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와서 부르는 노래

강원에 머물다.

조강옹 2020. 10. 30. 02:30

자고나면 벌판에 공장이 들어서고 벌집처럼 그만큼의 일자리가 늘어나던 시절

 

땀 흘려 일하면 하는 만큼 에누리 없이 대가가 주어지고

 

그래서 나름 열심히 살면서 결혼하고 자식 낳아 키우면서

 

내 집 하나씩 마련하고 비로소 꿈을 이루었다고 흡족해 하던 시절

 

농경시대에서 산업화로 들어갈 즈음이 내 청년시절이었습니다.

 

정권이 내 걸었던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실감하기도 했고요.

 

 

이어,

 

누구나 내 차를 가질 수 있어 원하는 곳을 날개 달린 새들처럼 자유로이 나다닐 수 있고

 

인터넷을 이용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것 모두를 얻을 수 있는 지식정보화시대로의 전환은

 

조물주가 선심 쓰듯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내려준 요술방망이와 다를 것 없는 축복인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고나면 있던 일자리도 없어져 품고 있던 꿈을 하나씩 접어야 하는 아픔은

 

우리 자녀세대들이 스스로 거둬내야 할 짙은 그늘이기도 합니다.

 

강원으로 가는 길

국어선생님을 꿈꾸던 큰아들은 요즘도 하루 한 편씩 시를 필사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웬만한 등산로에 하나씩 있는 깔딱 고개그 험한 고갯길 오를 적 입안에 녹여 삼키던 사탕의 달콤함이

정상을 향한 꿈을 이루는데 큰 힘이 되었던 기억을 되새기며

그렇게 시를 쓰고, 읽고, 읊조려가면서 더해지는 생의 달콤함이

우리 자녀들이 이 시대의 깔딱 고개를 넘어가는데 큰 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여,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나날들이

세상, 소풍 나온 듯 즐겁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것 - 이 시대 아버지로서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절반의 기도가 이루어져 두 아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절반이라 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의 나이가  제 아비가 어미를 만나 결혼했을 적 나이를 십여년을 훌쩍 넘겼음에도 아직도 "고르기"가 진행중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요렇게 젊은 어머니가 회갑을 맞이한 해- 아들 둘이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웠나봅니다.

 

우리 가족의 강원 행은 이렇게 결정되었습니다.

속초 중앙시장

수족관의 생선조차도 생기를 잃을 만큼 썰렁한 시장통

여기도 "기승전 코로나"-예외는 없는 듯 합니다.

 

바닷가 몫 좋은 곳

노른자위 떡 차지하고 들어선 숙소 

두 아들이 자전거를 즐겨 타나보니 제각각 자전거 싣고 이 바닷가를 달렸나봅니다.

처음엔 신기했는데 자전거 타고 달리다 보면 거의 비슷한 풍경들이 지나가기 때문에 그만큼 감동이 줄어든다합니다.

그럼에서 불구하고 숙소에서 내려다 본 외옹치 해변은 렌즈를 감았다 풀었다하면서 연거푸 셔터를 누를  만큼 아름답고 또 아름답습니다.

네 식구

 

오손도손 서로의 안녕과 보다나은 미래와 지금 이순간의 행복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밤 늦도록 옛이야기 더불어 술잔을 기울이다 잠이들었습니다.

 

 

충북도민에게 바다에서의 일출은 늘 생경합니다.

꼭 정월 초하루가 아니라도 저런 모습 바라보면 자연 두 손을 모으게 됩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휴휴암

삼척을 향해 내려가다가 문득 생각난 곳

언덕너머 감춰놓은 듯 아담하게 자리잡은 곳에 바닷가에는 물고기들이 출퇴근한다고 널리 알려진 곳

 

 

모르면 신기하고 알면 참 싱거운 비밀이 여기에도 숨어있겠지만

굳이 알아서 신기함을 거둬낼 필요가 있겠나 하면서 참 신기하게 한참 머물어 있던 곳입니다.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 만큼 아해들에게 안온함을 가져다 주는 것이 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보는 눈 또한 편안해져 여유롭기 그지없습니다.

 

기대를 안고 찾아갔던 목장

 

두 시간을 기다려야한다는 말에 낙심하다 가까이 또 다른 목장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찾아간 곳

 

버스를 타고 오르다 볼거리가 있다해서 중간쯤에 내렸습니다.

정해진 시간을 기다리다보면 이렇게 사람과 개와 양들이 서로 학습하고 훈련되어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영리한 개가 사람의 의도대로 양떼들을 원하는 곳으로 몰고 간다는 것인데 얼핏보면 양들이 스스로 알아서 사람과 개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 처럼도 보입니다.

 

요약하면 볼거리는 볼만했습니다.

 

티뷔에서 종종 보면서 감탄하고 가보고 싶었던 곳

용케도 아들은 이곳을 일정에 포함시켰나 봅니다.

서두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쉬엄 쉬엄 온것도 아닌데 첫번째 찾아간 목장은 두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해서

낙심하던 차 가까운 곳에 차선으로 갈곳이 있었습니다.

