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소깎 2

제주에서 한 달(7)- 버치냐?

외돌개에서 쇠소깍 방향으로 이어 걷기로 했다. 정방폭포에서 가까운 정류장에서 내려야했는데 두어 개 지나쳤다. 길을 잃었다는 순간의 당혹감은 조용하고 깨끗한 도심의 아침풍경에 금방 잊었다. 바닷가쪽으로 어림짐작 방향을 잡았는데 햇살을 등지고 걸어오는 유니폼 차림의 노인과 마주쳤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러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 송강 - 과학문명의 발달은 노인들이 이고 진 짐을 모두 내려놓게 만들었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존경받으며 세상을 이끌었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젊은이들에게 묻고 배우며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아야 하는 더 큰 짐을 지게되었다. 와중에 저렇게 깔끔하게 유니폼을 갖춰입고 ..

자전거로 제주 한 바퀴(2)

. 간밤 잘 잤다. 엊저녁 숙소에 들기까지 아주 신속하도 효율적인 협상을 통해 성공리에 흥정이 끝나자 자전거는 1층 홀 안에 두면 된다고 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커다란 눈망울에 총기 넘기는 안주인은 자물쇠를 채우려 번호키를 주물럭거리는 내게 "제주에는 도둑이 없습니다." 머쓱해진 나는 묻지도 않음에도 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떠나겠다고 말하면서 3층 숙소로 올라왔다. 이튿날 아침 과연 자전거는 그대로 있었고 문은 열려있었다. 도망치듯 숙소를 빠져나와 어제 보아둔 작은 가게에서 김밥 한 줄을 사서 거지처럼 서서 먹었다. 영화 기생충의 "지하실의 여자"와 닮은 인상의 쥔아주머니는 잠시잠깐의 내 얘기를 듣더니 그 나이에 대단하다며 놀멍쉬 멍 잘 다녀가시라 큰누님 같이 인사를 했다. 그 표정과 말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