출근길 서서히 안개가 벗어지기 시작하는 빈 들녘을 바라보면서

이런 나의 의문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몇일전 낮잠에서 깨어 화장실을 가다가 엊그제 장모된 큰누나와 통화를 본의아니게 엿들었다.

 

"응 에미 엊그제 첫월급탔다구 나 용돈쓰라구 봉투맹그러 내밀더라

고만두라구 애비한테 받는디 노인네가 돈쓸데가 어딨냐구"

 

..........

 

"받아넣었지 뭐..."

 

그랬었다안해가 산업전사로 나서기 전엔 내 수입이 가정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고 특히 울엄니 호주머니 경제의 유일한 젖줄이었다.

 

.....................................

 

- 일정시대 소학교 반장까지 하셨다던 울엄니

 

 

다리에 힘이 빠진다.

계단 몇개 오르기가 왜 이리 힘들까?

큰집 현관에 크게 써놓은 액자 글씨가 눈에 들어 온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