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

회룡포에서 부치는 편지

모르며 살기로 했다. 시린 눈빛 하나로 흘러만 가는 가을 강처럼 사랑은 무엇이며 삶은 왜 사는 건지 물어서 얻은 해답이 무슨 쓸모 있었던가 모를 줄도 알며 사는 어리석음이여 기막힌 평안함이여 가을 하늘빛 같은 시린 눈빛 하나로 무작정 무작정 살기로 했다.  - 유안진의 작정 전문 - 일에서 손 뗀 지 다섯 해 언제부턴가 무작정 살기로 했으면서도 시인의 노래처럼 기막힌 평안함은 없는 듯하였습니다. 작년 내내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다 연말쯤 되어서야 뒤늦은 판단과 결정끝에 허리뼈 어디쯤 드릴로 구멍을 뚫고  튀어나온 디스크를 태워 없애고 나서 소걸음으로 십 리 길 가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아졌습니다. 한 해를 그렇게 보내고 맞이한 올여름은 지독시리 더웠기에 도리없이  병든 개처럼 혓바닥 길게 내밀고 헐떡거리..

사모곡 3 - 가을에 듣는 어머니의 기도

어머니! 두고 가신 땅에 두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꽃이 지는 계절은 가뭄이 극심했고 여름은 잔인했습니다. 엄청난 비에 여기저기 논 밭이 상했고 곳곳에 따라 농사를 망친 곳도 적잖았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께옵서 두고 가신 이땅은 무사히 두 계절을 지났습니다. 일만 오천 년 전 구석기인들이 벼를 재배했다는 미호강변 소로리에서 제방을 따라 팔결교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 세 컷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른 봄 마을 어귀마다 불 밝히듯 노랗게 피어나던 개나리꽃들이 하늘에 별이 되어 머물다 소나기 되어 밤새 퍼붓듯 들판을 저렇게 물들였습니다. 비록 내 논이 아니어도. 내가 심은 벼가 아니어도 눈에 들어오는 저 풍요는 누구에게나 자연의 선물이요. 신의 축복인 듯합니다. 줌을 당기고 밀기를 반복하면서 저 들판 어디..

사모곡

마더링 3층 병상에 홀로 누워 산소마스크 통해 나오는 들숨조차 받아들이시기 어려우셨던가요? 일요일 아침 일곱 시 세상 나오실 적 처음 마셨던 들숨 날숨으로 길게 내뱉으시고 깨어나지 않는 잠에 드셨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아들은 호수공원 맞은편 이른 목욕을 마치고 나온 시각이었습니다. 도로 한켠에 차를 세우고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어머니! 모시면서 살았던 세월, 모시지 못하고 보낸 세월 자식으로 지은 죄가 이렇게 눈물 되어 흐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꺼이꺼이 짐승같이 울부짖으면서 이런 괴성이 어디서 이렇게 나오는 것일까?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눈물이 이것이 참회라 해도 스스로 용납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어머니!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 찡그리신 얼굴 어머니께서 느끼시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 이 못..

삶의 편린 2023.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