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8일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가운데 먼길 돌아 예까지 왔다.
혓바닥에 늘어붙듯 감칠맛 나는 생선회와 입안으로 녹아드는 소맥을
반주삼아 남을것을 걱정하면서 배터지게 먹었다.
오는 길
홍천을 거쳤다.
체구작은 큰 아해가 행군만으로도 견디기 힘들다 널리 알려진 부대 배치받아 군복무했던 곳
아들 면회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안해는 안쓰럽다면 눈물을 훔치던 이야기가 이제는 가볍게 되새길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이리 되기에는 걱정과는 달리 힘든 생활 잘 견뎌낸 큰아들의 성실함도 한 몫했다.
숙소에서 바라다 본 물치항 전경
먼 바다는 잠잠한데 저녁이 되면서 해변에 부서지는 파도가 거칠어 졌다.
오가며 길바닥에 까는 시간과 돈이 아깝다며 모처럼 이틀밤 작정하고 온터라
배불러 숨쉬기 조차 불편한 밤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2015년 7월 9일 아침
밤새 점잖은 비가 조금 더 내렸다.
설악산으로 들어가는 길 또 비가 내린다.
적잖은 주차비와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선 곳
과유불급이란 말은 어디서든 통한다.
필요이상으로 크게 모신 불상이 외려 신심을 내려놓게 만든다.
문 안에서 바라보는 문 밖의 풍경이나
문 밖에서 들여다 보는 문 안의 풍경이나
적당해서 참을만한 호기심으로 보는 재미가 나름 있다.
신흥사에서 울산 바위쪽을 겨누고 가는 길
안해를 앞세우고 가다 뒤돌아보니
따라오는 이 하나 없다.
오늘이 평일이고 비까지 추적 추적 내리는 날씨
당연하다 싶었다.
이름을 되뇌이고 보면 산 보다는 차이나 레스토랑이 먼저 떠오르는 권금성 케이블카
올라가봤자 운무에 가리워 한치 앞도 보기 힘들터인데 무엇하러 올라갈까?
꼭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아야 높은 곳을 볼 수 있는것만은 아니다.
웅덩이게 고인 물이 나무 한 그루 온전하게 담아냈다.
오래전
솔씨 하나 바람타고 바위틈에 불시착 했을 것이다.
생애 대한 애착과 의지
비와 바람과 햇빛이 어여삐 여겨 이만큼 키워냈다.
아름다움을 더 한 답시고
굳이 단청으로 단장하지 아니한 것은 잘한 일일것이다.
타고난 미모가 있어 민낯이 가장 고움에도
이런 저런 화장품으로 얼굴을 도배하는 이 시대 젊은 소저, 아낙들
가던 길 멈추고 한번쯤 되새겨 볼일이려니 했다.
내리는 비로 샤워를 마친듯한 금강송의 위엄
작년 이른 여름
중국 황산과 삼청산을 다녀왔다.
황산은 맑은 날씨에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연출한 장관에 놀랐고
삼청산은 오늘 처럼 종일 비가 오는 날씨 였다. 그리고 그때 모습이 저와 흡사했다.
적절한 비유일런지 모르겠지만
몸매 고운 여인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황산이라면
잠자리 날개같은 속옷을 걸친 모습은 삼청산과 오늘의 이 설악산이 아닐까?
요는 운무에 가리워진 저 몽환적인 그림이 두고 보기엔 더욱 눈에 차더라는 말씀이다.
중간에 마련된 전망대
뿌연 운무 말고 뵈는건 없었다.
옷이고 신발이고
좀 값이 나가더라도 큰맘먹고 장만하면 오랜기간 새것같은 기분으로 입고 신을수 있다.
중국의 황산이고 삼청산이고 바위 옆구리 콘크리트 구조물로 보기 흉하지 않으면서도 튼튼하게 만들어 붙인 숱한 계단 디디고 오르내릴적 마다 중국 인민들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내심 그 꼼꼼함에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자연스레 이 계단이 비교된다.
금강산과 더불어 천하의 명산이라 자처하는 설악산의 이 쇠파이프와 방부목위에 고무줄 박아 미끄럽지 않게 시공한 이 계단은 한눈에 봐도 조악하기 그지없다.
좀 공들여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멋들어진 계단 만들수 없을까?
디딜적 마다 오른쪽 무릎의 통증 만큼이나 중국만도 못한 계단 시공에 가슴이 아파왔다.
반야심경에 수없이 반복되는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요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아니하도다
대입하여 삶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니
삶이 죽음과 다르지 않고 죽음 또한 삶과 다르지 아니하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여겨지는 곳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진 곳에 적당한 운무가 가리워져 연출해 낸 그림속의 나무가 그러했다.
울산바위 정상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 곳
옆으로 난 전망대로 잠시 발길을 돌렸으나 역시나 내려다 볼수 있는 풍경을 운무가 가리우고 있었다.
가고자 하는 곳에 도착하였으므로 이제는 본디 있던 곳으로 내려가는 길
오랜 세월 둘이 마주보고 이만큼 자랐고나!
찰밥에 콩 섞어 밥을 짓고 연잎으로 싼 일명 연잎밥
상온에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아 나들이적 김밥 말아가는 것보다 훨 낫다며 가져왔다.
토마토 삶아 만든 토마토 쥬스와 궁합이 잘 맞아
허기와 갈증을 동시에 해결하는데 이보다 좋은것이 없었다.
뒷맛 고소하기도 그러하고...
내려 오늘길에 들른 신흥사
문밖의 세상은 문 안의 그것보다 까닭모를 설레임과 기대가 있기에 발걸음 또한 가벼워 보인다.