 

고갯마루에서 처음 눈에 들어왔던 거대한 바람개비 그보다 더 크게 하늘을 향해 똥침을 날리고 있던 크레인

신에 대한 도전으로 비처져 노여움을 샀던 바벨탑을 연상시키며 또 다른 징벌을 걱정할 만큼 오만하고 거대해 보였습니다.

 

거대한 바람개비가 곳곳에서 하늘을 향해 서 있고 멀리 바닷가 사람들이 모여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가을의 햇살과 높은 곳에서 부는 바람 맞아가면서 때론 감탄하고 때론 서두르면서 자리찾아 사진찍기 바빴던 시간

막연하게나마 가고보 싶었던 곳에 내가 와 있으므로 작은 소망 하나 이루었다는 그리고 나를 여기까지 데려 온 두 아들에게 참 고맙고 대견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숙소가기전 들렀던 삼척항

높은 곳에 지어진 집과 역광받아 빛나던 오징어

그리고 속초와는 달리 다소간의 인파가 나름 북적이며 "시장"의 활력을 느끼던 곳입니다.

이후 먹고 마시는 시간은 전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소줏잔에도 잔잔한 행복이 녹아들어 달콤하게 아껴 마시는 사이 밤이 깊어가고 날이 바뀌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되뇌이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의 기도는 천국은 하늘에 있으로되

땅에도 그에 못지 않은 곳이 있으며 그곳이 다름아닌 이곳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바닷가의 아침과 그곳에서 솟아오른 해

오름은 장관이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바닷가 건축물

바닷가 풍경과 조화를 이룬 주변 산책길

아들은 훌쩍 자라 아비보다 생각이 깊은듯 보이고

올해 회갑을 맞은 안해와 함께한 서른 일곱 해

돌이켜 보면 참 행복했고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나름, 많이 덜어냈으므로 더 짊어질것도 내려낼것도 없는

그래서 집으로 가는 길은 홀가분하기 그지없습니다.

 .

 

 

 

연풍에서 괴산사이

 

 

가끔씩 그 산천과 또 다른 부모님 뵙고 싶어서 가는 곳

보트장있는 동네라면 시민들이 다 안다는 안동 처가

 

몇 해전에 뚫린 이화령 터널을 지나 세 시간의 운전

문경 지나 폭포를 만들어 놓은 그 휴게소에서 우린 교대를 한다.

 

식도암 판정을 받고 고대 돌아가실 줄 알고 맘졸였던 장인께선 8년째 정정하시고

농사철, 고추며 양파며 유난히 밭농사가 많은 것은 산이 많아 지을 논이 없어 그렇단다.

 

잠시 농사일에 손떼시어 그런지 설에 뵙는 양주분 모두 신수가 훤해 보이신다.

 

뒷곁 닭장에 토종닭 예닐곱 마리씩 모이 쫒는거 매번 눈에 띄건만

밥상에 오른지가 몇 해전인지 기억도 가물 한, 일테면 그만큼 묵은 사위인데

 

이웃집 아저씨 놀러와서 '세배 그만 다닐 때도 되었다만은...' 짓궂은 농에

'씰데없는 소리 지끼고 앉았다" 진한 경상도 말로 되받아 치는 장모님 대꾸도 정겹다.

 

건강은 괜찮으시냐고 여쭙지 않은 것은 밥상머리 둘러앉아 상어고기에 안동식혜 퍼먹으면서 곁눈질로 훔쳐 본 아버님 식사 량이 전보다 늘었기 때문이었다.

 

'어이하든 어른 잘 모시고 잘 살게이'

몸뚱이 운전석에 밀어 넣을 즈음 해마다 하시는 아버님 말씀에

나는 겸연쩍게 웃기만 하고

 

아내는 옆문 내리며 '어마이야 내 간데이'

그 말 한마디로 핸들 오른쪽 틀면서 천천히 액셀레이터 밟는다..

 

갔던 길 그대로 다시 돌아 또 그 휴게소에 운전 교대하면서

'에고 ! 내 핸드백.. 거기에 지갑하고 다 들었는데...'

 

끌끌끌 혀를 차면서

그 세월을 살고서도 마음 말고 친정에 뭐 남겨놓고 싶은 게 있어서일까

아님 늙어가는 아버지, 딸 위해 할 일 부러 남겨놓고 오는 심사인지

'어마이야 내 핸드백 놓고 왔데이 거 있나? 아부지한테 좀 부치시라 그래라'

 

오는 길에 수안보 온천욕

때 밀어주면서 일부러 쳐다 본

아들놈들 고추 어느새 다 영글어 있었다.

우리 내외만 세월 먹고 늙는 것은 아닌가?

핸들잡고 앞만 보며 가는 아내에게

뜬굼없이 한숨 섞어 한마디 건네 본다.

 

'우리 결혼한지 얼마나 됐지 ? '

 

피식 웃는 아내 옆모습에 잔주름이 생각보다 많아 보이고

어렵게 고개 돌려 돌아보니 아들놈들 옆으로 꼬고 잠이 들었다.

 

연풍지나 괴산으로 향하는 우회전길

달려온 길보다는 남은 길이 가깝다는 생각에

숨소리까지 들리는 이 좁은 공간 무르팍 비벼대면서

우리 같이 가야 할 데가 어찌 집으로 돌아가는 이 길 뿐이겠냐고....

2001년 1월 28일

끝.

 

투비 콘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