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이 한 팔년 길다하니 나 산으로 가고 난 뒤 십여 년 혼자서 아니, 자식들에게 얹혀살게 되겠다는 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들 둘 낳아놓고 그 아들들이라면 껌뻑 죽는 안해
지난 봄
다 커서 나가 있는 자식
둘째 생일 챙겨준답시고 첫째까지 불러들인 것도 안해였다.
변방에서 묵묵히 국토방위에 전념하고 있는 충신을
궐내 간신들의 중상모략에 넘어가 충성심을 의심하여 불러들인 귀 얇은 군주인 양
아부지를 쳐다 볼 때는 양미간에 내 천자 짙게 그리고 집에 온 놈이 둘째였다.
즐겨가던 오리집에 가족동반 해서 찾아가
음식 나오기 기다리는 그 잠시에도 티뷔며 신문 들춰보지
눈 한번 제대로 맞추지 아니하고 양 볼은 잔뜩 부었었다.
자리라도 비켜 앉았으면 좋으련만 부자지간 마주보고 앉았으니
아비로서 눈 둘 데도 마땅찮고 한참 불편한 시간 지나
드디어 음식이 나오고 늘 하던 대로 소주잔 나누어 놓고 한 잔씩 채워가는데도
고개를 외로 돌리고 먼산바래기 처럼 뻣뻣하다 못해 거만하기 그지없다.
참자 참자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다 못내 그리하지를 못했다.
그나마 언성 낮추어 낮은 목소리로 네 생일 축하해 주기 위해 이렇게 모였는데
뭐가 그리 못마땅해서 그러느냐는 아부지의 이 한마디에
"그려, 나 여기 오기 죽기보다 싫었어"
한 마디 얼른 뱉어내더니 "차 시간이 어떻게 되지?"
금방이라도 박차고 일어설것 같은 기세로 고개 돌려 제 어마이한테 묻는다.
팔순 노모께서 서둘러 아들과 손자를 번갈아 타이르듯 중재서셨지만
분위기는 저 필리핀 마리아나해구 바닥까지 내려앉았는데
소주만 거푸 몇 잔 마시고 "회식"을 끝냈다.
집으로 오는 길
핸들 잡은 안해에게 잠시 세워달라했다.
"왜요?"
"좀 걷고 싶어"
정류장을 지나쳐 세워달라는 시골아낙의 간청에
마지못해 세워주는 시골 버스 운전기사 처럼 차는 서고 나는 내렸다.
어둠이 깔린 넓은 도로
차들이 씽씽 지나가는 길
얼근한 취기로 풀린 다리 흐느적거리며
참 사는 게 어찌 이리 맹맹한가?
하늘을 쳐다봐도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아 사람 없는 산책로 능선 따라 집으로 오는 길
어디 가서 깡 소주라도 한잔 마시고 싶은 생각도 생각으로 그치고
빈 의자 곳곳에 많이 눈에 띄는데 안고 싶은 의자 하나 없었다.
집으로 가자
내 마음 둘 데가 거기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집에 가야 다음에 또 집을 나설 것 아니겠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릴 자신에게 지껄이면서 들어섰다.
거실에 가족들 모여 앉았고
일 저지른(?) 둘째가 죄인인 양, 깊이 반성한 양
준비한 성명서 읽어 내려가듯 아까는 제가 잘못했다한다.
진정성이 있는가 얼굴 한번 쳐다보면 금새 알겠는데 고개가 돌려지지를 않았다.
학교 공부에 스트레스 받다보니 맘에 없는 말이 나왔다는 변명성 해명이 끝났으니 이제는
내가 답사를 할 차례였다.
오냐!
숨 한번 깊게 쉬고서 잘못한 죄목 하나하나 열거하리라 생각했었는데 밖으로 나온 말은 전혀 달랐다.
“내 아들이기에 이해한다.
그래도 네가 힘들고 어려울 때 이 아비한테 기대고 싶은 맘이 있었다는 사실이 고맙기 그지없다.
다만 하나 아쉬운 것은 그래도 우리가 가족인데 그런 마음을 상대방 기분 상하지 않게 자연스런 대화로 풀어냈으면 좀 더 낫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다.
깨진 유리창이고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만 가만 따지고 보면 크게 잘못한 것 없으니 맘에 두지 마라“
말을 뱉어놓고 생각해도 점잖은 면은 있지만 진심은 아닌 것 같은데 둘째 놈 눈알이 커다래지더니
되게 혼내실 줄 알았는데 뜻밖의 말씀 듣고 보니 아버지에 대한 무한 존경심이 솟아난다면서 적이 안심하는 눈치였다.
팔순 노모께서 가족은 서로간 소중한 존재란 주제로 간단한 강평이 있으셨고 이 일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그렇게 둘째 놈은 서둘러 떠나고 큰놈도 따라 제 있던 곳으로 떠났다.
내 죽으면 맏상주 노릇할 큰놈이나 인생의 반려자가 되겠다며 내게로 와 사반세기 한 이불속에서 살아온 안해는 왜 말한마디 없었을까?
침대에 누워 생각은 많아지는데 옆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었다.
후에 팔순 노모께서 말씀이 계셨다.
아들이 손자에게 그리 당하고 오는 중간에 차에서 내려달라는데 아무 생각 없이 내려주는 며느리나 술 취하신 아부지 걱정돼서 따라 내릴 생각 하나 없는 손자나 마찬가지이며
집에 와서 기껏 하는 일들이 떠나려는 둘째 놈 필요한 것 주섬주섬 챙켜주며 서두르는 폼이 필시 차 시간 맞춰 그냥 갈 것 같아 한 말씀 하셨단다.
“아부지한티 그리키 해구나서 너 그냥갈라구 그러냐? 뒷차 타구가더래두 들어오시는거 보구 가는게 자식 된 도리지”
그 말씀에 나가려다 마지못해 돌아서 앉은 모자였던 것이다.
삼종지도
생각느니, 본능적으로 힘있는 쪽으로 쏠리는 이 땅의 따님들의, 아내들의, 어머니들의 인생 나침판이여.
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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