비옷같아 물어보니 맞다한다.
저리도 예쁘니 비오는 날만 기다리다 때가 됐다하여 차려입고 나온것은 아닐까?
돌아오는 길
인근 마트에서 참치 통조림 하나와 맥주를 샀다.
남은 김치에 끓인 찌게 안주삼아 맥주에 소주 섞어 반주로 마시면서 어제 먹은 만큼 먹어도
배 터지지 않은 경험으로 안심하고 잔뜩 먹었다.
하룻밤 더 묵고 간다는 사실과 오늘 운무속에 바라다 본 설악의 바위와 나무와 운무
그리고 소주와 맥주 섞어 마신 취기속에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2015년 7월 10일 아침
숙소 앞
해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본래 둥글어서 같이 모여 사는 것일까?
서로 비비적 거리다 보니 같은 모양으로 둥글어진 것일까?
눈에 보이는 해변 절반은 이렇게 자갈이고 나머지 절반은 모래사장이다.
자갈밭에서 이사 온 돌엥이
밤새, 쉼없이 파도가 이리도 쓸어보고 저리도 쓸어보면서 나름 추구한 예술으 세계
숙소 뒤편의 그림은 충북의 들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포기가 벌어서 골이 보이지 않은 풍요로움
논둑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바다라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누렇게 익은 모습 이전의 이 그림이 풍요로움에는 단연 으뜸이다.
집으로 가는 길
안해는 인근 낙산사를 가자 하였으나
가보지 않은 길을 택해 월정사로 향했다.
진고개 신사는 간곳 없고 인적 뜸한 휴게소
한가로이 옥수수 까는 아낙들 우리를 보고도 알은체 하지 않았다.
월정사 입구 전나무 숲과 금강교라 했던가?
물에 비친 모습이 물위 본체 보다 아름다웠다.
수도자의 삶을 고행이라 하고 그 길을 택한 사람들을 우린 그리할수 없다는 전제하에 기본적으로 존경한다.
그러나
세상이 워낙 어지럽다 보니
당장 오늘 하루 맘 편히 살고 걱정없이 지내는 것이 수도자는 아닐까?
마루에 걸터 앉은 저 스님을 콕 짚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고 목사니 신부니 하는 종교지도자들 두루 포함해서 드리는 말씀이다.
금강경 앞귀절에 부처님이 제자들고 더불어 밥 빌어 자시러 나가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행렬
자주 볼수 있는 그림이 아니기에 무의식적으로 카메라 들어 두 번을 채 누르기 전에
"찍지 마세욧"
정도를 지나친 나무라는 외침이 비명처럼 들려온다.
행렬이 지난 자리 속좁은 스님의 성냄과 고요만 남았다.
상원사가 9km 라 하기에 난 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
의외로 비포장 도로
어릴적 동네 앞 조치원 쪽으로 난 신작로를 생각하면서 한참을 가는데
용감하게도 히치하이킹하는 젊은 비구니 스님 두 분을 뒷자리에 모셨다.
스님으로서의 의젓함은 간데없고 들뜬 소녀들 처럼 표정도 밝고 곧잘 웃기도 한다.
월정사 그 스님 얘기 볼멘소리도 하면서 삼독중에 으뜸이 성냄이라 배웠는데 사소한 일도 성내시는 것도 마뜩찮고 눈에 뵈는거나 뵈지 않는거나 색즉시공 개념으로 보면 같은 것을 가지고 그런 하찮은 것에 집착해서 언제 도를 닦으시겠나?
두 젊은 스님을 번갈아 가면서 괜찮다면서 괜찮다 면서 다 괜찮다 하신다.
괜찮다는 말의 본딧말이 공연하지 아니하도 또는 관계하지 아니하다 요 둘중의 하나인데
앞의것을 두고 하는 말씀이지 뒤엣거을 두고 하는 말씀인지 그러 생각하는데 이쯤에서 세워달라하신다.
옆으로 산책로가 나 있는데 이쯤에서 둘이 같이 걸어내려간다한다.
거듭 거듭 고맙다면서 남은 여행 즐겁게 하라 덕담 까지 받고 보니 야박하게 사진 찍는것 가지고 나무란 스님에게 서 받은 언짢은 마음이 눈독듯이 사라졌다.
시간이 얼추 점심때인지라
상원사에서 점심 공양하시고 가시면 되겠다는 두 비구니 스님 말씀따나 공양간이 눈에 들어온다.
안해는 절밥 먹고 갔으면 하였으나 나는 강원도 막국수가 먹고 싶어 짐짓 밥생각이 없다면서 외면하였다.
저 통로 가운데 거울이 있어 들여다 보면 아래 천정에 그려진 그림이 거울을 통해 아래와 같이 볼 수 있겠금 해 놓았다.
아내와의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도로도 한적하고 하늘의 구름이 참 아름답다.
저녁에 월악산 계곡에 다시금 일박
군대친구라 부르는 친구들의 모임이 있고
새벽 일찍 나와 조상님들 모셔놓은 납골당 얹저리 벌초 작업이 예정되어있다.
저녁엔 야간근무를 위한 출근
생각이 복잡하게 얽히는데 젊은 청소년들의 순례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쉬지 않고 걷고 쉬지않고 일해야만 하는
생각많은 중생의 생 또한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여기는 사바 세계
사흘간의 충전으로 금새 이맛박에 파랗게 불이 들어오지만 쉬 빨간불로 변한다.
낡은 전화기 배터리 처럼....... 이 한 몸 어느 덧 늙은, 늙어가는 탓이다.
조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